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이미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져야 될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지난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 현장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연설 중 한 구절이다.

이날 속 시원한 이재명 시장의 연설에 수많은 이들이 열광했지만 ‘아녀자’라는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녀자’라는 말은 소견이 좁은 아이나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최근에는 사라진 말이다. 여자를 낮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 '민중의소리'의 이재명 성남시장의 연설 영상 갈무리. 출처=민중의소리 페이스북 영상
이재명 시장의 사례 외에도 포털 사이트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 SNS에는 ‘병신년’, ‘닭년’부터 시작해 ‘여자가 나라를 망쳤다’, ‘강남 아줌마 하나가’, ‘강남여자 순실이’, ‘미친년들에게 농간 당했다’ 등 필요이상의 여성혐오적 표현이 넘쳐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랄한 비판이 필요하지만 여성비하적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쓰여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비판할 지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사안의 중요성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정유라씨의 여성성을 강조하며 희화화하는 것은 문제다. 

또한 이번 사건은 최순실씨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그 외 핵심 권력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묵인하면서 권력을 유지해왔는지 집중해야하는데도 검찰과 대다수 언론은 최순실씨의 인상착의 등을 주목하는 본질에서 벗어난 선정적인 보도를 쏟아내기도 했다. 

▲ 31일 이후 언론에서 쏟아진 '최순실-프라다 구두' 보도.
이에 알바노조는 31일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합니다’라는 성명에서 “우리는 박근혜-최순실을 여자이기 때문에 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비판한다”라며 여성혐오적 표현을 자제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어딜 봐서 여성혐오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모녀를 비판하는 언사가 아니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흐름을 보면 지금까지 남성 정치인들이 실정을 했을 때와 비판지점의 결이 다른 경우가 보인다. 예를 들어 전두환씨의 실정을 말할 때, “그 남자 때문에 나라 망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혹은 ‘박정희 그 남자, 박정희 그 아저씨’ 등의 표현은 쓰지 않는다.

이러한 시선은 정치인의 기본값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남성 정치인은 정치 등 공직을 맡을 때 정치인으로서만 평가당하지만 여성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의 평가와 함께 여성으로서의 평가도 함께 받는다.

박이은실 ‘여성이론’ 편집주간은 1일 미디어오늘에 “여성이 정치인 등 공무를 맡을 때 그 사람을 공무를 맡은 직으로서의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 평가하려고 하는 태도가 있다”며 “공직자 등에 여성의 이미지를 덧씌워서 보려고 하는 이유는 가부장적인 인식태도와 남성 중심적 시선이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이은실 편집주간은 “여성 정치인을 비판할 때 빼놓지 않는 부분이 피부과 수술, 의상 등을 지적하는 방식이다”라며 “남성 정치인의 차가 얼마인지, 얼마짜리 신발인지, 얼마짜리 골프를 치는지는 보도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보도의 양상에도 여성비하가 끼어들었다. 특히 31일 최순실씨의 검찰 출두 현장 보도에서 그 양상이 두드러졌다. 31일 최순실씨가 검찰에 출석하면서 인파에 밀려 벗겨진 ‘프라다 구두’ 기사가 네이버 기준 400여건 쏟아졌다. ‘최순실 신발 프라다 슬립온, 중고가 50만 원 이상’, ‘죽을죄를 지었다던 검찰 출석 최순실 온몸엔 프라다‧샤넬 등 명품’과 같은 보도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최순실씨와 정유라씨가 거주한 서울 신사동 미승빌딩을 압수수색하면서 명품이 들어있는 신발장 등을 보여주고 이를 보도한 것도 선정적 보도로 꼽을 수 있다. 남성 정치인이 검찰에 출두했을 때 그가 입은 옷이 주목된 경우는 많지 않다. 이 역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정말로 비판받아야할 점이 아닌 여성인 점을 비판 대상으로 삼고 희화화하는 모습이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지금 ‘여자 세 명이 나라를 망쳤다’든가 ‘치마 정치’와 같은 단어가 언급되는데 지금까지 남자 정치인들이 잘못을 했을 때 ‘남자들이 나라를 망쳤다’라는 이야기는 안하지 않았나”라며 “비판할 것을 비판해야지 여성인 점을 비판하는 것은 여성혐오 일뿐이며 언론은 이같은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정주 소장은 “집 안의 신발장 보도라든가 프라다 신발 보도 등 정말 취재해야할 사실보다 선정적인 보도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결국 여성혐오를 등에 엎인 선정적인 보도는 ‘개인에 대한 한풀이’로서 소비될 뿐이며 정말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은 묻히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끼어든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이들에게 또 누군가는 “지금 화력을 모아 분노해야할 지점에 여성혐오 운운하면서 초점을 흐리지마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여성혐오와 여성비하적 표현을 덜고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들만을 가지고도 충분한 비판이 가능한 사안이다. 여성혐오를 분노의 화력으로 삼으려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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