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본사 간부들의 성주 사드배치 반대 시위 관련 ‘외부세력 개입’ 리포트 제작 지시를 폭로했던 기자들을 11일 무더기로 징계에 회부했다. KBS 구성원들은 최순실 보도 참사에 대한 책임자 사퇴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와중에 사측이 이를 징계로 겁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성재호 본부장)에 따르면 이날 사측은 이영섭 KBS 기자협회장(본사)과 노준철 전 전국기자협회장(지역), 이하늬 전 전국기자협회 대구경북지회장을 무더기로 징계에 회부했다. 

사측은 노준철 전 회장과 이하늬 지회장에겐 지난 7월 성주 사드배치 반대 시위와 관련해 본사 보도 책임자들이 강압적으로 ‘외부세력 개입 확인’을 리포트로 제작하라고 지시한 데 항의하며 발표한 전국기자협회 성명서를 문제 삼았다. 

▲ 7월19일 KBS ‘뉴스9’ 리포트 갈무리.
KBS 전국기자협회는 지난 7월20일 성명에서 “정부의 갑작스러운 사드배치 지역 발표 이후 성주 군민들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KBS대구총국의 현장 기자들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싣지 못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보도지침’을 받았다”며 “확인되지 않은 ‘외부세력’이라는 보도를 하는 것 자체가 그 프레임에 묶이는 거라는 현장 기자들의 말은 무시한 채 ‘팩트만 말하면 되지 않느냐’며 ‘객관 보도’를 가장해 지시가 내려진다”고 비판했다.

이영섭 기자협회장 역시 전국기자협회 성명에 앞서 성주 시위 관련 ‘외부 세력 개입’ 뉴스가 방송되기 전후 이 보도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사실관계를 정리한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이 됐다. 

앞서 열흘 전인 지난달 31일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7월11일 KBS 임원회의에서 고대영 사장이 사드 관련 뉴스에 대한 보도지침성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을 성명서를 통해 폭로했다가 징계에 회부했다. KBS는 7월 이들에 대해 고대영 사장의 요구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KBS 측은 이들 4명에 대한 징계 회부는 ‘성명서를 통한 공사 명예훼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측은 노준철·이하늬·이영섭 기자에 대해 “성명서를 통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인케 할 수 있는 내용을 적시해 공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성재호 본부장에 대해선 “임원회의에서 사장은 사드 배치 보도와 관련한 지침을 내린 사실이 전혀 없었음에도 사드 배치 보도와 관련해 사장의 보도지침이 있는 것으로 사실을 왜곡, 오인케 하는 내용의 KBS 본부노조 성명서를 게시해 공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사유를 들었다.

그러나 언론노조 KBS본부는 특별감사를 한 지 석 달이 지나서야 전·현직 기자협회장과 노조 본부장을 징계에 회부한 것에 대해 “KBS 구성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협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KBS 기자협회는 최근 최순실 보도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인영 보도본부장과 정지환 통합뉴스룸 국장(구 보도국장)에 대한 사퇴를 촉구해 왔으며 이에 불응하자 협회원을 대상으로 사퇴 촉구 찬반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며 “또 언론노조 KBS본부는 보도 참사와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사내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해 총파업 찬반투표를 앞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어 “이따위 치졸한 징계 협박으로 우리의 의지와 굴기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고대영 사장은 점점 몰락하는 박근혜 정권과 함께 순장의 길을 선택하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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