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스트 버스터즈(Ghost Busters, 2016)의 폴 페이그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고스트 버스터즈를 만든 목적을 “모두를 웃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판 고스트 버스터즈가 1984년 원작의 ‘젠더 스왑’(gender swap)판임을 생각하면 ‘모두를 웃게 만든다’는 감독의 목적이 의아하게 들린다. 이미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원작 팬들은 영화의 제작진과 배우들을 반대하고 비난해왔기 때문이다.

고스트 버스터즈(2016)는 1984년의 원작에서 남성 주인공 4명을 모두 여성 주인공 4명으로 바꾼 일종의 ‘미러링’ 영화다. 또한 기존 액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사용하던 방법과는 다르게 캐릭터를 사용한다.

주인공이 여성들로만 구성된 만큼 보조적 역할은 남성들이 맡았다. 원작에서는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은 사무 보조원과 유령에게 빙의되는 캐릭터 모두 여성이었지만 2016년 판에서는 모두 남성이다.

전화 한통도 제대로 못 받지만 여성 4인방의 ‘눈요기’가 될 얼굴과 몸을 가진 케빈(크리스 헴스워스), 콤플렉스를 가져 적대적이며 결국 지구를 파괴할 음모를 꾸미는 로완(닐 케이시)도 기존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비꼰 것이다. 각각 ‘머리는 비었지만 예쁜 사무 보조원’, ‘외모가 못나서 사랑도 받지 못하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성’을 미러링한 인물이다.

또한 눈에 띄는 점은 여성 캐릭터들의 복장이다. 기존의 액션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액션을 하더라도 몸매가 다 드러나는 소재나 디자인의 옷을 입힌다. ‘캣우먼’의 의상이라든가 ‘도둑들’에서 전지현이 입었던 의상을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고스트버스터즈(2016)에서는 오직 유령을 잡기에 편리한 작업복을 입는다. 이 작업복은 지하철 역무원 생활을 하다가 고스트 버스터즈가 되는 패티(레슬리 존스)가 유령이 뿜어내는 초록액체를 의식해 가져온 옷이다. 여성 캐릭터의 몸매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요소가 없는 옷이다.

실제로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복장 외에도 많은 문화 콘텐츠에는 알게 모르게 여성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요소들이 숨어있다. 하지만 이를 하나하나 지적하다보면 ‘예민한 사람’으로 찍히기 마련이다.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평가하거나 제작하는 일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수많은 비난과 비판을 감수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스트 버스터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화가 여성 위주로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이 나오자 사이버 테러가 시작됐다. 특히 고스트 버스터즈의 4인방 중 한명인 레슬리 존스는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과 성차별

적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레슬리 존스를 고릴라와 침팬지에 비유하고 성적행위를 하는 비디오를 합성하는 등 도 넘은 사이버 테러에 레슬리 존스는 소셜 미디어를 떠나기도 했다. 

이에 감독인 폴 페이그가 “차라리 나를 공격하라”, “여성혐오(misogyny)와 모욕을 멈춰라”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폴페이그는 역시 사이버 테러를 당했고 이런 사이버 테러는 고스트버스터즈 2016년판에 호평을 내린 평론가들에게도 계속됐다.

▲ 폴 페이그 감독 트위터.

고스트 버스터즈 2016년판을 두고 벌어진 일들은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과 매우 비슷하다. 성별 스와프로 미러링을 보여준 고스트 버스터즈와 미러링으로 여성혐오를 이슈화 시킨 메갈리아를 비교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메갈리아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성우의 목소리를 게임에서 삭제했고, 메갈리아 등에 우호적인 의사를 표시한 웹툰 작가들을 검열하자는 ‘예스컷’(Yes cut)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최근 정의당 논평 사태, 시사인 구독 해지 사태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에서나 모두를 웃게 만들기보다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그럼에도 왜 폴 페이그는 이 영화의 목적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을까. 그동안 우리가 말했던 ‘모두’에는 여성이 배제돼왔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모두 즐거우려면 사회와 문화콘텐츠에 널린 여성 비하적·차별적 요소를 보아도 그저 조용히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고스트버스터즈(2016)는 폴 페이그가 말한 것처럼 말 그대로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대중문화 콘텐츠를 즐기다가도 문득문득 여성 비하와 차별적 요소를 찾아내 남들과 함께 웃을 수 없었던 이들이, 또 이를 말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이들이 실컷 웃을 수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