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귀하가 점유 중인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로51 지상 1층 건물(‘공씨 책방’)은 2016년 10월 5일 부로 임차기간이 종료되었음을 통보 드리며 본 건물 매수인인 본인은 향후 귀하와 임대차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5일 오후 5시경 공씨책방에 ‘당일 특급 등기’가 날아왔다. 공씨책방의 건물주가 바뀌었고 건물주는 임대차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없으니 2주일 이내에 공간을 비우라는 내용이었다. 공씨책방에는 4만권에 가까운 책들이 있다. 등기에는 “불응 시에는 불가피하게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돼있었다.
건물주의 행동은 명백히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어긋난다. 우선 임대인(건물주)는 임차인(공씨책방)이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 정당한 사유란 3개월 이상 임대료를 연체하거나 부당한 임대를 한 경우 등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된다. 공씨책방은 계약해지를 통보받기 전까지 임대료를 모두 지급했다.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2015년 개정된 상가법에 따르면 환산보증금과 관계없이 모든 임대차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이 인정된다.
공씨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장화민씨와 최성장씨는 이날 등기로 새 건물주를 만난 셈이다. 등기에는 “서로간의 의사표현을 서면상으로 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판단되어 발송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공씨책방의 주인 장화민씨는 공씨책방을 만든 공진석씨의 처조카다. 장화민씨는 이모 최성장씨(공진석씨의 처제)와 함께 공씨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8월에 계약해지를 통보받고 전 건물주를 설득하려했으나 ‘만약 장사를 하고 싶으면 월세를 두 배로 내라’는 말만 들었다.
공씨책방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씨책방이 처음 자리잡은 곳은 경희대 앞이었다. 1976년이었다. 이후 5번 자리를 옮겼다. 경희대에서 청계천으로, 청계천에서 광화문으로, 중간에 서울대쪽에 책방 일부를 옮기기도 했고 신촌에서도 자리를 한번 이동했다. 1980년대 후반 광화문의 재개발이 한창일 때 가게가 헐렸다. 공씨책방을 만든 공진석씨는 서울대쪽으로 가게를 일부 옮기는 시기에 시내버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최성장씨는 형부를 따라 헌책방에서 일하게 됐다. 최씨는 “그분(공진석씨)이 지금 있었더라면…요새 그분이 돌아가셨던 때가 많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책이 가득 쌓인 가게에서 매일 밤 주무셨었다. 가게를 옮기려고 이리저리 애를 쓰시다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최근 책방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고 장화민씨도 뇌출혈로 쓰러졌다.
두 사람은 책방을 지키기 위해 이리저리 수소문했다. 서울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울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이들이 책방을 지키기 위해 서울시에 도움을 요청 한 이유는 공씨책방이 서울시가 정한 ‘미래유산’었이기 때문이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서울시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미래유산이 선정됐다고 알리는 종이를 살펴보니 “(미래유산에 선정됐어도)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발생하지 않으며 시의 재정지원도 없다”고 쓰여 있었다. 최성장씨는 “서울시에 전화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며 “만약 건물 등이 훼손됐을 경우 보수비를 지원해줄 수는 있지만 이런 문제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하에서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책방이라는 것이 지나가면서 들르는 식인데 지하에 있으면 많이 찾아올까 싶다. 요새는 인터넷으로도 헌책을 많이 사지만 우리는 책방 특성상 오래된 책, 도록, 해외화보집 등 직접 보고 사는 책들도 많기 때문이다. 20년 단골들도 동네에 많은데 성수까지 올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몇 만권인지 알 수 없는 책들을 모두 인터넷에 등록하기도 어렵다. 지금까지처럼 여기서 장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공씨채방은 지금까지도 책을 팔아 겨우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최성장씨는 “생활비 정도만 빼면 월세내기도 많이 힘들다”며 “요 근래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많이들 보니까 책을 안보기도 하겠지…. 옛날 같으면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이 찾아와서 과제할 때 볼 책도 사가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런 일이 적다. 이쪽이 대학교가 많아서 책방이 모여 있지만 헌책방들이 안 되는 건 다 마찬가지다. 헌책방 하는 주인들끼리 모여서 이제는 우리가 대로변에 서있을 시대가 아닌가보다, 이런 말을 나누기도 했다.” (최성장씨)
이는 공씨책방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촌 지역 헌책방은 이미 몇 군데 문을 닫았다. 공씨책방과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글벗서점’의 사정도 비슷하다. 현재 자리에서 9년간 글벗서점을 운영한 김현숙씨는 “35년 동안 헌책방을 하면서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말하며 “신촌 알라딘이 생겼을 때만해도 크게 타격이 없었는데 합정점이 생긴 3월부터 바로 매출이 반 토막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씨는 “공씨책방과 같이 지금처럼 함께 책을 만나러 찾아오시는 단골손님을 이곳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며 “함께 있어서 시너지가 나는 것인데 헌책방들이 하나둘씩 떠나간다”고 말했다.
대부분 헌책방의 사정이 비슷하겠지만 공씨책방은 건물주의 문제까지 겹친 상황이다. 같은 건물을 쓰는 공씨책방 옆 미용재료백화점도 30년을 장사했지만 얼마 전 맞은편 골목으로 이사 했다. 미용재료백화점은 원래 있던 곳보다 작은 곳으로 이사를 갔고 가게를 옮기는 과정에서 보상금 등을 받지 못해 1억 5000만 원의 빚이 생겼다고 했다. 최성장씨는 “어제 갔는데 멍해져서는 손님맞이도 제대로 못하고 있더라”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