최근 MBC 기자들이 집회 현장에서 야유를 듣고 쫓겨날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등 수난을 겪으며 심리적 트라우마까지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인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 현장에서 MBC 기자가 쫓겨나는 모습이 담긴 유튜브 영상(MBC 기자들의 굴욕)은 정권 편향적인 MBC 보도에 대한 시민의 격분과 추락한 공영방송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급기야 100만 명 이상이 모인 지난 12일 대통령 퇴진 촉구 범국민행동 집회에선 현장 중계를 하는 MBC 기자가 마이크에 MBC 로고를 떼고 리포트를 하는 전례 없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날 집회 현장 취재 기자는 중계차 없이 MBC 로고도 없는 미니 버스 위에 올라 중계방송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가 15일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보도국은 처음부터 이날 집회에 중계차가 진입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취재진의 안전을 고려해 중계차 투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부터 몇 차례 진행된 촛불집회에서도 MBC 중계차에 대한 시민들의 격한 항의로 중계차가 철수하는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2일 대통령 퇴진 촉구 범국민행동 집회에선 현장 중계를 하는 MBC 기자가 마이크에 MBC 로고를 떼고 리포트를 했다.
노조는 “현장 취재 기자는 8시 방송을 앞두고선 혹시나 시민들이 MBC 취재진인지를 알아챌까 봐 마이크 태그마저 떼어낸 채 ‘몰래 중계차’를 타야 했다”며 “MBC 기자가 MBC 기자임을 밝힐 수 없는 상황, 수십억 원 고가 중계차를 보유하고도 막상 현장엔 투입할 수 없는 현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이런데도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주말뉴스 진행을 담당하는 윤효정 기자는 촛불집회 다음 날인 13일 보도국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평소 ‘MBC NEWS’ 마이크 태그가 삐뚤어지기만 해도 바로잡으라 알려 주는데 태그를 아예 달지 않고 있어도 뉴스센터에서 누구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부끄러운 게 아니라 쪽팔려서 뉴스센터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내내 눈물이 줄줄 났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MBC 카메라 기자는 “인터뷰를 시도하면 ‘배터리 아깝게 왜 찍으려 그러느냐’, ‘JTBC 데려오면 같이 해주겠다’, ‘청와데스크 말고 뉴스데스크에 나가는 거 맞느냐’ 등등 조소와 비아냥만 날아들기가 다반사”라며 “행여 온전한 내용으로 인터뷰가 시작되더라도 어느새 주변에 모인 시민들의 ‘MBC랑 왜 하냐’는 외침에 애먼 인터뷰이가 민망해지는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운 나쁘면 집회 내내 취재진을 쫓아다니며 ‘여기는 MBC 기자들이니 인터뷰하지 말라’고 안내하는 시민들도 만나게 된다”고 토로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또 “얼굴에 철판을 깔고 트라이포드를 세우고 카메라를 올리면 이내 ‘우~’ 하는 야유가 터져 나오고, 3초짜리 세 컷을 찍는 십여 초의 시간이 일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며 “특히 타사들과 함께 있는 경우 그 굴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데 현장에서 자기만 쫓겨날 때 뒤통수에 꽂히는 동정 어린 시선은 아무리 동종업계 식구들끼리라도 견디기 힘든 수치심이자 모욕”이라고 털어놨다.

노조는 “집회를 수차례 취재한 한 기자는 시민들이 던지는 질문이 결국 자기 스스로도 계속 던지고 있었던 자문들이라는 사실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며 “다수의 시민에게 반복되는 질책을 당한 뒤 느끼게 되는 자괴감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수난 외에 심리적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것도 절실해진다”고 전했다. 

10일 저녁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앞에서 ‘MBC 방송 정상화를 위한 전국 조합원 결의대회’가 열렸다. 사진=전국언론노조 MBC본부
MBC 기자들이 정부 정책 등을 비판하는 집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것은 이번만은 아니다. 2005년 MBC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파헤쳤을 때와 2011년 당시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했을 때도 MBC 기자들은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의 냉대와 비난을 받았다.

다만 황우석 사태 때는 당시 많은 황우석 지지자들의 비난 속에서도 MBC 기자들이 취재한 결과물이 뉴스데스크 등 주요 뉴스로 방송됐다. 정권의 외압을 받으면서도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한미 FTA 반대 시위 현장에서는 KBS와 MBC 등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JTBC 등 종합편성채널도 집회 참가자들에게 취재 거부를 당하고 피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MBC 카메라 기자들부터 들고일어나 자성을 촉구했다. 

이후 MBC 뉴스를 성토하는 기수별 성명 등 자성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권력에 민감하고 불리한 기사들이 잇따라 축소·누락되는 불공정 보도에 대해 기자총회가 소집돼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 카메라 기자들이 현장에서 느낀 수치심은 MBC 구성원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당시 김재철 MBC 사장 체제에서는 공정방송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2012년 1월30일 170일 파업에 돌입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이진숙 전 MBC 기획홍보본부장(현 대전MBC 사장)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왜 파업이 시작되었냐”는 질문에 “FTA를 취재하던 한 카메라 기자의 편향된 감정 발언이 발단이 된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도국 사회2부 박주린 기자는 지난 8일 사내 게시판에 “그런데 5년 전과 달리 화가 나거나 충격적이지 않았다. 딱히 수치스럽지도 않았다”며 “그렇게 느낀 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보고 라인을 통해 내려온 지시는 ‘집회 현장에서 스탠드업과 인터뷰를 요령껏 하라’는 것뿐이었다. 무엇이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내게, 우리 뉴스를 향한 비난과 조롱, 냉소와 외면을 체화하게 만든 걸까”라고 남겼다. 

노조는 “촛불집회 당일에도 보도국 편집회의에선 100만이 모일 촛불집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며 “KBS와 SBS 보도본부의 책임자들은 이번 보도참사에 대해 최소한의 유감은 표명하고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도 보이고 있지만, 유독 MBC의 보도 책임자들만 모르쇠다. 참담한 것은 보도국 수뇌부들에게 개선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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