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공산주의자”라고 했던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8일 법원으로부터 3000만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예상대로 MBC는 침묵했다. 

방문진은 MBC 주식 70%(정수장학회 30%)를 보유한 대주주로 공영방송 MBC 사장 등 임원 인사권뿐만 아니라 관리·감독 기능을 갖고 있어, 방문진 이사장은 사실상 정권에서 선임한 MBC 사주나 마찬가지다. 

역시나 MBC는 고 이사장이 문 전 대표에게 명예훼손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단신 방송뉴스는커녕 인터넷판 기사도 쓰지 않았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3단독 김진환 판사는 문 전 대표가 고 이사장을 상대로 낸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고 이사장의 발언은 같은 정치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명예훼손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원고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고영주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 3000만원 손배 판결)

2014년 12월4일 MBC ‘이브닝뉴스’ 갈무리.
KBS와 SBS도 별도의 리포트나 방송뉴스를 내보내진 않았지만,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KBS는 “앞서 고 이사장은 2013년 1월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신년하례회에서 민주통합당 18대 대선 후보였던 문 전 대표에 대해 ‘문 후보는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발언했다”며 “검사장 출신인 고 이사장은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을 지내는 등 ‘공안 검사’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SBS는 고 이사장이 “부림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으며 문 후보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부림사건은 1981년 교사와 학생 등 19명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기소돼 징역 1∼6년을 받은 일로, 고 이사장은 당시 수사검사였으며 문 전 대표는 훗날 사건 재심을 위한 변호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MBC는 이번에 방문진 이사장의 불법 행위를 눈감아줬지만, 고 이사장의 불법 혐의 의혹에 대해 전혀 보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난 2월10일 고 이사장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조사했던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고 이사장이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으로 재직하며 취급했던 안건 관련 사건을 수임한 것에 대해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리자, MBC는 이날 바로 해당 내용을 보도했다. 다음 날 ‘이브닝뉴스’에선 45초짜리 단신 뉴스도 내보냈다. 

고 이사장이 방문진 감사로 재임 중이던 2014년 12월4일에는 ‘이브닝뉴스’에서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 상임위원장이던 고 이사장의 기자회견도 단신으로 보도했다.  

지난 2월11일 MBC ‘이브닝뉴스’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9일 고 이사장의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 손해배상 판결 관련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이 군부독재 시절에 공안의 사고에 젖어 무고한 사람을 ‘빨갱이 사냥’했던 극우세력들이 석고대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한국의 매카시’ 고 이사장은 법원도 인정했듯, 본인의 이념이 민주주의에 기반한 우리 사회의 법치에서 벗어나 있음을 인정하고, 방문진 이사장 자리에서 즉각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고 이사장은 지난 8월10일 극우 성향의 ‘대한민국사랑회’가 주최하는 ‘이승만 애국상 시상식’에 참석해 조영환 종북좌익척결단 대표에게 “아스팔트에서 활동하는 종북좌익척결단을 결성해 온·오프라인에서 직접 종북세력들을 대적함으로써 애국세력의 취약점을 잘 메워줬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관련기사 :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종북좌익척결단은 애국세력의 전사”)

유송화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28일 “매카시즘의 전형인 고영주 이사장을 공영성과 공정성이 중요한 자리에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기준은 아이러니하다 못해 블랙코미디”라며 “공정성과 공영성에 문제가 있는 고 이사장은 당장 사퇴해야 하며, 생각이 다르다고 종북이나 좌파로 매도해 버리는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바뀌는데 오늘 재판이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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