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휴대폰 부품 생산공장에서 일했던 파견노동자 두 명이 '메탄올 중독 산재'로 추정되는 실명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이 일했던 공장은 모두 올해 초 같은 사건이 발생했던 공장이다. 유사 공정 사업장 전수 조사 결과 '추가 환자는 없다'고 발표한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던 3차 하청업체 파견노동자 김아무개씨(29·남)는 지난해 2월4일, 전아무개씨(35·남)는 지난 1월16일 작업 중 실명에 준하는 시력 손상을 입었다.

▲ 자료사진. ⓒ노컷뉴스

노동건강연대는 이들의 실명이 메탄올 중독에 따른 것임을 의심치 않고 있다. 김씨가 일했던 A업체와 전씨가 속했던 B업체가 올해 초 이미 메탄올 중독 실명 산재 피해자를 낳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받은 진단명 '시신경염' 또한 기존 산재 피해자들의 진단명과 같다.

지난 1~2월엔 파견 노동자 5명이 휴대폰 부품 가공 작업 중 절삭 공정 용매였던 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었다. 경기도 부천의 A업체에서는 지난해 12월 파견노동자 양아무개씨(25·남)가 실명했고 김아무개씨(28·여)는 지난 2월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B업체에서 재해를 입었다.

해당 업체는 사고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상 필수인 국소배기 장치 설치 및 보호 장비 지급 등을 지키지 않았다. 메탄올은 법적으로 엄격한 안전조치가 요구되는 '관리대상유해화학물질'임에도 업체는 안이한 대처로 일관한 것이다.

김씨와 전씨는 기존 피해자들보다 더 일찍 피해를 입었다. 노동건강연대는 이들의 작업 공정과 사고 후 증세도 기존 피해자와 동일했다고 말했다. 두 피해자가 기존 피해자와 동일한 환경에서 근무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는 메탄올 취급업체 중 관리가 취약한 것으로 우려되는 사업장 3100여 곳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관련 안전보건관리실태 전반에 대해 일제점검을 실시한 결과 추가 환자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 노동건강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9개 시민사회단체는 2015년 3월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불법파견 노동자 메틸알코올 중독 실명 방치 박근혜 정부와 LG·삼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노동건강연대는 당장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기존 피해자들의 산재보험 신청을 지원했던 이 단체는 사고 후 고용노동부에 추가 환자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고 휴대폰 부품 절삭 작업을 해 본 노동자를 전부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김씨와 전씨의 산재가 뒤늦게 확인된 것은 고용노동부가 점검을 제대로 못한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김씨의 산재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제대로 된 대책 마련에 나섰다면 현재 수준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6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기존 피해자들이 속상해 하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피해자가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일찍 대응했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와 전씨의 산재 피해 사실은 두 피해자가 지인의 권고에 따라 뒤늦게 노무사와 산재 상담을 받게 되며 알려졌다. 담당 노무사는 올해 초 발생한 메탄올 중독 사건과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각각 지난달 30일과 지난 3일 노동건강연대에 제보했다. 이들은 추가적인 사실 확인 후 산재 신청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혜영 노무사는 두 사람의 산재가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뒤늦게 확인된 데 대해 "3차 하청업체의 파견노동자였던 두 사람은 4대 보험에 가입돼있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이 산재를 당했다는 인식도 없었다. 메탄올을 사용한 지도 몰랐고 안전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면서 "파견 노동의 안전 사각지대가 얼마나 끔찍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이 문제를 '중소업체 사업장 안전보건 문제'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파견노동자의 안전 문제로 두고 대대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