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대통령이 되레 검찰에 엘시티 사건 수사지시를 내렸다. 언론은 '물타기'라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엘시티 문제가 중요한만큼 관련 내용도 비중있게 보도했다. 부산에서 전방위적 로비가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엘시티 사건은 청와대를 압박해온 정적인 친노와 비박을 동시에 잡는 묘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엘시티로 '반격'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로 연일 박근혜 대통령을 압박했다. 16일 "마지노선을 양보하면 금요일까지 조사가 가능하다"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면조사 방침을 밝혔으나 청와대는 지속적으로 거절해오던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급작스럽게 '엘시티 카드'를 꺼내며 반격했다. 엘시티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할 것을 검찰에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엘시티 사건에 대한 수사를 대통령이 촉구했다'는 워딩을 그대로 받아 쓰지 않았다.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진보언론은 청와대의 대응을 '물타기'로 규정했다. "검찰 조사 거부한 박 대통령 '엘시티 물타기'시도"(경향신문) "엘시티폭탄 꺼내들어 '박근혜 게이트' 덮겠다는 적반하장"(한겨레) 등을 통해 문제를 지적했다.

조중동은 직접적으로 '물타기'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청와대의 엘시티 수사촉구의 의도가 반격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식물 대통령' 거부하며 반격"(동아일보) "청, 친박 반격 모드로 돌아서기 시작"(조선일보) "파국으로 달려가는 대통령"(중앙일보) 등이다.

사설에서는 성향을 막론하고 비판이 이어졌다. 경향신문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 수사는 받는 현직 대통령이 사돈 남 말 하듯 하는, 정말 몰상식하고 후안무치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검찰 수사를 받는 대통령이 검찰에 무엇을 지시한다는 것도 국민이 보기엔 어색하고 이상한 장면"이라며 "다른 사건 얘기하기 전에 본인부터 철저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엘시티 사건이 무엇이길래?

이날 아침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엘시티 사건 자체를 외면할 수 없어 작지 않은 비중으로 보도하는 등 '고민'이 보였다. 이슈 블랙홀인 최순실 게이트에서 다른 이슈의 비중을 늘렸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전략이 어느정도 먹혀 들어간다는 점을 드러낸다.

엘시티 사건은 부산의 고층 아파트 엘시티의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 회장이 57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관계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사업을 쉽게 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했다는 게 핵심이다.

혐의가 입증된 건 아니지만, 사실로 볼 만한 상당한 근거들이 있다. 우선 엘시티 터 규모가 갑자기 31.8% 늘었다. 해안 쪽 땅 52%가 아파타를 지을 수 없는 용도였지만 갑자기 지을 수 있게 됐다. 부산도시공사가 엘시티 터를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시행사 측에 매각했고, 이영복 회장이 실소유주로 있는 청안건설을 주관사로 하는 컨소시엄을 민간사업자로 선정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포스코건설이 지난해 갑자기 시공사가 됐다. 군인공제회가 2008년 5월14일 엘시티 시행사에 3200억원을 대여해주고 대출기한을 수차례 연장해줬으며 2011년 12월13일에는 갑자기 대출금을 3450억 원으로 250억 원이나 늘려줬다. 

그렇다면 누가 연루된 걸까.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오후 브리핑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이 여야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게 뇌물로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표적까지 지정해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표적은 친노와 비박으로 보인다. 한국일보는 "공교롭게도 부산은 친노와 비박의 텃밭"이라며 "친노와 비박을 동시에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엘시티 사건은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세력에게 역공을 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인 것이다.

언론이 물타기라는 의도를 알면서도 써야 하는 복잡한 심경이라면, 국회 상황 역시 단순하지 않다. 16일 야권은 "청와대의 최순실 게이트 물타기"라고 반발했지만, 모두 같은 입장인 건 아니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부산과 연고가 없는 국민의당 입장에선 이이제이의 기회가 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수사엄단 지시는 낭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 '주사', 사라진 일곱시간으로 이어지나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의무실을 거치지 않고 최순실씨와 민간병원인 차움의 의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사제를 맞아온 사실이 밝혀졌다. 

대통령이 어떤 주사를 맞았길래 정식 경로를 통하지 않았던 걸까. 동아일보는 "태반주사를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15일 SBS에서 관련 내용을 단독보도한 바 있다. SBS에 따르면 태반주사는 부유층 사이에 간 기능 개선과 피로 회복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순실·정유라 모녀가 다녔던 김영재 의원의 처방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김영재 의원은 성형시술을 주로 해왔기 때문에, 향정신성 주사제가 포함돼 있는지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통령 건강관리까지 비선을 통해 이뤄진 게 문제'라고 보도했다. 조선은 "비선을 통해 주사제가 반입된 상황인 만큼 청와대 경호팀과 의무팀에서 주사제 성분 검증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무기록이 없기 때문에 후유증이 생겼을 경우 대처가 느리거나 미흡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청와대가 7시간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프로포폴 복용설 등 소문은 퍼지고 있다"면서 "차움 등 단골병원 특혜 의혹과 함께 반드시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대목"이라고 언급했다. 

여기에 YTN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테리를 풀 수 있는 연결고리 하나를 제시했다. YTN이 "세월호 참사 당일 국군 수도병원 간호장교가 청와대로 출장 간 기록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한 것.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무엇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간호장교가 필요한 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신나간 야당" 조선일보의 비난

이처럼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된 온갖 의혹이 양파처럼 끊임 없이 나오고 있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청와대를 비판하는 동시에 야당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과 청와대를 분리시키고, 정국의 주도권을 야당에 넘기지 않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위기에 국방장관 해임하겠다는 야당 제정신인가"라며 야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야3당이 한민구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데 대한 반발이다. 

이 사설에는 '안보 우선 프레임' '종북몰이' '포퓰리즘 비판' 등 야당을 향한 여러 비판적 프레임들이 뭉쳤다. 조선일보는 "막중한 국정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야당들이 말도 되지 않는 정치주장을 하면서 군의 중심인 국방장관까지 흔들려 하고 있다"면서 "북한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런 정신 나간 일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반발하는 야당을 향해 "상투적인 억지로 무책임하게 대중정서에 영합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도 야당도 끝내 파국으로 가겠다는 건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야권을 비판하며 대화와 협상, 타협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민주당이 정치적 해법은 외면한 채 좌파운동권과 어깨동무를 하고 촛불을 들불로 키우려 하는 의도가 궁금하다"고 밝혔다.

물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향해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버티고 있다"고 밝히는 등 새누리당을 향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비판은 청와대와 친박에 국한되는데다 야3당이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파국으로 치닫지 말라'는 건 결국 야당에 일정 부분 양보를 하라는 의미일 수 있다.    

오늘의 최순실 게이트 단독보도

삼성의 최대 현안문제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이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찬성의견을 낼 것을 종용받았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삼성그룹이 미르재단 등을 통해 최순실씨에게 239억 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혐의 수사에서 핵심고리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이한 일들이 여전히 많다.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반려동물인 진돗개를 평창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하기 위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 출장을 다녀왔다고 보도했다. 민간기업의 총수가 정부의 민원해결을 위해 해외까지 다녀온 것이다.

경향은 또 최순실씨의 인사청탁을 통해 입사한 대한한공 직원의 성추행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동원됐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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