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 왜 그렇게 쉽게 돼? 너 때문에 인생 꼬였다.” 화내던 남자친구는 100만원을 남기고 잠적했다. 강혜리(가명) 씨는 나이 스물에 혼자 딸을 낳아 길렀다. 고졸 학력에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도 없어서 질 나쁜 일자리만 전전했다.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라서 보험 혜택도, 정부의 임신부 의료비 지원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말, ‘미혼모 정부지원 사각지대’ 취재차 만난 혜리 씨가 말했다.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예상치 못한 일을 겪을 수도 있죠. 혼자서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사회가 도와주면 좋겠어요. 근데 ‘저 여자 인생 망했네, 남자를 조심했어야지, 저렇게 태어난 애가 제대로 자라겠어, 얼른 괜찮은 남자 만나서 정상적으로 살아’ 라고만 해요.”

성폭행을 당했지만 부모의 종교적 신념 탓에 임신중절 수술을 못 받은 여성도, 가출 후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고 미혼모 시설에 간 10대 여성도 만났다. 그들은 말했다. “돌아갈 수 있다면 애를 지울 거예요. 저나 애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게 나아요.”

한때는 여성이라면 응당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을 주입하는 사회가 여성에게 허락하는 선택지는 ‘좋은 엄마’와 ‘비정상적인 여자’뿐임을 깨닫기 전엔 그랬다. 한국 사회가 그렇다. 여성을 자기 몸과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다. 임신중절을 하면 ‘범죄자’ ‘살인마’가 되고, 한부모 여성가장엔 ‘비정상’ 딱지가 붙는다. 여성에겐 임신에 대한 온전한 선택권, 접근권, 통제권이 없다. 대신 남성과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자연스러운 게 한국 사회다.

이 와중에 “저출산 극복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과제”라던 정부가 느닷없이 낙태죄 엄벌을 예고했다.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애 낳고 살만한 세상부터 만들라!” “My Body My Choice!” “내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형법상 ‘낙태죄’ 폐지 촉구 성명엔 2주 만에 1만여 명이 참여했다. 여성들은 “주인 없는 불법과 비도덕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라고 선언했다.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에서 시위가 열렸다. 폴란드,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등지의 여성들도 연대를 표했다.

언론은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한국판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현장에서 느낀 언론의 취재 열기는 다른 여성 이슈 현장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여성단체와 시민들이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해외의 여성들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더욱 주목할 만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시위의 외피만을 좇는 보도를 내보냈다. 왜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절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지, 왜 ‘낙태’는 국가가 규정한 ‘죄’여야 하는지를 묻는 보도는 소수였다. 대부분은 ‘여성의 낙태권 대 태아의 생명권 찬반논쟁’ 구도에 머물렀다. 언론이 임신중절의 복잡한 맥락을 제거하고 단순한 선택의 문제처럼 조명하면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기사 댓글란엔 ‘정신 나간 X들’ ‘살인자’ ‘여성부는 얘네 단속 않고 뭐하냐’ 등 악플이 쏟아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 사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거의 끊어졌다.

한동안 변치 않을 풍경 하나. 지난달 보신각 앞 ‘검은 시위’를 향해 한 남성이 호통을 쳤다. “여성 해방이랍시고 아무랑 자고 애도 니네 마음대로 지우겠다고? 정신 차려 이년들아!” 그 옆에서 여성들은 외쳤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 미래는 없다! 여성도 인간이다!” 언론은 어느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할까. 적어도 어느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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