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4시30분 서울 7호선 상봉역 인근, 출근버스를 기다리는 무리 사이로 한 청년이 바삐 움직였다. 그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죠”라 말을 건네며 체불임금, 휴게시간 등 근로기준법이 적힌 종이를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고 있었다. 1시간 여 후면 CJ 대한통운 용인허브터미널에 도착할 상하차 작업 일용직 노동자들은 이 청년이 주는 종이를 유심히 읽었다.

이 청년은 ‘상하차 일용직’에게 ‘노동권’을 알리기 위해 직접행동에 나섰다. 그에게 물류센터는 노동권이 실종된 곳이다. 지난해 생활비 벌이를 위해 우연히 상하차 일을 찾았던 김두씨(가명·20대)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놀란 후 일을 나갈 때마다 자신의 노동을 기록했다. 김씨는 작업 일지를 메모했을 뿐 아니라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영상으로도 기록했다. 그의 노동 기록은 물류센터 상하차 일용직이 처한 노동법 사각지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 김두씨가 지난 22일 출근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종이를 나눠주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일한 만큼 받지 못한다

김씨가 기록한 근무일수는 총 13일이다. 지난 5월6일부터 8월18일까지 일주일에 1~2회 경기도 용인의 한 물류센터로 상하차 일을 나갔다. 김씨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1.2시간이다. 휴식시간 30분을 제외하면 11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짐을 날랐다는 뜻이다.

업무는 보통 오후 6시30분~7시30분에 시작해 다음 날 오전 6시30분~7시30분에 끝난다. 매일 야간노동 8시간, 잔업 평균 3시간 씩을 해온 셈이다. 물량이 많을 땐 오전 9시30분까지 15시간 노동을 할 때도 있다.

임금은 일한 만큼 지급되지 않았다. 13일 간 김씨에게 체불된 임금은 총 20만3484원이다. 1일 평균 약 1만5700원 씩 체불됐다. 


가장 높은 체불임금을 기록한 6월21일, 김씨가 받아야 할 급여는 10만4018원이었다. 이날 실 노동시간은 오후 7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12시간에서 휴식시간 30분을 뺀 11.5시간이었다. 이 중 오후 10시부터 익일 오전 6시까지 8시간엔 기준 임금(최저임금)에 1.5배인 야간수당이, 3.5시간의 추가 노동에는 1.5배인 연장근로수당이 책정된다. 야간노동과 연장노동이 겹치는 시간엔 기준 임금의 2배가 시급으로 책정된다. 김씨는 이날 8만4000원을 받았다. 2만18원 체불임금이 생겼다.

임금체불 문제를 더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상하차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CJ 용인터미널에서 만난 A씨는 6개월 근속 노동자였고 A씨와 함께 작업했던 B씨는 5년 근속 노동자였다. 용인물류센터에서 일한지 2개월 됐다는 한 상하차 노동자 C씨는 “체감 상 이 일을 꾸준히 나오는 사람 비율은 약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김씨의 하루 평균 체불임금을 6개월 근속 노동자 김씨에게 대입하면 188만4000원 수준의 체불임금 값이 나온다. 하루 300명 가량이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작업을 한다고 고려하면, CJ 물류센터에서는 매일 약 471만 원 체불임금이 발생한다. 1년 동안 전체 체불임금을 계산하면 이 값은 억 단위로 올라간다.

알바몬 구인광고에 따르면 확인된 인력공급업체 13개 모두 주먹구구식으로 임금을 산정하고 있었다. 물량이 많은 월요일은 12시간 노동 기준 기본급 8~9만원, 화요일은 7~8만원, 물량이 비교적 적은 수~금요일은 11시간 기준 기본급 7만원이다. 여기에 연장수당이 시급 7~9000원 수준으로 붙는다. 주 5일 다 출근할 시 4만5000원이 ‘만근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지급된다. 반년 간 거의 매일 나와서 일을 한다는 한 상하차 노동자는 많으면 한달 200만 원 가량을 받는다고 밝혔다.

고용계약서가 필요없는 상하차 일용직

김씨는 첫 번째 업체에서는 고용계약서를 작성했지만 두 번째 업체에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작업 내용은 계약서와 같지 않았다. 김씨의 계약서엔 근로시간은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10시간, 휴식시간은 0~1시, 4시~4:30분으로 적혀있다. 실제로 김씨는 오후 7시에 일을 시작하거나 다음날 오전 8시 넘어 일을 마친 적이 많다. 30분 이상 자유시간이 주어진 적은 없다.

▲ 김씨가 작성했던 근로계약서. 근무시간이 축소 기재돼있다. 해당 3차 업체는 현재 용인허브터미널에 인력파견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부터 5회 정도 일을 나온 상하차 노동자 C씨도 “첫 업체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쓴 적 없다. 중간에 일부러 계약서를 쓰는 업체로 바꾼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알바몬에서 상하차 구인광고를 보고 ‘일을 하고 싶다’ 연락해 당일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노동조건을 알바몬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다.

근로기준법 제17조는 사용자에게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고 요구가 있을 경우 교부할 의무를 지운다. 이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0분’ 식사시간이 휴식… 물량 넘칠 땐 그마저도 없어

휴게시간은 30분이다. 김씨의 기록에는 0시에 ‘식사하러 간다’ ‘관리자가 20분 내로 돌아오라고 한다’고 적은 날이 많다. 택배물품을 운반하는 트레일러는 0시부터 0시35분까지 멈춘다. 상하차 담당 노동자들은 보통 이 시간에 급식을 먹으러 간다. 물량이 많을 경우 휴게시간이 따로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김씨는 6월14일 ‘휴게시간은 없었다’고 적었다.

그 외 휴게 시간은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피는 시간이다. 김씨의 기록을 보면 하루 2~3번이 일반적이다. 그는 팀장이나 팀 내 연장자가 ‘화장실 갔다오라’ ‘담배피고 오라’ 등으로 지시를 내릴 때 5~10분 정도 쉬었다고 썼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이 작업 도중에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상차 중인 화물칸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아프다’로 빼곡한 노트, 정신력으로 버티는 야간노동

김씨의 기록에는 유난히 ‘아프다’는 말이 많다. 그의 기록 곳곳에 ‘40km 행군보다 힘들다’, ‘체력이 고갈됐다’, ‘어깨, 허리, 손가락 마디 통증이 심하다’, ‘너무 졸리다’ 등의 언급이 보인다. “15kg 이상 무게의 짐들이 수없이 온다”고 적은 날에 그는 10시간 30분 동안 짐을 화물차에 싣는 상차 업무를 맡았다. 그는 “업무 강도 문제는 상대적이기도 하고 근로기준법 위반도 아니”라면서도 “상하차는 중도에 도망가는 사람이 매일 있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인력업체는 “중도 귀가시 임금은 지급하지 않는다”고 미리 공지한다. 신속한 물량 처리 압박에 시달리는 상하차 업무 특성상 작업자의 중도 하차는 사측에 타격이 될 수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조항도 엄밀하게 따지면 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다. 근기법 제20조 ‘위약 예정의 금지’는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중도하차 시 미지급되는 임금은 위약금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20조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

해당 업체 개선 노력 피력… 전국 물류센터 노동환경 개선 문제 대두돼

상하차 노동자와 관련된 업체는 크게 3개다. 김씨의 경우, CJ 대한통운이 1차 원청업체고 2차 하청업체가 ‘도급’ 형식으로 물류 터미널 관리를 위탁받는다. 2차 업체는 인력 파견만 주 업무로하는 3차 하청업체와 계약해 필요 인력을 공급받는다. 용인허브터미널엔 평균 13개 업체가 매일 300여 명의 일용직 근로자를 공급한다.

이와 관련해 2차 업체 관계자는 “현장(개별 업체)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개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실제 지급받는 금액이 최저임금을 상회할 수 있도록 바꾸고 남녀 임금 차별두지 않고 업무강도가 높으면 추가 지급하는 식으로 바꾸는 것을 약속드렸다”고 밝혔다.

김씨의 ‘체불임금’ 계산에 대해 이 관계자는 “4대 보험비, 교통비, 식사비 등 간접비로 공제된 금액과 거의 같아 이 부분에서 빠졌을 수 있다”면서 “김씨에게도 이 사정을 설명했고 충분히 대화했다”고 밝혔다. 고용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결과 김씨는 지난 3개월 간 가입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인건비가 보장되게끔 원·하청간 계약을 한다. 계약 상 문제는 없다”면서 “(물량 처리 때문에) 트레일러를 일일이 멈출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작업 중간중간에 재량 껏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고용·파견했던 3차 업체 관계자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와 이 사안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CJ 대한통운 관계자는 “확인 결과 일부 업체의 문제이지 임금을 문제없이 제대로 주는 업체도 있었다. CJ대한통운은 최저시급 반영, 시간 외수당, 주휴수당, 보험료, 식대 등을 모두 포함해 도급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도심 외곽에 위치하고 야간노동이다 보니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서 “구조상 300~400명을 한꺼번에 구인할 수 있는 업체는 없으니 여러 업체를 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김씨의 ‘찌라시’를 받아 든 반장급 현장 노동자들은 “이걸 하청업체에 걸면 뭐하나. 그냥 CJ 찾아가서 말해라”고 김씨를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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