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돼 온 ‘사실 적시 명예훼손’ 법 조항을 폐지하자는 형법 개정안이 20일 발의됐다. 반면 최근 급증하는 온라인상 신상 털기 범죄로 사이버 명예훼손이 빈번해 해당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형법 307조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권력비판을 위해 사실을 적시할 경우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법이 악용된 사례가 많다.

떡값 검사 명단을 발표한 노회찬 의원, 국가정보원의 민간단체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본인의 처가가 보유한 1300억대의 부동산 매매과정에서 진경준 검사장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죄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일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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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의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서갑)은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1항) 폐지 △모욕죄 폐지(형법 제311조)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변경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금태섭 의원은 “국가기관과 공무원 등이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악용하여 고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라며 “세계적 흐름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뉴욕, 캘리포니아, 일리노이주 등이 명예훼손 처벌조항에 위헌처분을 내렸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서도 명예훼손 비범죄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유엔 인권위원회, 월드뱅크 등 국제기구에서도 세계 각국에 명예훼손 폐지를 촉구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명예훼손에 형사 처분을 하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 정도다. 일본과 독일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만 처벌한다.

반면 최근 급증하는 온라인 신상 털기 범죄 때문에 명예훼손을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사이버 명예훼손죄방지법’을 21일 발의했다. 현행 사이버 명예훼손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허위사실의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신용현 의원의 발의안은 이 처벌 수위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허위사실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은 2013년 6320건이었지만 매년 늘어 2014년에 8880건, 2015년에 1만5000건, 2016년 상반기에만 8370건이 발생했다.

▲ 사진출처:신용현 의원실
신용현 의원실 관계자는 “세계적 추세가 명예훼손을 폐지한다고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강남패치니 일베니 신상털이 범죄가 실제적 피해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민사든 형사든 피해자에게 피해 구제 방법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명예훼손 피해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금태섭 의원은 이러한 상황을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태섭 의원실 관계자는 “과도한 댓글이나 인신 공격성 글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건에 경찰이나 검찰이 나서지 않게 하고 개인 간의 손해배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라며 “이걸 형법에 그대로 두면 경찰이나 검찰이 개입해 악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예훼손이 세계적으로 비형사화되는 이유는 명예훼손을 문제시 삼는 이는 평판의 저하가 있을 뿐이지만 처벌을 받는 사람은 감옥에 가는 등 비례성에 맞지 않아 국제인권에 반하기 때문”이라며 “인권차원 외에도 이 법은 취재원이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보도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언론의 기능을 크게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교수는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폐지 움직임이 계속 있어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정치인들 때문”이라고도 꼬집었다. 박 교수는 “정치인들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 힘으로 이겨낼 생각을 하지 않고 비판자의 입막음으로 해결하려한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어 “하지만 대부분 정치인들이 고소를 하는 건 허위사실 적시에 대한 명예훼손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정치인들이 똑바로 알아보고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폐지 움직임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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