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를 백남기 농민 시신 강제 부검과 개헌 정국으로 뒤집으려던 박근혜 정권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감추고 곪았던 것들은 터져 나오고 의혹은 더 불거질 것이다. 청와대가 이번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여당도 돌아서고 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니 갈팡질팡도 오락가락이다. 

야당은 ‘거짓말과 부패로 얼룩진 국정농단 정권은 단 하루도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 여론’을 읽지 못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탄핵, 하야 등 단어가 내려올 생각을 않고, 인기 웹툰 댓글에도 ‘하야’란 단어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정치적 손익계산서의 주판알만 굴리는 모습이다. 지난 수 년 무능했던 모습 그대로다.

반면 조선일보는 재빠르게 수습안을 제시하고 있다. 10월 26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고 규정하면서도 “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에 놓여있으니 탈당을 통해 국내 정치에선 손을 떼고, 남은 1년 북핵 위기에 대해서만 대처하라고 주장했다. 내각 총사퇴와는 분명히 선을 긋고 거국내각 구성도 주문하고 있다. 이미 ‘플랜B’가 가동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오전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주장했다. 사진=청와대
무능한 야당, 플랜B 가동시킨 조선일보 

그렇다면 시민사회운동은 무엇을 요구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1960년 4월 혁명과 1987년 항쟁에서 그랬듯, 현 정세를 주도하고 대중 투쟁을 이끌어야 할 책임은 다름 아닌 민중운동 진영에게 있다. 이를 자각해 여론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빠르게 합의를 모아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고, ‘조롱꺼리’가 되기 충분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최순실을 무시하진 않더라도 투쟁의 주요 요구에서는 ‘정권 퇴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박근혜 뒤에 최순실이 있을지언정 국민의 불만은 엉망진창이 된 생계의 고통을 무시하는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탄핵’보다는 ‘하야’ 요구에 집중해야 한다. 탄핵의 주체는 국회이고, 국민적 분노에도 불구하고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친박계는 사안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며 시간을 벌려 할 것이다. 시간이 늘어지면 국민적 분노와 운동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되려 패배감만 안겨줄 위험도 있다. 이는 대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며, 새누리당에겐 재기의 발판이 될 뿐이다. 따라서 중심은 ‘즉각 하야’를 요구로 건 국민적 저항이어야 한다.

이 정권이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경악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권을 탄생시키고, 정권의 보호와 지원 아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내쫓으며 우리의 삶을 괴롭게 만들어온 실체는 재벌 자본이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이 나라 재벌들은 재벌 중심 발전국가의 온갖 혜택과 열매를 거머쥐었지만, 정작 외환위기나 세계적 금융위기가 찾아왔을 땐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에게 위기를 전가해왔다. 박근혜 정권을 추인하고 열매를 따먹은 것 역시 재벌들이다. 위기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한다.

▲ TV조선 뉴스쇼판과 인터뷰하는 최순실씨. 사진=TV조선 뉴스쇼판 방송화면 갈무리
‘탄핵’보다는 ‘하야’ 요구에 집중해야 한다.

탄핵이나 하야를 요구하지 말고, 내년 대선까지 시간을 끌고 가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주로 야당 쪽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를 발본적으로 변화시키길 원하는 사람들이 귀 기울일 견해는 아니다.

우선 조선일보나 새누리당 비박계, 안철수까지 정권을 규탄하고 준동하는 상황에서 국면이 1년 내내 민주당에게 유리할리 만무하다. 민주당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어정쩡하게 정권 규탄의 목소리만 내다가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 할 수도 있다. 이는 국민 전반의 분노를 설득하고 이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각종 보수세력 마저 박근혜에게 등을 돌린 이 상황이 나쁜 상황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민중운동이 보수 정치인의 꽁무니를 쫓는 투쟁을 할 수 없다. 지금껏 어느 대중적 저항도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할 일은 명확해진다.

▲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를 위한 분노의 버스킹' 참가자가 최순실 사태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다짜고짜 ‘퇴진’만 외치기만 해선 안 된다

전선을 주도할 수 있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투쟁을 주도해야 한다. 다짜고짜 ‘퇴진’만 외치기만 해선 안 된다. 세력 간 입장차가 불분명해지고, ‘죽 쒀서 개주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안 없는 저항을 경계하고, 민중운동의 대안을 합의해야 한다. 대중운동 성장을 전제로 한 중간 대안을 설정하고, 그것을 국민적 저항의 주요한 요구로 형성해야 한다.

개헌은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현 상황에서 다른 정치 체제를 주장하기 어렵고, 87년에서의 '대통령 직선제' 등과는 달리 일정한 합의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 의견임을 전제해 얘기한다면 이를 감안해 하야 후 ‘집권여당 제외한 거국내각 구성’과 ‘조기 대선 실시’를 요구하는 게 불가피할 수 있다. 목표가 확실하고, 대중적 합의가 이뤄지면 전선도 분명해진다.

무엇보다 민중운동의 조직적인 활력을 만들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게 이 싸움의 최대치가 될 것이다. 자칫하다 보수야당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이중대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은 피하면서, 이후 야권 어느 정치세력이 집권하더라도 독립적 지위를 가져야한다. 힘을 키워야 2017년 이후의 운동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우선, 다가올 대중 시위에 함께 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조직해야 한다. 둘째로 민중운동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하며 그 목표를 대중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허망한 세계에 대한 조롱적 시위가 아닌, 강탈당한 미래를 회복하는 적극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이후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하며, 노동자민중에게 어떤 정권이 필요한 지, 나아가 민중운동은 무엇을 요구할지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다음 시대의 문을 두드릴 권리도 앞장 서 싸우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움츠려 있던 민중운동에게 ‘차가운 가슴’, ‘뜨거운 이성’의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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