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죽은 자의 심정을 헤아려 볼 순 있다.

최순실씨가 사용했던 태블릿 PC를 살아 생전 이춘상 보좌관이 건넸다는 MBC 보도를 놓고 논란이 많다.

MBC는 단독 타이틀을 달고 "청와대 문서가 대량 저장돼 있던 태블릿 PC가 누구 것인지, 어떤 경위로 유출됐는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며 "4년 전 숨진 고 이춘상 보좌관이 최순실 씨에게 넘겼다는 진술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MBC는 태블릿 PC를 개통한 것으로 확인된 김한수 행정관을 불러 검찰이 조사한 결과 "2012년 대선 당시 교통사고로 숨진 고 이춘상 보좌관이 최 씨에게 태블릿PC를 직접 넘겨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MBC는 "태블릿 PC 안에 들어 있는 각종 문건들은 고 이 보좌관이 숨지기 전까지 최 씨와 공유해 왔다는 정황도 포착됐다"며 "검찰은 이 문건들이 이메일을 통해 최 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MBC 보도를 정리하면 고 이춘상 보좌관이 최순실에게 태블릿PC를 건넸고, 이메일을 통해 청와대 문건을 유출케한 장본인으로 볼 수 있다.

MBC 보도는 청와대 문건 유출을 가능하게 했던 창구 역할로 이춘상 보좌관을 지목한 것이지만 여러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이춘상 보좌관이 설령 최씨에게 태블릿PC를 넘긴 당사자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억울한 만한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태블릿 PC를 실제 사용한 주인은 이미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수사의 핵심은 누가 청와대 문건을 최씨에게 유출시켰냐는 것인데 MBC는 이춘상 보좌관이 문건을 주도적으로 유출한 범죄인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청와대 문건을 유출시킨 범죄인에 속하지 않는다.

▲ 국정농단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10월3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보좌관은 박근혜 후보의 차량을 급하게 따라가는 과정에서 앞 차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 보좌관이 사망한 시점은 지난 2012년 12월 2일이다. 이 보좌관이 김한수 행정관에게 태블릿PC를 받아 최씨에게 넘겨줬다면 대선 이전에 이뤄진 일이고, 그 시점에서 PC안에 들어있던 문서도 대통령기록물과 청와대 문건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의 문건이다.

이춘상 보좌관이 최씨에게 PC를 넘겼더라도 국정농단 범죄로까지 볼 수 없고, 이후 이메일을 통해 태블릿 PC로 청와대 문건을 넘긴 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게 당연하다.

최초 최씨의 태블릿PC를 확보했던 JTBC는 PC안에 들어있는 파일에 대해 2012년 6월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200개 파일이라고 전했다. 이 보좌관이 최씨에게 PC를 넘겼더라도 박 대통령 후보 시절 6개월 동안의 문서를 공유한 것이다.

하지만 MBC는 "최씨는 박 대통령 후보 시절에 문제의 태블릿 PC를 받아, 고 이 보좌관으로부터 청와대 문서를 메일로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청와대 문건조차 구경할 수 없었던 이 보좌관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이어 MBC는 "검찰은 최씨가 이춘상 보좌관이 숨진 이후에도 일정 기간 문건을 받아보았다며 이 부분을 더욱 면밀히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했지만 이춘상 보좌관으로부터 문건 유출이 시작되고 그 죄가 크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 같은 보도는 죽은 자에게 죄를 씌우고 현재 청와대 문건 유출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전달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은폐시키는 효과로 발휘될 수 있다.

이 보좌관이 태블릿PC를 넘긴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다른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정황을 파헤치는 보도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MBC의 보도는 KBS가 "검찰 조사에서 그는 이 PC를 대선 캠프 4인방 중 한 명이었던 고 이춘상 보좌관에게 넘겨줬다고 진술했다"면서 "따라서, 검찰은 고 이춘상 보좌관과 한 팀이던 정호성 전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에서 이 PC를 사용하다 최순실 씨 측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과 비교된다.

MBC가 이춘상 보좌관이 태블릿PC를 넘긴 행위에만 ‘집착’했을 때 KBS는 문고리 3인방의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보도한 것이다.

KBS는 "검찰이 김한수 행정관과 정 전 비서관 등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주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라며 "현재 검찰은 태블릿PC에 대한 과학적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중략)...검찰은 첨단범죄수사부 인력을 추가 투입해 태블릿 PC 속 자료의 전달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춘상 보좌관은 하늘에서 MBC 보도를 어떻게 봤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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