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로 방송을 중단했던 방송인 정형돈씨가 ‘주간 아이돌’(MBC에브리원) 촬영으로 복귀했다. 그의 대표작 ‘무한도전’이 아닌 ‘주간 아이돌’로 복귀를 하는 것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자신을 유명하게 해준 ‘무한도전’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배신이다”는 비난과 “불안 장애를 겪은 사람에게 ‘무한도전’이 부담스러운 프로그램인 것을 안다”는 입장이다.

정형돈씨의 복귀 기사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무한도전’이 불안 장애를 겪은 정형돈씨에게 버거운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 인터넷 기사의 베스트 댓글은 “불안장애가 있다면 ‘무한도전’이라는 콘셉트에서 도전 절대 못한다.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비행을 한다던데 정말 불가능하다.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실제로 ‘무한도전’은 방송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부담스러운 프로그램이다. 우선 방송 외적인 부분으로 △‘국민 예능’이라는 부담감 △11년 동안 방영하며 ‘무한도전’을 지켜본 팬들의 큰 기대감 △예능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부여받은 도덕적 권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무한도전과 주간 아이돌에 시청자들이 갖는 기대감은 완전히 다르고 해내야 할 역할이나 짐의 크기가 다르다”며 “무한도전은 웃기지 못하는 개인 방송인에 대한 하차 요구가 빗발치는 등 팬들의 기대치와 비난도 큰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예외적으로 공익성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편이다. 그동안 무한도전은 독립 운동가(안창호 특별편),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자, 파독광부와 간호사(‘배달의 무도’편), 역사교육(‘TV특강’편) 등과 같은 사회의제와 철거문제(‘여드름 브레이크’편)와 같은 사회문제를 건드리기도 했다.

▲ ▲ MBC 무한도전 TV특강편 화면 갈무리.
봅슬레이, 조정, WM7, 여자복싱 등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스포츠를 주목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한국 사회가 무한도전에 신세진 것들> 사회성 짙은 이슈를 다루는 특성 때문에 지난 4월16일 ‘젝키편’에는 젝키를 상징하는 노란색이 화면 가득 나오자 “무한도전식 세월호 추모가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될 정도였다.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특성도 출연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요소다. 김성윤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도전은 국민예능을 넘어서 ‘개념 예능’같은 도덕적인 위치도 부여받았다”며 “재미와 도덕성 모두 바라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채우는 것은 누구라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 외적인 부분 외에도 프로그램 내 △서열 문화 △무리한 도전 내용 △정해진 포맷보다 각 개인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점도 ‘무한도전’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된다.

재미를 위해서라지만 무한도전은 캐릭터들간의 서열이 정확하다. ‘1인자’ 유재석씨와 ‘2인자’ 박명수씨가 대표적이다. 11년 동안 진행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들어올 때마다 홍역을 치루는 점도 ‘말단’이 모든 비난을 뒤집어쓰는 서열 문화다. 실제로 정형돈씨도 ‘무한도전’에 들어온 이후 “재미없다”, “웃기는 것만 빼고 다 잘한다”는 무존재 캐릭터로 3~4년간을 버텨오기도 했다. 이후 전진, 길 등 새로운 멤버들도 마찬가지였고 최근 영입된 광희씨에게도 “하차하라”는 비난이 끊이질 않는다.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에 비해 도전 내용이 거창하고 스케일이 커졌다는 점도 꾸준히 지적된다. ‘무모한 도전’에서는 소와 힘싸움을 하거나 연탄을 많이 나르는 등 사소하고 하찮은 도전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국제대회에 나간다거나 해외 투어, 최근에는 우주여행까지 도전하고 있다. 

▲ MBC무한도전 갈무리.
이런 스케일이 큰 도전을 치루면서 방송인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세진다. 무한도전 ‘극한 알바’편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정형돈씨에게 높은 곳에 올라가 일을 하는 ‘잔도공’ 알바를 시킨 일화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정해진 포맷이 없이 개인의 캐릭터와 그 캐릭터들끼리의 관계를 소비한다는 점도 방송인에게 부담을 더 느끼게 하는 점으로 꼽혔다. 유선주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는 “매회 포맷이 바뀌는 무한도전의 경우에는 실제 방송인과 방송 속 캐릭터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사생활을 보여주는 일화도 많다”라며 “다른 프로그램보다 감정노동의 강도가 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선주 칼럼니스트는 “인기 프로그램 ‘런닝맨’같은 경우는 술래잡기 같은 특정한 포맷 안에서 방송을 하면 되기 때문에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에는 덜 부담을 느낀다”며 “반면 ‘무한도전’의 경우 방송인의 진짜 모습과 방송 캐릭터가 겹치기도 하면서 연기와 자신을 분리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높은 기대감과 도덕적 위치, 높은 육체적·감정적 노동 강도까지 무한도전은 출연자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많은 만큼 요구하는 것도 많은 프로그램이다. 불안장애를 겪은 사람이 견디기에는 무거운 프로그램이다. 21일 정형돈씨는 ‘무한도전’으로 복귀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가 그릇이 작아서”라고 답했다.

같은 날 공개한 ‘형돈이와 대준이’의 곡 ‘결정’의 가사 중 “무슨 결정이든 내가 내린 결정/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곧 미안하다는 말/ 더 이상은 달릴 수 없는 말/ 조금은 쉬고 싶은/ 내 맘이 그랬어”라는 부분도 ‘무한도전’을 하차한 후 정형돈씨가 한 생각으로 해석된다. 정형돈씨는 아직 ‘무한도전’으로 복귀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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