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세계일보는 ‘역린’을 건드린 언론이다.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보도를 통해 십상시의 존재를 알리며 비선 권력의 국정 농단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 계열의 TV조선은 정윤회씨의 전 부인이자 핵심 비선 측근인 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 (TV조선은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모금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두 언론사는 보도 이후 고초를 겪고 있다. 조선일보에서는 주필이 날라갔다. 송희영 전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의 억대 향응 논란으로 회사를 떠나 ‘부패 언론’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다. 아울러 내년 TV조선 재승인 심사도 낙관할 수 없다.

세계일보는 문건 직후 사장과 회장이 교체되는 사내 풍파를 겪었다. 모체인 통일교 재단은 세무조사 압박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윤회 문건 특종 보도를 했던 기자가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일개 언론들이 최순실과 정윤회를 입에 담은 ‘죗값’이었다.

▲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정윤회 씨가 지난 2014년 12월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조사를 앞두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역린’을 건드린 언론에 대한 정권의 보복은 비단 언론사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알권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지난해 세계일보의 한 기자는 사석에서 “조만간 ‘정윤회 문건’ 보도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으나 녹록치 않은 안팎의 상황 때문인지 1년이 지나도 후속 보도는 깜깜소식이다.

조선일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7월부터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을 보도한 TV조선이 재단 배후에 최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게 언론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송 전 주필이 나가떨어진 뒤 비판이 무뎌진 조선일보는 지난 1일 사설에서야 ‘최순실’을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 사저(私邸)와 최순실씨 집, 최씨 빌딩, 미르·K스포츠가 모두 멀지 않은 한 동네에 모여 있다. 이제 재단 사무실을 여의도 쪽으로 옮기겠다는데 이 역시 석연치 않은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 같다”며 전경련의 재단 해산·통합 발표를 비판했다.

다행히 한겨레가 지난달 20일 K스포츠 재단 설립에 최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국내 언론 가운데 최초로 제기해 국민은 박근혜 정권의 어두운 이면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비선 실세 의혹은 ‘권력형 비리’와 직결된다는 데서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는 지난달 28일 자사 팟캐스트 ‘더 정치’에 출연해 “권력형 비리 의혹은 시간이 문제일 뿐 결국 다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한 언론사의 특종에 의해 시작했더라도 권력형 비리를 찾아내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성 기자는 “한겨레뿐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있는 기자들이 많다”며 “그분들에 의해 결국 전모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역린을 건드리는 또 다른 언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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