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최순실 게이트’에 한없이 무기력한 MBC 보도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반성문’을 시작으로 MBC 기자들의 성명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8일 MBC 보도본부 뉴미디어뉴스국 박소희 기자는 사내 게시판에 “지금 현실은 참담하고 부끄럽다. 내가 선배들께 배웠던 기자의 기본, MBC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취재 잘하고 기사 잘 쓰던 유능한 선배들이 다시 기자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이어 “부끄러움은 양심의 또 다른 이름이라 했다”면서 “보도국장, 보도국 간부로서 그동안 MBC 뉴스를 만들어 온 모든 분께 부탁한다. 이 부끄러움마저 외면하지는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국 소속의 고현승 기자는 최근 MBC 뉴스에 달린 시청자들의 힐난성 댓글들을 나열하며 “이런 글들을 보고 드는 마음,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답을 알고 있으면 실천에 옮기면 된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3일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최순실씨 관련 MBC 보도를 비판하는 피케팅을 진행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시사제작국 강연섭 기자도 “이러려고 기자 된 게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뉴스가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는 지금, 하지만 MBC 뉴스에 대해 사람들은 시청률 3%로 대답했다. 볼 게 없다는 것”이라며 “이런데도 보도국에서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강 기자는 “지난 9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된 뒤 살아있는 권력을 정조준하기는커녕 죽은 고기를 뜯어 먹는 언론을 사람들은 하이에나라고 조롱하고 있다”며 “이러려고 기자 된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MBC 기자라는 사실이 시대의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자조했다. 

현재 보도국 내에선 사회1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주만 기자(차장) 이후 두 번째로 사회2부 박주린 기자가 “시청자들이 묻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부인하기 어려운 증거가 드러난 뒤에야 정권의 치부를 보도하기 시작한 우리를 향해 거리의 시민들이,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너희가 그럴 자격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며 “기자들이 거리에서 봉변을 당하며 쫓겨나고 전례 없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보도 책임자는 권한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공영방송 MBC가 최순실 관련 의혹 보도를 축소하고 대통령 발언 전달에 충실했던 것에 대해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이 사내에 자성의 글을 올린 후 7일  김주만 기자도 보도국 내부 인트라넷 게시판에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의 퇴진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관련기사 :  △MBC 기자협회장 “우리는 공범이다” 반성문 △MBC 기자 “보도국장부터 물러나야 한다”)

다음은 8일 올라온 MBC 기자들의 성명서 전문이다.

[박소희 기자]
邦無道穀 恥也(나라에 ‘도’가 없음에도 녹봉을 받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나라에 ‘도’가 없음에도 부귀함은 부끄러운 일이다)

廉恥(염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지금 현실은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제가 선배들께 배웠던 기자의 기본, MBC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취재 잘하고 기사 잘 쓰던 유능한 선배들이 다시 기자로 돌아와야합니다.
부끄러움은 양심의 또다른 이름이라 했습니다.
보도국장, 보도국 간부로서 그동안 MBC 뉴스를 만들어 오셨던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이 부끄러움마저 외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고현승 기자]
최근 우리 뉴스에 대한 시청자 댓글입니다 
(생략)
이런 글들을 보고 드는 마음...
왜일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답을 알고 있으면 실천에 옮기면 됩니다.


[강연섭 기자]
“이러려고 기자 된 게 아닙니다.”

지난 4일 박 대통령이 두 번째 대국민사과를 하자마자 SNS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라는 말이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하기로 유명한 박 대통령이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집어냈다는 겁니다. 바로 자괴감. 지금 우리가 그렇습니다. 

뉴스가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는 지금. 하지만 MBC뉴스에 대해 사람들은 시청률 3%로 대답했습니다. 볼 게 없다는 겁니다. 이런데도 보도국에서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9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된 뒤 그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신문과 종편이 연일 최순실 관련 단독, 특종을 보도할 동안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타사가 이미 다 훑고 지나가 이미 풀 한 포기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취재해야 하는지 방향은 정해졌습니까? 신문과 종편, 포털에 나온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퍼 나르기’ 하는 데 급급한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정조준하기는커녕 죽은 고기를 뜯어 먹는 언론을 사람들은 하이에나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MBC뉴스의 정체성과 방향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집회현장에서 MBC 취재진들이 맞거나 쫓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열심히 취재했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낙종을 했다면 그나마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취재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허망합니다. 이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취재현장을 누빌 수 있는 선후배와 동료들이 취재를 할 수 없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러려고 기자 된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MBC 기자라는 사실이 시대의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주린 기자]
시청자들이 묻고 있습니다

5년 전 바로 이맘때, 한 카메라 기자가 이 곳에 글을 남겼습니다. 한미 FTA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중, 현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넘어 얻어맞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안 그래도 각종 취재 현장에서 차가운 시선을 알게 모르게 느껴야 했던 저로선 참담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후 편향 보도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는 기수별 성명이 이어졌고, 결국 기자 총회까지 열렸습니다. 

최근 국정 농단에 대한 항의 집회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사회부 기자가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욕설이 섞인 항의를 받기 시작했고, 결국 분위기가 격앙되면서 자리를 피해야 했습니다. 이 장면은 ‘MBC 기자들의 굴욕’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에 고스란히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5년 전과 달리 화가 나거나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딱히 수치스럽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느낀 게 저 뿐만은 아니었는지 보고 라인을 통해 내려온 지시는 “집회 현장에서 스탠드업과 인터뷰를 요령껏 하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제게, 우리 뉴스를 향한 비난과 조롱, 냉소와 외면을 체화하게 만든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답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문(自問) 하는 것을 멈췄기 때문입니다. 

정부 여당에 편향적이고 공정성을 잃었다는 회사 안팎의 지적에 대해, 특정 정치 세력의 선동과 근거 없는 비방으로 폄하해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언론사들이 힘을 줘 보도하는 사안을 누락하거나 축소했다는 의견에 대해,  ‘가치 판단의 문제’로 합리화해왔기 때문입니다. 각종 조사에서 신뢰도와 영향력이 곤두박질칠 때, 그 역시 편향된 시각에서 바라본 결과라고 애써 무시해왔기 때문입니다. 뉴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사 행위나 분열 조장쯤으로 규정짓는 보도국의 분위기 속에서, 저 역시 반성보다는 냉소가 차라리 속이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묻습니다. 취재 현장에서 MBC 기자들을 쫓아내는 시민들과 우리가 뉴스를 전하는 시청자들은 다른 사람들입니까. 뉴스데스크 대신 다른 뉴스로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은 ‘더 볼 게 많아서’ 그러는 것입니까. 무게감 있는 제보가 줄어들고, 취재원들이 입을 닫는 게 단순히 기자들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이런 물음들 역시 특정 노조 소속 조합원의 삐뚤어진 시각 때문입니까.  

뒤늦게 취재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고전하는 동료 기자들의 노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보도하기 앞서 우리 뉴스가 과연 불편부당했는지, 국민들이 정작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 줬는지 자문해 봐야합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거리에서 봉변을 당하며 쫓겨나고 전례 없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보도 책임자는 권한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부인하기 어려운 증거가 드러난 뒤에야 정권의 치부를 보도하기 시작한 우리를 향해 거리의 시민들이,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너희가 그럴 자격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라’며 다그치고 있습니다. 이 목소리들이 공영방송 MBC를 향해 그래도 남아있는 기대의 반증이자 얼마 남지 않은 경고라고 느끼는 건 저 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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