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변호사는 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매일 구치소로 출근 했나’ 지난해 12월5일 조선일보가 여성 변호사들의 업무가 변호사의 본업과 멀어졌다는 취지로 쓴 기사의 제목이다. 로스쿨 학생들은 해당 기사가 “여성 변호사를 성적 대상화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기사 철회 및 사과를 요구했다. 

<관련기사: 로스쿨 학생들 “조선일보가 여성 변호사들 명예훼손”>

해당 기사는 “변호사 2만 명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속칭 접견녀의 출현”이라며 “접견 변호사들은 구치소에서 의뢰인과 하루 종일 이른바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 대상이 됐다.

▲ 지난해 12월5일 조선일보 기사.
하지만 언론중재위원회는 조정신청을 기각했다. 언론법상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그 대상이 특정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에 국가위원회도 진정 각하를 결정했다. 하지만 국가위원회는 “해당 보도가 여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키울 수 있다”고 의견 표명을 덧붙였다. 법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인권의 차원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언론보도가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인권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7일 국가인권위원회와 언론인권센터가 공동주최한 ‘언론인들에게 인권교육, 왜 필요한가?’에서 발제자로 참여한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홍보팀장(변호사)은 “언론의 인권침해 사례는 법적 차원으로 접근할 때와 인권 차원으로 접근했을 때 극명한 차이가 있고 언론법제로는 한계가 있다”며 “언론 법제 교육의 한계를 인권교육이 보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윤리의 영역을 무시하며 인권침해에 나선 상황을 두고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언론의 인권의식이 1세대에 머물러있다”고 표현했다.

▲ 7일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언론인들에게 인권교육, 왜 필요한가?' 토론회. 사진=정민경 기자
심영섭 정책위원은 인권을 총 3세대로 나눠 설명했다. 1세대 인권은 방어권으로서의 인권적 의미를 가지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적 질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생명권,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말한다. 2세대 인권은 문화적 권리로 노동권, 아동권, 건강권 등이 포함된다. 3세대 인권은 평화권, 환경권, 인도적 원조를 받을 권리 등을 의미한다.

심영섭 정책위원은 “언론은 주로 1세대 인권에 대해서는 법률적 처벌을 우려하여 보도과정에서 고려하지만 2세대나 3세대 인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며 “1세대 인권인 알권리를 위해 뛰어다닌 기자들은 그 외의 인권들이 침해당하는 것은 뒤로 미뤄왔다”고 지적했다.

인권 사이에서도 어떤 인권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냐를 제대로 선택하려면 인권감수성이 필요하다. 김효실 한겨레21 기자는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떤 가치를 축소하고 확장시킬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한겨레21의 1116호 표지를 예로 들었다.

해당 표지기사는 0~15살의 아이들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지원해야한다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아이가 아픈 후 치료비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주간지의 표지 사진으로 기사 사례의 아이 얼굴 사진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팔에 링거를 맞는 사진으로 대체했다. 기자와 언론사 스스로가 인권감수성을 발휘한 사례다.

▲ 한겨레 1116호 표지 사진.
기자 개인이 인권감수성을 지녔더라도 데스크 차원에서 이를 무시한다면 소용없다. 때문에 인권교육을 받는 대상에 데스크급 기자도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주 한국기자협회 부회장(한국일보 기자)은 언론이 인권침해보도를 하는 이유로 △언론의 트래픽 경쟁 △취재기자와 데스크의 인권 의식 차이 △인권보도 준칙 홍보 부족 등을 꼽았다.

최진주 부회장은 “보통 언론사가 행하는 교육 대상은 수습기자나 연차가 낮은 기자들인데 데스크 대상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취재환경의 변화로 인권 감수성이 더 예민해져야 할 데스크들이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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