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이자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으로 얼룩졌다. 두 재단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가 설립과 운영에 개입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대비용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뿐 아니라 2007년 대선 도전이나 2012년 대선 등 정치적인 변곡점마다 최순실씨와 그의 부친인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름 7개, 부인 6명, 4대 종교 교리를 합쳐 '영세교'를 만들고 교주 행세를 한 최태민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이 등장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그와 관련된 의혹을 부인하거나 그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태민 감싸기'는 박정희 대통령 생전부터 시작된다. 동아일보 주말판인 동아마당은 1990년 11월23일치에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있던 최씨의 비리에 대한 중앙정보부 조사보고서를 받아든 박정희 대통령은 보고서 내용에 격본, 김재규 중정부장과 백광현 중앙정보부 안전국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근혜양과 최씨를 직접 불러 '신문'을 했으나 근혜양이 '사실과 다르다'며 최씨를 적극 옹호하고 나서자 신문을 중단하고 오히려 중앙정보부의 보고서를 묵살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주말판 동아마당 1990년11월23일치. 


김재규의 문제제기 후 구국여성봉사단 명예총재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총재로, 최태민 목사는 총재에서 명예총재로 자리를 바꿔앉았을 뿐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동아마당이 해당 보도를 내보낸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영, 박지만씨가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태민씨에게 포위 당한 언니 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1990년8월)한 후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영, 박지만씨는 육영재단과 어린이회관 운영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박근영 박지만씨는 숭모회 등과 함께 어린이회관과 육영재단 운영에 최태민 목사가 개입해 전횡을 일삼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제기가 되자 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2년 동안의 노력으로 부친에 대한 왜곡된 역사적 평가를 어느 정도 바로잡았고 심신이 극도로 피로해져 좀 쉬려는 것 뿐인데 왜 정체모를 단체가 나타나 남의 집안 일을 간섭하려 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생들의 문제제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다. 최태민 목사는 그 3년 전인 1994년 사망한 것으로 신고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의 관계는 다섯째 딸인 최순실씨와 그의 남편인 정윤회씨로 이어진다. 정윤회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초선 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 호칭을 달고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힘든 시절 말 벗이 돼 준 거의 유일한 지인으로 알려져있다.

'최태민' 세 글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앞길을 가로 막은 때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였다. 신동아가 2007년 6월호에서 '박근혜 X파일 철저 검증'이라는 주제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와 관계 등을 다뤘다. 신동아는 중앙정보부 수사보고서를 입수해 최태민 목사가 사기 횡령 이권개입 권력형 비리 등 44건의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강소 벤처 스타트업, 청년매칭 2016년 잡페어 개막식을 마친 뒤 참석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명박 후보 측은 경선 초반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의 관계를 담은 'CD' 운운하며 박근혜 후보 네거티브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이명박 후보 측은 실제로 경선 내내 박근혜 후보를 향해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이 없겠느냐"(2007년 6월18일 장광근 대변인), "최태민 씨와의 관계가 현재 진행형일 뿐 아니라 미래형이 될 것"(2007년 7월25일 박형준 대변인)이라고 경고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당원이라고 주장한 김해호씨는 6월17일 서울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태민 목사와 딸 최순실씨가 육영재단에서 전횡을 일삼으며 재산을 늘린 의혹이 있다고 있다며 박근혜 후보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박근혜 캠프 김재원 대변인은 이튿날인 6월18일 "김해호씨 기자회견은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그 경위에 상당한 의심이 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하고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의혹 제기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캠프가 예상을 깨고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김해호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기자회견 전후로 이명박캠프와 수차례 연락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기했던 내용에 대한 근거 자료도 제출하지 못했다. 결국 같은 해 9월18일 김해호씨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캠프는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특히 박형준 대변인이 2007년 7월25일 '천벌을 받을 각오로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공개질의서를 통해 "박근혜 후보가 책임자로 있는 선거캠프와 의원실 등의 정치 조직,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기념사업회, 한국문화재단, 명지원, 새마음병원 등의 공조직, 논현동팀, 마포팀 등 사조직에 최태민 씨의 친인척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따졌다. 

▲ 세계일보 2007년 7월20일치. 


당시 박근혜 후보 대신 해명에 나선 사람은 의혹을 받은 의원실 보좌진 3명(이재만 이춘상 보좌관, 정호성 비서관)이다. 이들은 7월29일 최태민 목사와 친인척 관계로 지목된 데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른 흑색 선전으로 저희들의 명예를 훼손했기에 정식으로 해명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공개사과를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향신문은 2007년 6월19일치에서 "박근혜 후보는 왜 침묵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참모들은 그러나 '후보의 생각을 존중한다'면서도 '후보가 말하는 대로 점잖게만 가서는 정도가 점점 심해질 것이므로 확실히 쐐기를 박고 가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2007년 6월19일치 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일들이 새삼 불거지는 데엔, 박근혜 후보가 지금도 최태민 목사 친인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최태민 목사의 친인척인 정 아무개씨는 2002년 박근혜 전 대표가 미래연합을 만들 때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 쪽은 '인간적 관계 정도만 있을 뿐이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발언을 한 것은 두 차례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이 도입한 후보 검증청문회(2007년7월19일)에서 최태민 목사와 관련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최태민의 가명 사용과 6차례 결혼과 목사 경력 등을 묻는 질문에 "목사로 알았고 당시에 그런(가명과 결혼 여부) 내용은 몰랐다"고 답했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중앙정보부가 최태민 목사의 권력형 비리 행위와 청와대 무상출입 조사 여부에 대한 질문도 있다.

▲ 중앙일보 2007년 6월14일치. 


박근혜 대통령은 "경호실, 비서실이 있고 출입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청와대 무상출입이 가능하지 않다"며 "김재규 중정부장이 각종 비리가 있는 사람(최태민)이 있다고 해 아버지가 직접 조사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의 권력형 비리 40여건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나와 중정부장, 최태민 목사, 관계되는 사람을 불러 직접 조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답이 없었고 (비리) 내용이 막연했다. 아버지가 대검에서 조사하라고 했는데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동아마당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고 적극 옹호한 것으로 나온다. 김재규 중정부당은 최태민 의혹을 묵살한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나라를 이끌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도 10·26을 일으킨 한 요인이라고 항소이유서에 썼다.  

최태민 목사와 관련 의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질문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와 저를 연결해 주변 사람이 나쁘니,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식으로 공격해 왔다. 나중에는 '애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며 "아무리 네거티브를 해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정말 천벌 받을 일 아닌가. 애가 있다면 데리고 와도 좋다. DNA 검사도 해주겠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해 7월20일치 중앙일보는 "검증청문위원의 칼과 박근혜 인파이터의 방패가 곳곳에서 부딪쳤다"며 "특히 최태민 목사 질문에선 검증위원이 꺼내지도 않은 아이 얘기를 먼저 꺼내는 강수를 뒀다. 질문자가 직설적으로 묻지 못했던 대목을 스스로 꺼내 상대방의 허를 찌른 모양새였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섬 없이 강하게 반격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1일 국군의날 계룡대에서 열린 제68주년 국군의 날 행사 경축연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오른쪽),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함께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사진=청와대 


또 한번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였다. 중앙일보는 경선 후보 인터뷰를 다룬 2007년 6월14일치 신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와 관계를 묻는 질문에 "그분은 목사님으로 나라가 어려울 적에 많이 도와줬다"며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어려운 상황일 때 구국기도회 하면서 도와줬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어렵고 힘들 때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셨다.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이 대목에서 박 후보는 어조를 높였다"고 부연한 부분엔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목사의 횡령 비리 건을 해명한 내용이 담겨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분이 횡령을 했느니 사기를 했느니 하는 얘기가 있던데 실체가 없는 얘기다. 그분이 횡령이 어떻다고 하는데 실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디서 횡령을 당했다는 사람도 없고 사기당한 사람도 없어 법원에서도 문제가 없는데 그런 소리 나오는 게 네거티브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느냐는 말도 있는데 지어내서 마음대로 매도하고 네거티브하려면 무슨 말을 못 지어내겠나. 중요한 것은 실체다. 뜬구름 갖고 지어낸 얘기 하는 거야 말로 네거티브다. 이미 예전에 다 인터뷰 한 것이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씨와 전 남편 정윤회씨 등을 감싸고 돈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씨와 정윤회씨의 외동딸 정유연씨와 관련된 판정시비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청와대 의중과 달리 승마협회 비리 전반을 캐 보고했던 문화체육관광부 진재수 체육정책과장과 노태강 체육국장을 박근혜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직으로 떠돌던 노태강 국장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은 잊지 않고 "아직도 있어요"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은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자리를 내놨다.

최영훈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제기되기 전인 올해 5월21일치 '최영훈의 법과 사람' 칼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2006년 인터뷰 일화를 전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서울 상암 DMC 누리꿈 스퀘어에서 열린 코리아 VR페스티벌에서 벤처, 스타트업 기업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동아일보가 2007년 대선을 1년 앞둔 2006년 포커스 인터뷰를 했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은 당시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질문을 하라는 엄명을 받는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은 인터뷰 도중 두 차례나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은 인터뷰 중반에 질문을 했는데 "분위기가 싸늘해 졌다"며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고 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귀 신문의 자매지인 신동아에 장문의 인터뷰를 해 자세하게 경위를 말했으니 보세요"라고 말했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은 몇년 뒤 만난 박근혜 대표가 "몹시 싫은 질문을 두 번이나 한 나를 기억하는 눈치였다"고 기억했다. 기억하고 되돌려 주는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이 드러나는 일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과 2014년 초 제기된 정윤회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얘기들"이라고 규정하며 "국기문란 행위"라고 맹비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제기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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