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였던 내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6년 동안 병과 싸우면서 1억 이상의 수술비를 냈고 내 피를 다 빼고 폐를 이식했다. 앞으로의 치료비도 문제다. 하지만 정부는 3등급 피해자 딱지를 붙이고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가 죽었는데 4등급(질병이 가습기 살균제와 관계없음)이라고 한다. 가족 5명 중에 4명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데 질병과 살균제와 관련이 없다며 3‧4등급이라고 한다. 오늘도 이렇게 아픈 사람이 치료를 해달라고 국회에 와서 이야기해야한다는 게 너무 분통이 터진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폐를 이식받은 후 후유증으로 일주일에 한번 입‧퇴원을 반복하는 안은주씨, 마찬가지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폐섬유화증에 걸려 산소 호흡기를 사용하는 윤미애씨의 말이다.

▲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26일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를 열었다. 같은날 국회 정론관에서는 3~4등급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자 윤미애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은 사망한 윤 씨의 첫째 아기. 이치열 기자 truth710@
29일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가 열린 가운데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3-4등급으로 분류된 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 정도 심사에서 1~4등급으로 나눠진다. 질병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일 경우는 1등급, ‘가능성 높음’일 경우 2등급, ‘가능성 낮음’일 경우 3등급, ‘가능성 거의 없음’일 경우 4등급이다. 피해지원은 1~2등급 피해자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등급 구별이 행정편의적이라고 지적해왔다. 특히 다른 질환을 앓고 있다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병이 깊어졌거나 사망한 경우, 1~2등급에서 제외된다. 2006년 사망한 윤미애씨의 첫째 아이가 그 사례다. 윤미애씨의 첫째 아이는 2005년 태어나자마자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가습기 살균제를 쓴 병동에서 2달 만에 사망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하지만 정부는 사망한 아이에게 ‘관련성 없음’이라며 4등급 판정을 냈다”라며 “정부가 내린 이런 결정을 옥시는 악용해 자신들과 피해자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국가대표 배구선수 출신의 안은주씨도 3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쓰러졌지만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인과관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3등급 피해자 판정을 받았다.

안은주씨는 “나는 40대까지 너무나 건강했지만 갑자기 쓰러지고 나서 병원에 가보니 원인불명이라고 하더라”라며 “하지만 2011년 가습기 피해자들의 보도를 접하고 보니 나랑 똑같은 증세였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처음 쓰러지고 나서 2년 밖에 못산다고 했는데 운동선수여서 몸이 건강했던 것 때문인지 현재 6년이 지났지만 수술을 받고 살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에게 3등급 피해자 판정을 받고 아무런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은주씨는 “만약 세월호에서 살아남았다면 생존자는 피해자가 아닌 것이냐”라며 “피해자는 피해자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분통이 터지는데 정부는 왜 자꾸 상처를 들쑤시느냐”고 울먹였다. 안은주씨는 수술비용 등으로 1억 2천만 원을 사용했고 한 달에 치료비용과 약값만 한 달에 180만원 대로 알려졌다.

▲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26일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를 열었다. 청문회가 진행중인 가운데 국회 정론관에서 3, 4등급 판정을 받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증언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자녀 3명과 아내(윤미애 39세, 오른쪽)가 모두 피해를 입은 김진국 씨.(가운데)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하지만 29일부터 이틀간 국회에서 진행되는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에 아타샤프달 현재 옥시코리아 사장을 제외한 옥시 관련 인사는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다. 정부가 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한 존이 전 옥시 사장, 거라브제인 전 사장 등은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한편 우원식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옥시레킷벤키저가 제품의 유해성은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우 위원장에 따르면 레킷벤키저의 연구원이 이미 2004년 10월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호흡기관 자극 가능성을 제품안전보건자료(PSDS)에 명기했다는 것.

우원식 의원은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옥시레킷베키저와 영국 본사는 본사 책임이 없다고 해왔다”며 “하지만 이미 2004년 제품안전보건자료에 호흡기관 영향을 보고하고서도 엄격한 시험을 통해 제품제조를 중단시키지 않았기에 명백한 가해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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