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정용인 주간경향 기자는 최근 발행한 주간경향 1200호에서 “전횡 전모 담고 있는 ‘최태민 보고서’ 9년 추적기, 박근혜는 어떻게 최태민 일가에 ‘포획’되었나”라는 기사를 통해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보도했다. 그는 최근 정국을 보며 “그간 기사에 쓰지 못했던 일들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태민 일가를 9년간 추적해왔다.

최태민 일가가 이슈가 된 건 크게 네 번이다. 1980년대 말부터 있었던 육영재단 분쟁,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2016년 최순실 게이트다. 정 기자는 “육영재단 분쟁 당시에는 여성지들이, 레이디경향에서도 최태민 인터뷰를 했는데 박정희 딸 관련 기사라 주요 뉴스로는 다뤄지지 못하지만 국민들이 궁금해 하니까 취재를 많이 했었다”고 말했다. 당시엔 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가십거리 정도로 취급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된 이후 이는 가십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정 기자는 2009년 ‘최태민 보고서’ 제작에 관여한 전직 정보기관 인사를 만나 문건 제작 배경에 대해 듣게 됐다. 요지는 노태우 대통령시절 청와대가 직접 지시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 기자는 해당 문건 뿐 아니라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CD 등에 담겨 유포된 ‘최태민에게 놀아난 박근혜’라는 제목의 파일 등도 입수했다.

▲ 1976년 당시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일가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누구든 접촉했다. 

오랜 추적은 단편적인 사건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게 했다. 정 기자는 “종편에서 정관모(정윤회 아버지)씨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전 부인 임아무개씨(최순실 어머니) 팔순잔치에 가 노래를 불렀다고 확인했는데 맥락이 있는 내용”이라고도 전했다.

세간에 최태민과 박 대통령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루머도 돌고 있다. 정 기자는 이를 최근 정관모씨 인터뷰 과정에서 질문했고,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씨 팔순잔치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만약 루머가 사실이라면 그게 가능하겠느냐’며 루머를 일축하는 답을 한 것이다.

정 기자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게 가족이란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보다는 최태민 일가로 보는 게 맞다. 정 기자는 “박지만씨만 하더라도 아이가 셋인데 그들이 청와대에 간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최순실씨는 청와대 정문으로 수없이 드나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 주간경향 1200호

정용인 기자는 “최근 일주일 사이 이렇게 빨리 상황이 변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JTBC ‘뉴스룸’에서 최순실 태블릿 PC 파일을 보도한 이후 최순실의 입국까지 국면은 시시각각 변했다. 정 기자는 “JTBC가 과연 이 사건에 개입돼 있는 삼성을 제대로 다룰까”에 대해 주목했다. JTBC가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다루며 삼성 문제점에 대해 보도하겠다고 한 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JTBC 지배구조에 의문을 품는 것은 사실이다.

정 기자는 “최근 언론 보도의 일부는 삼성이 정보의 출처일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이 개입된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꼬리자르기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기자에 따르면 이번에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최순실 일가와 소유 재단에 돈을 댔고, 이를 통해 어떠한 이득을 취했는지는 향후 밝혀야 할 부분이다. 정 기자는 “재벌가의 많은 이들이 승마를 했고, 사소하게는 말을 구입하고 관리하는 노하우까지 (정유라에게) 누가 코치해줬겠느냐”며 “최순실-박근혜가 내쳐지더라도 재벌권력은 살아나는 건 아닌지 지켜봐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삼성이 관련됐다는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최순실과 정유라, 그 측근들에 재벌이 댄 돈은 수천억대로 추정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인 많은 시민 입장에서는 의아한 부분이 있다. 삼성은 왜 최순실 일가에 그렇게 돈을 바쳐야만 했을까? 아직 정치권력이 시장권력 우위에 있는 걸까?

정 기자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벌을 대하는 것과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을 대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렇게 볼 수 있다. ‘아버지(박정희)가 안 도와줬으면 (재벌이) 성공할 수 없었다.’ 기업이 권력과 유착관계로 성장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재벌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안타까운 건 박 대통령이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재벌을 통제하기 보단 사적으로 이용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박 대통령 지지자들도 재벌을 통제하는 역할을 기대했을 텐데, 지금 드러난 건 최태민 목사가 구국봉사단을 통해 ‘해먹은’ 것을 수십 년 만에 재현하는 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주간지 기자들은 보통 월요일에 발제를 해 금요일에 기사를 마감한다. 독자들은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 기사를 받아본다. 요즘 같이 하루가 다르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주간지 기자들은 발제도, 주제잡기도, 취재도 더욱 만만치 않다. “계속 최순실에 달라붙어야죠.” 그가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