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측근 최순실(60)씨의 국정농단 사태에 청와대 기자도 충격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과 발언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석하고 향후 정국을 전망하는 이들의 주된 업무가 결과적으로 최씨 손바닥 위에서 행해진 꼴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청와대 출입기자 김상연 기자는 2일 “대통령‧참모진‧민심 사이 청와대 기자들도 공황상태”라는 제목의 기자 칼럼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심경을 전했다.

김 기자는 “최순실 사태로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청와대 출입기자들만큼은 아닐 것 같다”며 “국정 최고책임자의 연설문이기에 청와대 기자들은 한 줄 한 줄 밑줄을 쳐 가며 의미를 찾아내려 애썼다. 대통령이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관해 결단을 내릴 때마다 의미를 분석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 연설문과 그 결단이 ‘최순실의 결재’를 거친 것이라니”라고 개탄했다.

김 기자는 이어 “그동안 허깨비를 놓고 분석하고 머리를 쥐어짰다는 얘기인가. 할 수만 있다면 지난 6월 청와대를 출입하게 된 이후 썼던 기사들을 모두 삭제해 버리고 싶다”고 적었다. 그는 “반성도 하게 된다.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가끔 어이없는 실수가 발견돼 논란이 일었을 때 왜 좀 더 파고들지 않았을까”라고 자책했다.

▲ 서울신문 2일자 기자 칼럼.
김 기자는 “사실 일부 참모에게 경위를 물어보긴 했지만, 그들도 정확한 것은 모르고 있었고 더 이상 취재를 진전시킬 수 없었다”며 “그래도 설마 연설문이 외부로 나가 수정을 거쳐 돌아온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는 또 “간혹 대통령은 옷을 어디서 구매할까라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대통령의 패션까지 파고드는 것은 선정적이고 곁가지라는 생각에 취재를 안 한 것도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이어 “요즘 청와대 기자실은 무거운 침묵이 지배하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며 “한 기자는 ‘넋이 빠져서 그런지 다리에 힘이 없어 운전할 때 가속페달 밟기도 힘들다’고 털어놨다”고 말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허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기자는 또 “취재원인 청와대 참모들과의 식사 약속이 줄줄이 취소되고, 수석비서관들이 한꺼번에 옷을 벗는 바람에 취재망에 구멍이 뚫린 것도 달라진 풍경”이라고 밝혔다. 

김 기자는 “청와대 밖에서 일반 국민을 만나 보면 금방이라도 나라가 결딴날 것 같다”며 “그런데 청와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나라가 그런대로 굴러갈 것 같다.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기사를 쓰려니 ‘정신분열증’에 걸릴 것만 같다”고도 적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솔직히 밝힌다면, 그래서 국민들이 진정성을 느낀다면 오히려 바닥에서 다시 일어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대통령이 흘리는 참회의 눈물은 상처받고 공황 상태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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