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라인만 봐도 기대하고 설레는 이름이 몇 있다”
“좋은 칼럼은 종이신문 구매 동기가 되기도”
“이 칼럼은 조만간 중고교 교과서에 실린다에 한 표”
“중앙일보가 조선·동아보다 괜찮아 보인다면 그건 그의 칼럼 덕분이다”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칼럼에 대한 언론계 종사자들의 평가다. 권 논설위원의 글은 언론계에서 인기가 많다. 그의 칼럼이 게재되는 화요일이면 기자들은 “일독을 권한다”며 그의 글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다. 

그 행렬에 동참하고 싶진 않았다. 8월16일 “우린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칼럼을 두고는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중앙일보여서 권석천 권석천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계속 보다보니 좀 잘 쓰는 것 같다” “잘 쓰시는 건 인정. 다들 너무 좋아하니까 덩달아 좋아하기 싫다.” 

권 논설위원이 제42회 안종필 자유언론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중배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이 1991년 수상한 이후 ‘조중동’ 구성원이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다. 부담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권 논설위원은 “부담이 없었다곤 할 수 없지만 큰 가치가 있는 상”이라고 답했다. 

권 논설위원의 칼럼집 ‘정의를 부탁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류와의 거리를 의식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삶의 궤적들은 중심보다 주변부에, 칼을 쥔 쪽보다 칼끝 앞에 서 있는 쪽에 자꾸 눈길이 가게 했던 게 아닐까” 서울대 법대 출신의 보수신문 논설위원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24일 시상식에 앞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권 논설위원을 만났다. 인터뷰는 40분가량 진행됐고 그는 거침이 없으면서도 수줍게 대답했다.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표현하는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라며 “이 말은 인터뷰에 꼭 넣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까지 사회2부장을 맡기도 했다. 아래는 1문1답이다. 


▲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10월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안종필 자유언론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수상을 축하드린다. 1991년 김중배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이 수상한 이후, 보수언론 그 중에서도 조중동 소속 기자가 수상한 건 처음이다. 부담되진 않았나.

“부담이 없다고 할 순 없다. 연락을 받고 자격이 되는지부터 고민했다. 이전 수상자들을 보면 언론 운동을 하시다 고통을 받으셨거나 탐사 보도 등으로 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분들이었다. 저는 칼럼을 써왔고 중앙일보 소속이고 해서 제가 받아도 되나?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상 자체가 워낙 영광스런 상이다.”

‘안종필 자유언론상’은 자유언론실천운동에 헌신하다 1980년 2월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아투위 2대 위원장 안종필 선생(동아일보 해직기자)의 유지를 이어받아 동아투위가 1987년부터 제정, 시상하는 언론상이다. 42년간 보수성향 언론이 수상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칼럼니스트가 받는 일 역시 드물었다.

- 칼럼쓰기 강의를 하면서 ‘나만의 시각 만들기’를 언급했다. 권 논설위원의 나만의 시각은 무엇인가. 

“저는 글을 쓰면서 방향성이 만들어졌다. 제가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이 절 쓴 느낌이다. 글을 쓰면서 몰랐던 제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글을 쓰다보면 선을 넘어야할까 말까 고민이 들 때가 있다. 그 선을 넘고 넘고 하다보니 스스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느끼고 주변에서도 ‘얘가 이런 사람이구나’ 한다.”

- 기자는 사건이 만든다고 하셨다. 지금의 권석천을 만든 인상적인 현장을 꼽자면?

“세월호를 꼽을 수밖에 없다. 당시 논설위원실에서 현장 사설을 맡게 돼 진도로 내려갔다. 현장에서 사설을 세 번 썼다. 사고 직후 2박3일 동안 희생자들 시신이 내려지는 걸 봤고 언론에 대한 불신을 피부로 느꼈다. 그때 충격이 제 글쓰기의 밑바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를 꼽자면 2012년 국정원 댓글사건이다. 막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였는데 계속 그 소재로 쓰다 보니 의도치 않게 검찰 수사에 비판적인 방향으로 쓰게 됐다.”

권 논설위원은 2014년 7월 논설위원에서 사회2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6개월간 칼럼을 쉬었다. 그러다 2015년 1월19일 시시각각을 재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쓸 수 있느냐는 철학자의 물음은 세월호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살아남은 자들은 하루하루 비관론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세월호를 다시 대면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언저리를 맴돌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 2015년 1월26일 JTBC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권 논설위원의 칼럼이 언급됐다. 사진=JTBC방송화면 캡쳐
- 칼럼을 보면 2012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나 올해 8월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칼럼을 위해 현장에 자주 가는 편인가?

“될 수 있으면 가려고 한다. 법정도 자주 가려고 한다. 현장에 가면 현장만의 분위기가 있다. 보는 것, 느끼는 것, 냄새 맡는 것. 감각을 통해 분위기를 본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구체적이면서도 느낌을 갖고 생각을 풀어낼 수 있다. 지난 1월에는 부천 아동학대 사망 현장을 갔다. 밤에 경찰도 없는 현장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가면 뭐라도 하나 현장이 주는 게 있다.”

- 기자로서 양심에 비춰 문제가 없다면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면, 글을 완성하기 위해 피할 수 없다면 눈을 질끈 감고 그 선을 넘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 검찰이나 법원에 대한 비판은 굉장한 스트레스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진실도 있는 건데 그걸 뛰어넘어서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쓰고 나서도 여기에 대해 사람들이 화가 나겠구나, 섭섭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 글을 통해 느끼고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 스스로 주류와의 거리를 의식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서울대 출신의 중앙일보 칼럼니스트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와닿지 않는다.

“대학이나 직업, 외형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 봐야할 것 같다. 법대라는 곳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안 하는 비주류. 친구들과 만나도 항상 그들과의 대화에서 빠져있는 느낌이 있다. 경향신문에서 중앙일보로 옮긴 다음엔 동기들과 10년 이상의 공백이 있었다.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언론계에서 비기수에 대한 색안경 같은 게 있다. 저 사람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까. 그런 생각들이 스스로를 인사이더가 아니라 아웃사이더라는 의식을 갖게 했던 것 같다.”

- 기명 칼럼은 본인의 의사를 담는 것이고 회사의 논조를 담는 사설 같은 경우는 격한 토론이 있다고 들었다. 

“성역이 없는 격한 토론이 오간다. 토론에서 많이 배운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 모든 분야에서 발제가 된다. 현안에 대해 제 생각과 반대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통로라고 생각한다.”


- 칼럼이 유명해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없나.

“체감하는 건 별로 없다. 페이스북 공유를 보면서 이번 칼럼은 좀 관심들을 가지시는구나 정도다. 글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의무감은 생긴다. 특히 선을 넘는 부분에 있어서 고민을 얼마나 제대로 하느냐, 그 선이라는 관습이기도 하고 관행이기도 하고 편견 또는 선입견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을 넘을 때 대충 고민해서도 안 되고 안 넘어서도 안 된다. 반면에 제가 자유롭게 쓰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게 황당한 것일 수도 있고 민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건 조금 고민이 된다. 호응과 별개로 중요한 건 자신에게 정직하고 스스로 즐겁냐는 것이다. ‘즐거운 고통’을 얼마나 만끽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즐거운 고통에 대해서 좀 더 말해달라.

“저는 어쩌면 아등바등 불쌍하게 글을 쓰는 타입이다. 3∼4시간 만에 쓰시는 분들도 계신다. 저는 전날 5시간 정도 쓰고 다음 날 5시간 정도 고치고 다듬고 주제를 바꾸기도 한다. 쓴 다음의 만족감은 있지만 써내는 과정의 고통이 있다. 다시 직업을 택한다면 글 쓰는 직업은 하고 싶지 않다. 몸으로 일하고 밤에 책 읽으며 살고 싶다.”

▲ 권석천 논설위원(가운데 메모하는 사람)이 지난 11월 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진행중인 광화문광장 근처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중고등학생들의 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권석천 논설위원이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아니라 중앙일보에 있기 때문에 더 주목받는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그럴 수 있다. 그래도 한겨레나 경향신문에서 글을 쓰는 것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에서 한겨레, 경향신문이 주로 다루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려면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부분에서 팩트나 논리도 더 고민하게 된다. 결과가 더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 “자신이 속한 계층의 울타리 안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문제, 자신이 속하지 않은 계층의 삶을 껴안고 진지하게 고민할 것인가” 라고 하셨다. 기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후배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

“기자들이 회사의 바운더리에 갇혀있다. ‘중앙일보 기자는 이래야하고 한겨레 기자는 이래야하고 이런 기사를 써야한다’ 여기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자기가 속하지 않은 집단, 세대, 계층을 만나야 한다. 기자들은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현장은 분열이다. 세월호 현장에 가면 나는 그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걸 공감한다. 그때 내 안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그런 과정에서 기사가 생기고 칼럼이 생긴다. 후배 기자들이 그런 자기 분열을 추구하고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 후배 기자들에게 미안한 건 너무 바쁘다는 것. 바쁘면 보수화된다. 하던 대로만 하게 되고 시키는 것만 하게 된다. 바르게 살아라, 정의롭게 살아라 그런 것이 아니라 보수화되면 기자로서 확장성과 전문성이 없어진다. 바쁘지만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서 뭔가 더 해보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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