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이 각광받고 있지만,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기성 미디어에 의해 ‘폭력’ ‘음란’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규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조회수로 수익을 얻는 구조만으로는 10만뷰를 기록해도 3만 원을 버는 데 그친다. 좁은 시장에 많은 사업자가 몰리다보니 레드오션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박사는 8월26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미디어오늘이 주최한 ‘2016년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스토리텔링의 진화’에서 “그럼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있다”면서 MCN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공인됐다. 아직까지 큰 규모는 아니지만 아프리카TV를 비롯한 사업자들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조영신 박사는 “아프리카TV의 영업이익이 36억 원이다. 대기업 1개부서가 내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MCN 사업자들은 ‘미디어콘텐츠 창작자’ ‘창작자 에이전트’란 이름으로 직업이 공인됐다. 조영신 박사는 “직업이 공인된 것 자체가 그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둘째, 대형사업자들이 MCN에 진출하는 것도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SBS는 최근 모바일 브랜드 ‘모비딕’을 만들었다. 대표 콘텐츠는 개그맨 양세형이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기하 등의 인터뷰를 짧게 만든 ‘숏터뷰’다. 조영신 박사는 “지상파가 이 시장에 들어왔다는 건 지상파 같은 대형사업자들도 이 시장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의미다. MCN사업자들이 개척한 길을 큰 사업자가 따라갈 정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MCN콘텐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사진은 SBS의 모바일 브랜드 '모비딕'이 만든 '숏터뷰' 갈무리. 모바일 문법에 맞는 인터뷰 콘셉트의 콘텐츠다.
셋째, 이용자가 적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중국시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최근 '왕훙'(網紅·인터넷 스타)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왕훙’인 파피장은 한 기업으로부터 21억6000만 원을 투자받을 정도다. 조영신 박사는 “중국에서 MCN사업이 잘 된다는 건 우리가 만든 1인 미디어시장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탁월한 상품이라는 걸 저들도 인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다르게 생각하면 그들의 시장에서 우리가 만든 상품이 진입하기 요원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넷째,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터, MCN회사와 MCN회사 간 연대가 활발하다. 다른 회사 소속의 도티와 잠뜰이 함께 방송을 진행하고 안재억, 조섭, 유준호가 만든 ‘억섭호’도 인기를 끈다. 조영신 박사는 “힘들고 박한 시장이라 이례적으로 연대가 이뤄지는 것”이라며 “별개의 팬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그걸 통해 고객의 범위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섯째, 미디어의 벽을 넘기 시작했다. MCN콘텐츠는 ‘인터넷 전용’이었다. 영화나 TV 등 레거시미디어에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여겨졌지만 변화가 시작됐다. 10대를 위한 ‘마인크래프트’ 게임 상황극 방송을 하는 인기 크리에이터 도티의 콘텐츠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맥스에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여섯째, 불안했던 커머스 시장도 안정화 단계다. MCN은 조회수에 의존하는 수익구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품구입과 연계하는 커머스가 중요했다. 문제는 광고가 콘텐츠를 덮게 되면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인데, 홈쇼핑 사업자들이 모바일에 진출하면서 MCN을 활용하는 새로운 모델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영신 박사는 “잠뜰(크리에이터)이 직접 게임을 팔면 과거 파워블로거들이 그랬던 것처럼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면서 “하지만 검증된 홈쇼핑 사업자가 1인 미디어를 활용하게 되면서 이들의 역할을 찾고, 틀을 잡아주게 됐다”고 말했다. GS홈쇼핑과 현대홈쇼핑에서 음식 관련 상품을 판매할 때 먹방 크리에이터들을 활용한 예가 대표적이다.

▲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박사. 사진=이치열 기자.
여섯째, 플랫폼 사업자인 OTT(Over The Top, 인터넷동영상서비스) 서비스들도 MCN에 눈독을 들이며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국내 동영상 플랫폼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최근 들어 카카오와 SK텔레콤의 모바일IPTV인 ‘옥수수’가 오리지널 영화 ‘통 메모리즈’를 만들고 100만 뷰를 기록하는 등 선전했다.

조영신 박사는 “한국 MCN 사업자에게 고맙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젊은 세대를 외면하고 혁신이 일어나지 않던 한국 미디어 시장에서 MCN 사업자들이 고군분투하며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플랫폼 주도의 미디어 혁신이 일어났다.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플랫폼을 구축하고, 유사한 서비스가 잇따라 나오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다른 플랫폼에는 없는 ‘하우스오브카드’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면서 경쟁력을 키운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플랫폼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고, 콘텐츠 혁신도 없었다. 모바일, TV, PC 경계 없이 영상을 볼 수 있었던 국내 유일의 N스크린 서비스 호핀은 올해 서비스가 종료됐다. 현재 인터넷 동영상 시장은 핸드폰에서만 볼 수 있는 통신3사의 모바일IPTV가 주도하고 있다. 조영신 박사는 “넷플릭스와 달리 한국시장은 모바일에 갇혔고, TV를 못 넘어섰다. 바다 건너 시장에서 혁신이 진행됐다면 한국에서는 혁신이 죽어버렸다”고 지적했다. 10대와 20대가 TV를 떠났지만, 그들을 잡기 위한 프로그램 제작에는 소홀했다. 이 틈을 MCN사업자들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 도티의 마인크래프트 방송화면. 도티는 초등학생들이 열광하는 게임에 그들이 선호하는 상황극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조영신 박사는 “MCN사업자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주류시장이 버리고 포용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피키캐스트는 사회성 좋은 여고생을, 딩고(메이크어스)는 23세 여성을, 샌드박스네트워크는 9세부터 12세를 타겟으로 콘텐츠를 만든 것이다. 조영신 박사는 국내 MCN사업자들이 플랫폼에 대한 고민과 독자분석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이 시작하지 않은 미디어 혁신을 이끌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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