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 의혹을 받던 최순실씨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취임 이후 보좌 체계가 안정화되기 전까지 연설문과 홍보 등에 대한 최순실씨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해명했으나 그 기간이 1년 이상이었다. 

비선실세 의혹이 제기된 이후 하락하는 지지율을 방어하려는 듯 이례적으로 빠른 사과를 했으나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을 갈수록 커지고 있어 임기말 국정수행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찰 고발을 의결했다. 지난 21일 진행한 국정감사에 우병우 수석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했다는 이유다. 

▲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를 위한 분노의 버스킹' 참석자들이 '박근혜 하야'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야당은 이원종 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을 위증죄로 추가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지난 국감 당시 최순실씨 비선실세 의혹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으나 언론 보도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등을 통해 볼 때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게 야당 주장이다.

야당은 비판 화살을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직접 겨누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병우 수석 해임에는 공통된 입장을 보이면서 청와대 참모진 전면 개편이나 특검 도입 등도 촉구하는 상황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낮의 대통령은 박근혜, 밤의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며 “국기문란을 넘어 국정운영 시스템을 붕괴시킨 이 참사는 대통령이 불러일으킨 인재”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녹화에 대해서 “자백이 아닌 변명을 하고 끝냈다”며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이 탄핵, 하야가 언급되는 데 이것이 국민의 솔직한 여론”이라고 질타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사과로 국정농단이 박근혜 대통령 뜻에 따라 이뤄진 일임이 밝혀졌다”며 “최순실 게이트가 이제는 박근혜 게이트가 됐고 모든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대표는 국민적인 탄핵 요구에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응답하는가에 달려 있다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적인 교체와 내각 총사퇴를 통한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해 통치 권한을 이양하라”고 촉구했다.

▲ 김종훈 윤종오 무소속 의원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후 기자회견장을 나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정치권에서는 무소속 윤종오·김종훈 국회의원이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야당이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의원들 사이에서는 탄핵 주장도 제기된다.

시민사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하야 요구는 더욱 직접적이다. 박근혜대통령탄핵대학생운동본부라는 단체가 등장했고 이들은 이날 정오께 국회에서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기습시위를 벌였다.

청년단체인 청년좌파는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하야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청와대 앞 효자동 삼거리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를 위한 분노의 버스킹' 참가자가 최순실 사태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를 위한 분노의 버스킹' 참석자들이 '박근혜 하야'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8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시민사회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27일 광화문 일대를 행진하는 “박근혜 퇴진 광화문 행진”이 제안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는 “탄핵”, “박근혜 탄핵”, “하야” 등 단어가 27일까지 수일 째 검색 순위 상위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위기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을 호위했던 새누리당도 이번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서는 방어에 역부족인 모습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엄중한 상황이므로 국가 전체와 당을 고려한 신중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하면서도 “문제는 대통령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며 최순실의 조기 귀국과 신속한 관련자 조사 등을 당부했다.

▲ 이정현(사진 앞줄 왼쪽)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사진 앞줄 오른쪽)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무거운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비박계 중진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과 김용태 의원 등도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각각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정병국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은 특검까지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날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는 특검·국정조사 등은 물론이고 지도부 총사퇴 후 비상대책위원회로 현 시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특검 도입에 이견을 보였으나 이날 오후 열린 의총에서는 특검 도입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이견은 없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전면 교체 요구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운신 폭은 좁아졌다. 지난해 끝내지 못한 4대 부분 구조개혁은 물론이고 경제활성화법안 통과 등 국회 도움을 받아야 할 업무가 산적해있다. 경제는 침체기에 든 데다 부동산으로 겨우 성장률을 떠받치고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임기 말 부담이 는 상태다.

게다가 18년여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고락을 함께했던 ‘문고리 3인방’ 마저 교체 요구를 받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 운영이 안정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임기 말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무원 사회가 얼마나 힘 있게 움직여 줄지도 미지수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비선실세 국정농단 편파기소 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단독 보도를 쏟아내며 최순실 의혹을 쏟아내고 있는 종합편성채널 JTBC와 TV조선은 이날도 ‘단독’ 보도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이 끝나지 않았고 어떤 사안이 더 터져 나올지도 가늠할 수 없다.

검찰 수사는 당초 형사8부에 배당됐다가 수사팀을 확대해가고 있다. 여야가 특검에 합의하는 과정에서의 진통과 수사 후 쏟아지는 의혹 등은 임기 말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로 사실상 레임덕이 확정됐다”며 “새누리당이 내년 대선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특검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요한 평론가는 “친박계에서도 악화되는 상황을 방어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면 슬슬 탈박, 멀박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며 “지금은 오히려 비박 쪽에 힘이 실려 있지만 비박도 계파가 나눠지고 친박이 러브콜을 보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출마가 희박해 지면 새누리당의 정권재창출은 힘들지 않겠냐”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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