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이례적으로 사과를 했다. JTBC의 보도가 결정타였고, TV조선의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의혹보도가 출발점이었다. 청와대가 온갖 의혹을 부정하거나 외면할 때마다 언론이 적극적으로 퍼즐을 맞추면서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재단모금 의혹’ 제기한 TV조선과 ‘실세’밝힌 한겨레

애초 언론의 이목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서 시작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이어지는 부정부패에 집중돼 있었다. 전환점을 마련한 건 TV조선의 보도다. TV조선은 7월26일 “미르재단 설립 두 달 만에 대기업에서 500억 원 가까운 돈을 모았는데, 안종범 대통령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모금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포문을 열었다.

▲ 지난 7월26일 TV조선의 미르재단 모금의혹 보도.

이후 쌍둥이재단인 K스포츠재단 역시 같은 의혹이 제기됐고 TV조선은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을 재단 실세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후 2달 동안 TV조선의 후속보도는 없었다. 청와대가 조선일보를 “부패세력”으로 지목하고 송희영 당시 주필의 도덕적 문제들이 폭로된 데다 TV조선 재승인 심사까지 겹치다보니 ‘몸을 사린 것’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두 달 뒤인 9월20일 한겨레가 TV조선 보도를 기반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을 다시 조명하면서 이 재단의 실세가 최순실씨라는 점이 드러났다. 최순실씨는 K스포츠재단 이사장 자리에 자신이 단골인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을 앉혔다. 이후 두 재단이 정부의 특혜를 받고 온갖 이권을 차지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한겨레는 9월22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지난 7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금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내사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건드린 역린이 우병우가 아니라 최순실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 지난 9월20일 한겨레 보도.


‘신의 수저’ 정유라의 등장

경향신문은 최순실을 기점으로 한 또 하나의 연결고리에 주목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다. 경향신문은 9월23일 삼성이 정유라씨를 위해 독일에 승마장을 구입해 제공하는 등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정유라씨가 조명되면서 이화여대가 정유라씨 개인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여온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13일 경향신문이 더 파헤쳐보니 정유라씨가 입학할 당시 승마특기생전형이 생겼고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지시했다. 해당 전형 서류마감은 9월14일, 정유라씨가 메달을 받은 날은 9월20일이다. 지난 14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과제를 늦게 낸 건 학생인데 교수가 쩔쩔 메고 오타와 비문, 인터넷용어가 넘쳐나는 “달그닥 훅” 리포트가 B학점을 받았다. 이후에도 학칙을 바꿔 소급적용해 제적을 피하는 등 문제가 드러났고,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결국 사퇴했다.


‘기승전 우리딸 메달 프로젝트’?

미르·K스포츠재단과 정유라씨는 별개의 이슈가 아니었다. JTBC는 10월18일 최순실씨가 K스포츠재단 설립 하루 전 ‘더블루K’라는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세웠고 이 회사가 K스포츠 재단을 통해 돈벌이를 했다는 점을 밝혔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비덱’이라는 회사 역시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독일에 같은 주소지를 두고 있었고, 비덱의 직원은 정유라씨의 승마 코치였다. 즉, 대기업 돈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거쳐 최순실씨가 소유한 더블루K·비덱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 지난 18일 경향신문 보도.

이 돈은 어디에 쓰였을까? 비덱은 ‘비인기 종목 유망주 지원사업’을 명목으로 80억 원을 국내 대기업들에게 추가로 요구했다. 여기에는 승마 종목도 포함된다. 21일 경향신문은 비덱의 독일호텔 매입 등 많은 회사의 움직임이 승마훈련 등과 겹친다며 “최순실씨의 지난 2년 행적은 승마선수인 딸 정유라씨를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인상을 준다”고 밝혔다.

독일 현지에서 물증도 나왔다. SBS는 지난 23일 비덱의 입출금 내역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내역서에 따르면 9월5일부터 10월20일까지 돈이 빠져나간 곳은 최순실씨 모녀가 머물렀던 호텔과 주택으로부터 10여Km 떨어진 식당과 마트, 주유소에 집중됐다. 사실상 재벌을 비틀어 받은 돈이 최순실 모녀에게 쓰인 것이다.

JTBC의 결정타, 그리고 앞으로 밝혀야 할 문제

수세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개헌 카드’를 꺼내며 상황을 반전시키려 했으나 JTBC가 찬물을 끼얹었다. 24일 JTBC가 최순실씨의 PC를 입수해 최순실씨가 청와대 연설문을 사전에 받고 직접 고친 정황을 보도한 것이다. 국제적인 깜짝발표였던 드레스덴 선언 역시 최순실씨가 사전에 받았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인사관련 서류도 최순실씨가 받아 청와대 인사를 좌우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 24일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오후 사과를 했고,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25일 보도된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고 폭로했다.

25일 JTBC와 TV조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을 최순실씨가 국정 전반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내용의 보도로 반박했다. JTBC는 연설문 뿐 아니라 대북 접촉 등 군사기밀성 정보도 최순실씨가 사전에 받았다는 점을 보도했다. TV조선은 최순실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를 추천한 내용이 담긴 인사개입 문건을 공개했고, 최순실씨 의상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을 결정하고 윤전추 청와대 3급 행정관 등이 최씨의 지시를 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 25일 TV조선 뉴스쇼판 보도화면 갈무리.
아직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최순실씨가 어느정도까지 국정에 개입하고 주도했는지 밝혀내야 할 게 많다. 최순실씨가 소유한 비덱의 수백 개에 달하는 자회사의 정체 역시 아직 안갯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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