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난 젊었을 때부터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꼰대라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꼰대들끼리 편하게 하지 뭐.”

‘그래 그런거야’ 방영 전 김수현 작가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60회 예정작이었던 ‘그래 그런거야’가 54회로 조기종영한 지금 돌아보면 김수현 작가의 발언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시대착오적 '꼰대'요소가 여기저기 널린 드라마가 결국 외면 당했기 때문이다. 

기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꼰대적’ 기본 설정(3대 대가족, 일 잘하는 며느리, 사고 치는 막내 등)에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힙’한 설정이 더해져있었다. 파업을 선언한 엄마(‘엄마가 뿔났다’)라든가 성소수자 아들의 커밍아웃(‘인생은 아름다워’)이 극을 이끄는 신선한 축이 됐다. 이런 신선한 설정 덕분에 동시대와는 동떨어진 기본 설정도 상쇄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꼰대처럼 느껴지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가되, 신선한 설정은 빠져있다. 극 초반에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지선(서지혜)과 그 시아버지(노주현)의 관계가 ‘새로운 가족’으로 주목되며 신선한 축을 만들 것이라 상상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관계가 진전되어도 도무지 이 관계로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한 이런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이미 다른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숱하게 나온 설정이라 신선한 충격을 줄만큼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또 하나 작가가 신선한 축으로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설정은 취업준비생 막내 세준(정해인)의 역할이다. 세준은 취업을 강요하는 부모에게 “취준생이 60만이 넘었대요. 머리 터지게 공부에 매달리기도 싫고, 바늘구멍 통과할 자신 없고요"라고 말하는 현실적 캐릭터다. 

하지만 취업준비생 역시 지난해 MBC '그녀는 예뻤다', SBS '미녀 공심이' 등에서 주인공으로 다룰 정도로 흔한 설정이다. 최근에는 드라마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꼭 한명씩 나오는 게 취업준비생 캐릭터일 정도이기에 이 설정 역시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셈이다.

▲ 극 중 취업준비생 역할로 나오는 세준(정해인). 사진= '그래 그런거야' 캡쳐
신선한 축이 사라진 김수현표 드라마에 남은 것은 꼰대적 기본 설정과 성차별적 장면이다. 극 후반 가장 큰 이벤트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딸 유세희(윤소이)가 남편 나 감독(김영훈)에게 고3짜리 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건과 둘째아들 경호(송승환)와 그의 아내 하명란(정재순)의 이혼 소동이다.

이 두 이벤트의 끝은 결국 ‘여자가 참는 것’이다. 남편의 숨겨둔 고3짜리 아들을 알게 된 세희는 이혼을 할까 망설이지만 결국 참고 같이 산다. 이후 그 아들까지 품은 세희에게 남편 나 감독은 진정한 사랑을 베푼다. 남편의 흠까지 보듬는 아내여야 남편에게 진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둘째 아들의 이혼 소동도 흐지부지 끝난다. 경호는 매일 연상의 아내인 하명란에게 소리를 지르고 면박을 준다. 언어폭력 수준이다. 하지만 하명란은 매일 남편의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느라 미술관에 가거나 영화관에 갈 시간도 없다. 이혼을 결심하고 나서야 미술관에 혼자 가고,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인다. 마지막 회에서 이들은 이혼을 했음에도 동거를 하는 기묘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남편에게 숨겨둔 아들이 있어도, 남편이 매일 언어폭력을 가해도 결국 이 남자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없다. 

▲ 극 중 세희(윤소희)는 남편에게 고3짜리 아들이 있음을 알고 슬퍼한다. 사진='그래 그런거야' 캡쳐
드라마 속 젊은이들을 묘사하는 방식도 구식이다. 특히 개념이 없는 유리(왕지혜)가 꼬장꼬장한 세현(조한선)을 사랑하며 ‘개념녀’로 변화하는 서사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개념녀가 된 유리는 원래 자신의 부자 친구들과는 “이제 너네랑은 못 놀겠다”며 절교하기까지 한다.

또한 유리는 결혼할 남자를 찾기 위해 소개팅을 수십 번 한 설정임에도 혼전순결을 유지했다. 남편 세현에게 전 여자친구와 "어디까지 갔냐"며 캐묻고, 전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했다는 것까지 눈치채자 울고불고한다. 

‘혼전순결’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전제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요소다. 최근 드라마는 젊은이들의 성적인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다루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와 KBS ‘연애의 발견’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부터 젊은이들의 섹스 이야기는 흔한 것이 아니었나.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소희(신소율)도 남자친구에게 매번 “꿈도 꾸지 마”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은 마치 남성은 성욕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여성은 자신의 성욕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남성의 성욕을 위해 자신을 ‘허락’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성차별적 요소의 정점을 찍은 것은 드라마 속 '여자의 운전'에 관한 부분이다. 극 후반부 개연성없는 세희의 교통사고는 마치 여자들의 운전에 처벌을 내린 것 같이 보인다. 교통사고 이후 운전에 대한 부정적인 나레이션 등이 자주 나왔고 특히 혜경(김해숙)이 운전을 하려고하자 시어머니(강부자)는 단호하게 불허한다. 남편까지도 딸의 교통사고를 들먹이며 아내의 운전을 말린다. 

▲ 극 중 소희(신소율)와 초등학교 동창인 남자친구.

‘그래 그런거야’의 종영 후 나온 기사는 ‘SBS 그래 그런거야로 80억 적자…김수현의 흥행 실패’(연합뉴스)였다. 지상파에서 시청률이 8~10%대에 그쳤고 마지막화도 10.1%를 기록했다. 

이 기사는 김수현 드라마의 흥행 실패를 20대~40대에게 어필하지 못한 점을 꼽았다. 가장 적극적인 구매 층이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중장년층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 특성상 간접광고도 안마의자, 자동차 등 고가의 제품이 눈에 띄었다. 시대착오적 기본 구조에 눈길을 끌만한 설정도 부재하고 성차별적 장면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이를 즐길 젊은 층은 얼마나 될까.   

종철(이순재)의 죽음과 숙자(강부자)의 치매로 끝나는 씁쓸한 드라마의 끝에 혜경(김해숙)은 “덧없다고 하지말자, 인생은 그런 거니까”라고 말한다. 드라마의 결말처럼 씁쓸한 드라마의 종영에 김수현 작가도 그저 “그래, 그런거야”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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