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들은 아직 제대로 된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버지의 장례를 모시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해야겠습니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생명과 평화 일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영결식에서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씨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빠 사랑해요”였다. 내년 아버지 기일에는 반드시 승리의 소식을 들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영결식장에 모인 시민들에겐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며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백도라지씨는 “아버지가 쓰러진 지 거의 1년, 돌아가신 지 40일이 넘었다”며 “아버지는 그리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는데 가시는 길까지 이렇게 가시밭길일 줄 몰랐다. 이제 고통도 아픔도 없는 곳으로 가서 영원한 안식을 취할 테니 마음이 아파도 고이 보내 드리겠다”고 말했다. 

▲ 5일 오전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앞에서 열린 노제에 참석한 백도라지(아이 안은 사람)씨와 유족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씨는 “우리에겐 여러 숙제가 남았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살인범 경찰들을 꼭 처벌받게 할 것”이라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검 운운하면서 아버지 시신을 빼앗겠다던 경찰들이 오늘은 아버지가 가시는 길 지켜주고 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이 정권의 수명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경찰은 대통령 말고 국민에 충성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백씨는 이어 “검찰은 수사를 진행할 의지 전혀 없어 보인다. 수사한다 한들 최순실 수사처럼 빈 박스나 들고 왔다갔다 사진이나 찍히면 자기들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정치권서 약속한 대로 꼭 특검이 실시돼 강신명(전 경찰청장) 이하 살인 경찰들이 모두 법의 심판 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5일 오전 서울 종로 노제를 마친 고 백남기 농민 장례행렬이 오후2시 영결식이 열릴 광화문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무대에서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 관한 영상이 상영되고, 오른쪽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씨는 아버지의 사망진단서를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한 서울대병원을 향해서도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헌신적으로 돌봐줬으나 돌아가시고 나선 의사로서 지침이나 의료 윤리를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가족의 거듭된 요청에도 병원은 사망진단서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한다. 애초에 우리 가족과 경찰의 싸움에 병원이 왜 끼어들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병원 진단서를 근거로 검찰의 부검 영장이 발부됐기에 이에 대한 책임도 꼭 묻겠다”고 밝혔다.

백씨는 이어 “아버지가 시위에 나왔다 물대포를 맞아 쓰러지고 결국 돌아가신 이유 생각하면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쌀값과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는 농촌의 현실이 떠오른다”며 “국민 여러분인 우리 아버지를 위해 마음 보내준 것처럼 농업과 농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백남기씨 부인 박순례씨도 “우리 가족이 오늘 이 자리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여러분이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함께 해준 덕분”이라며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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