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의 틀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전송방식에 따라 별도의 허가를 받아온 케이블, IPTV, 위성방송의 구분을 ‘유료방송’으로 통합해 서로의 기술을 필요에 따라 쓸 수 있게 된다. 유료방송 칸막이가 무너지면서 케이블 업계의 권역제한 폐지가 추진돼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 유료방송발전방안 연구반은 27일 오후 토론회를 열고 유료방송 발전방안 초안을 공개했다. 연구반은 △유료방송 간 소유겸영규제 폐지(현행 33%까지 교차소유 가능) △방송허가를 전송방식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통합 △중장기적으로 케이블의 디지털 전환 완료 후 케이블 권역제한 규제 폐지 등을 제시했다. 

연구반의 정책을 종합해보면 IPTV와 케이블 업계 간 인수합병이 쉽게 가능해진다. 지난해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려 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점유율 산정 기준을 전국이 아닌 케이블 권역으로 정해 무산된 바 있다. 전국사업을 하는 IPTV와 달리 케이블은 78개 권역별로 독점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준으로는 IPTV와 케이블업계 간 인수합병이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했다.

▲ 미래창조과학부는 27일 오후 유료방송 발전방안 토론회를 열고 발전방안 초안을 공개했다.사진=금준경기자.
연구반 소속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케이블만 있을 때 만들어진 권역인데, IPTV가 도입되면서 전국단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됐다”면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허는 권역제한이라는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이정원 정보통신정책 연구원 박사는 “케이블 경쟁력 강화와 사업자들이 시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걸 자유롭게 하는 게 연구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쟁점 중 하나인 합산규제에 대해서는 연구반 내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3년 일몰’ ‘일몰 연장’ ‘50% 규제 적용’ ‘폐지’ 등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합산규제는 유료방송의 시장점유율을 케이블, IPTV, 위성방송으로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 가입자를 3분의 1이상 모집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것으로 지난해 3년 일몰로 도입됐다. 

연구반은 결합상품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동안 방송상품에 핸드폰을 묶어 판매할 수 없는 케이블 업계의 경쟁력이 IPTV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통신시장의 지배력이 방송시장으로 전이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날 연구반은 모바일과 케이블TV를 결합한 동등결합 판매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동등결합 활성화’를 제시했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책을 보완하는 수준이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케이블이 동등결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SK텔레콤을 제외한 통신사와는 제휴가 진행되지 않고 있고, SK텔레콤 역시 논의과정이 길어지고 있다.

케이블업계는 그동안 IPTV의 결합상품에서 모바일을 제외하거나 결합상품 간 할인율을 똑같이 정하는 ‘동등할인’도입을 요구해왔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김경환 상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장을 위해 결합판매를 중단시킬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단통법처럼 취지는 좋지만 소비자 혜택이 저해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결합상품을 제한하면 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발전방안 초안을 접한 사업자들의 입장은 엇갈렸다. 김정수 케이블협회 사무총장은 △소유겸영 규제 폐지 찬성 △합산규제 33% 유지 △권역 제한 폐지 반대 △ 더욱 강력한 결합상품 대책마련 △디지털 전환 지원 등을 요구했다. 물론, 케이블업계 내부에서도 권역을 폐지해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려는 목소리가 있지만, 권역이 무너지면 지역에 기반을 둔 다수 회원사들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고흥석 IPTV방송협회 부장은 권역 제한 폐지여부, 결합상품, 합산규제 등 현안에 관해 “사안마다 회원사별 입장이 다르다”고 밝혔다. 결합상품의 경우 KT와 LG유플러스가 모바일 점유율이 높은 SK텔레콤의 결합상품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합산규제는 점유율 상한선 직전까지 채운 KT가 반대 입장이고, 경쟁사들은 찬성한다. 케이블과 인수합병을 추진하지 않는 KT는 케이블 권역 폐지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김경환 교수는 “사업자 의견수렴을 해야 하는데, IPTV는 도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연구반은 지상파와 유료방송 플랫폼 간 벌어지고 있는 재송신 갈등에 대해 최근 방통위가 제정한 ‘지상파방송 재송신 협상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결론을 냈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에 채널을 제공하는 대가로 가입자당 재송신 수수료를 280원씩 받고 있고, 지난해부터 400원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공동의 적을 둔 케이블과 IPTV는 지상파를 비판했다. 고흥석 IPTV방송협회 부장은 “대가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지상파가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케이블협회 사무총장은 한발 더 나아가 지상파 방송 재송신수수료를 요금 고지서에 별도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상파가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다. 청구서에 지상파 가격이 얼마인지 알려주고, 재송신수수료를 400원으로 인상하면 얼마나 값을 올리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유료방송 고지서에 지상파 요금을 별도로 표기하고 있다.

지상파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자 MBC 관계자는 질의를 통해 “같은 반에 고학년(IPTV)과 저학년(케이블)이 함께 하게 돼 저학년들이 밀리는 문제가 벌어진 건데 엉뚱하게 우윳값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료방송 간 힘의 균형을 다루는 논의에서 지상파 콘텐츠 제공대가까지 다루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러자 김정수 케이블협회 사무총장은 “우윳값을 2000원씩 받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연구반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무산 이후인 8월 꾸려졌고, 추후 2차 공청회를 거쳐 11월 중 유료방송 발전방안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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