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계간지들은 여성 편집위원 몫이 지나치게 적거나 형식적이다. 비판적 지식계를 대표해 온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사회’는 남성지식인을 위한 ‘지큐(GQ)’ 혹은 ‘맥심(MAXIM)’과 다를 게 없다.”

장정일 작가가 최근 ‘말과활’의 주간을 맡으며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장정일 “지식인 잡지들이 빠진 ’성맹‘, 탈출에 고심’) 장정일 작가의 문제의식을 계간지가 아닌 미디어에 적용해 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미디어에 ‘여성 저널리즘’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여성주의 관점을 반영한 여성신문이 1988년 창간 후 계속 기사를 내고 있고,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페미디아’ 등 여성주의 관점으로 운영하는 미디어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들이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미디어 스타트업 투자, 교육을 위한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는 남성 지식인 위주의 미디어에서 벗어난 미디어 스타트업들을 소개하고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는지 살펴봤다. 13일 서울 중구 ‘메디아티’에서 주최한 ‘메디아티 브런치: 피메일 저널리즘(Female Journalism)’에서는 여성 저널리즘의 역사를 살피고 여성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스타트업 모델을 소개했다. 또한 여성 저널리즘의 핵심적 요소를 기존 ‘정치, 경제, 사회’ 위주로 꾸려지는 카테고리의 변화라고 짚었다.

여성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의 시초는 1693년 창간한 ‘레이디스 머큐리(The Ladies’ Mercury)’다. 이후 ‘잉글리시우먼스 도메스틱 매거진(The Englishwomen’s Domestic Magazine)’, ‘페그스 페이퍼(Peg’s paper, 1926)', ‘보이 프렌드(Boyfriend, 1965) ’등 1세대 여성 저널리즘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중산층 엘리트 여성, 주부를 위한 것이었다. 이들이 주로 다루는 주제도 패션, 인테리어, 심리상담, 남자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칼럼 등이었다. 여성을 독자층으로 삼았지만 여전히 남성들의 주도로 출판하고 상업화했다.

▲ 사진 제공=강정수 메디아티 대표
2세대 여성 저널리즘은 더 다양한 여성 이슈를 받아들였다. 낙태문제, 임금차별문제, 여성 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담은 칼럼이 게재됐다. 미국 월간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나 보그(Vogue)에 미국 에세이스트 수잔 손탁(Susan Sontag)이 글을 실었다. 수잔 손탁이 보그 1975년 4월호에 발표한 ‘A Women’s Beauty: Put down or Power Source?’라는 글은 여성 뷰티의 개념이 결국 남성의 시선 지배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꼬집기도 했다.

▲ 사진 제공=강정수 메디아티 대표
1990년대 이후 여성 저널리즘은 성소수자나 백인 중산층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최근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브로들리(Broadly)’는 여성을 타겟으로 한 채널로 리포트와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제공한다. ‘브로들리’에 대해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는 “‘브로들리’의 ‘broad’는 여기저기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여성 비하적 단어이지만 ‘브로들리’는 이 단어를 선점해 언어를 소유해버린다”며 “페미니즘 잡지인 ‘비치 매거진(Bitch magazine)’과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 '롬퍼(Romper)'도 있다. 

▲ 'Broadly' 홈페이지.
박상현 이사는 최근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여성 저널리즘 스타트업이 내거는 ‘카테고리’의 변화를 강조했다. 박상현 이사는 “여성들의 우선순위가 여성들의 목소리로 다루어지고 보도되고 기록되는 형식을 위한 카테고리가 중요하다”며 “미디어가 꼭 갖춰져야 한다고 알려진 정치, 경제, 사회 같은 카테고리만을 둔 사이트가 아니라 다양한 카테고리를 갖춘 것이 여성 저널리즘 사이트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박상현 이사가 여성 저널리즘의 사례로 든 ‘브로들리’는 정치 외에도 섹스, 책, 약(Drugs) 등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국 온라인 사이트 ‘버슬(Bustle)’의 카테고리는 뉴스, 엔터테인먼트,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책으로 구성된다. ‘버슬’이 밀레니얼 세대 엄마와 미혼모를 타겟으로 만든 ‘롬퍼’라는 사이트는 젊은 엄마들을 위한 카테고리로 구성돼있다.

▲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만든 미디어들의 카테고리. 사진 제공=메디아티
하지만 카테고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미 고정된 여성 성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박상현 이사가 예로 든 카테고리 속에서 기존의 미디어들과 차별점을 갖는 부분은 패션이나 뷰티, 인테리어, 육아에 관한 것 등이며 이러한 카테고리는 사회가 만든 여성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어떤 카테고리 안에 한정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소재를 찾아들어가자는 것”이라며 “새로운 독자들의 요구에 맞추되 기존 여성잡지들의 접근방식인 소비주의를 뛰어넘는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강정수 대표는 “이미 기존 진보언론이나 여성신문 등의 역할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미디어 스타트업을 하려면 새로운 독자층을 발굴하고 그들의 욕구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롬퍼’의 경우 젊은 미혼모들이 많이 찾는 사이트인데, 이들에게 기존 언론이 하던 방식 그대로 정치사회 카테고리로 다가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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