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방송사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상파 3사 등 주요 방송사에서는 ‘특별취재팀’을 꾸리며 뒤늦게 최순실 보도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비선에 대한 전 사회적 분노가 대통령 하야와 탄핵 요구로 분출되는 상황에서 방송사의 대응이 ‘면피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박근혜 비판’이라면 치를 떨던 과거와 비교해보면 일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보도 책임자들의 침묵이 기자들의 자존감을 회복 불능 상태로 망가뜨렸다. “쉽게 잠들기 어려운 나날”이라는 현직 언론인의 개탄과 한숨이 방송의 정상화 요구로 밑바닥부터 결집되고 있는 것이다.

KBS는 지난 26일 오전 10여 명 이상의 기자로 구성된 ‘최순실 사건 전담 TF’를 구성했다. KBS 기자협회도 27일 잇따라 총회를 열고 사태 인식을 공유했다. 보도 책임자들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보도 정상화를 압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를 위한 분노의 버스킹’에서 한 시민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보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최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방관했던 책임을 물어 김인영 KBS 보도본부장과 정지환 보도국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성재호 본부장은 28일 “국정 마비 상태에서 보도본부 책임자들이 청와대 눈치를 볼 이유는 없다”며 “이젠 기자들이 특종을 한다고 아이템을 막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 하야와 탄핵이 나올 정도의 여론이면 당장 특집 방송을 편성해야 한다”며 “그동안 대통령이 해외 순방 등을 하면 특집 방송이 편성되곤 했는데, 이번 사태를 정규 편성 안에서만 땜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MBC와 SBS에서도 공교롭게도 같은 날(26일) 특별취재팀이 구성됐다.

MBC의 경우 5명으로 특별취재팀을 꾸렸지만, 보도가 정상화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2년 170일 MBC 파업 이래 안팎으로 인정받던 유능한 인력들은 회사를 나가거나 비제작부서로 좌천됐다. 취재‧제작과 무관한 부서에서 업무를 보는 상황이 수년째 고착화하다보니 취재 능력 자체가 퇴화했다는 평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는 27일 노보를 통해 “국정 농단 사태를 은폐하는데 공영방송 MBC의 대표 뉴스는 사실상 청와대와 공조했다”며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SBS의 경우 일단 기자 6명을 중심으로 취재팀을 꾸렸다. 그러나 내부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다. 

공영방송과 비교하면 청와대의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지배 구조이나 회사가 기자들을 자사 이해를 대변하는 ‘로비스트’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 TV조선 뉴스쇼판과 인터뷰하는 최순실씨. 사진=TV조선 뉴스쇼판 방송화면 갈무리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지난 26일 “역사를 뒤흔들 언론의 역할로 기록될 최순실 관련 의혹 폭로 보도의 과정에서 SBS의 이름을 단 보도는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윤 본부장은 “경영진들은 회사를 위한다며 중간광고를 포함한 온갖 정책적 이해를 고려해 끊임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언론인들을 정보보고나 하는 로비스트로 전락시켰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SBS본부도 28일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YTN도 법조팀을 포함해 11여 명으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을 꾸렸지만, 노동조합을 포함한 4개 직능단체가 합동으로 개최한 27일 사원총회에서 구성원들은 대폭적인 지원과 취재팀의 자율성 및 독립성 보장을 사측에 요구했다.

이날 한 보도국 기자는 “특별취재팀 생긴다는 얘기 듣고 눈물이 났다. 백만 년 늦었지만 그래도 출발은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라며 “연합TV와 0.7~0.8% 시청률 놓고 싸우는 동안 JTBC는 차별화된 단독 보도로 공중파를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가.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밝혔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를 포함한 4개 직능단체가 합동으로 개최한 지난 27일 YTN 사원총회에서 구성원들은 특별취재팀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과 자율성 및 독립성 보장을 사측에 요구했다. (사진= 언론노조 YTN지부)
박진수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장은 27일 총회에 앞서 “최순실의 국정개입 뉴스를 접하게 된 충격보다 우리는 왜 바라보는 방관자적 시청자로 전락했는지가 더 슬프고 잠 못 들게 한다”며 “최순실 국정 농단의 뉴스가 온 나라를 뒤엎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도 몇몇 주요 간부는 ‘난 생각이 달라’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한다”고 개탄했다. 

YTN 사원들은 이번 사태를 ‘보도 참사’로 규정하고, 기자협회장의 긴급발제권 제도화 및 보도국장 임면 방식 개선 등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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