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미디어그룹’을 만들겠다며 출범한 종합편성채널들은 재승인 조건조차 지키지 않았다. 재방송 비율이 높고, 투자액도 계획에 못 미친다. 오보·막말·편파방송이 넘쳐나 '종일편파방송'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방통위가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이것조차 어겼다. 

이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정지(업무정지) 3개월'이라는 강도 높은 제재를 내릴 수 있었지만, 시청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과징금 4500만 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방통위가 위협적인 카드를 쓸 수 없다고 밝히니 종편이 방통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8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채널A, JTBC에 각각 과징금 4500만 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종편의 재승인 조건 위반은 크게 3가지다. 첫째, TV조선, 채널A, JTBC는 2015년 콘텐츠 투자계획을 이행하지 않았다. 둘째, JTBC는 재방송이 전체 편성의 50%를 넘는 등 비율이 과도했다. 셋째, TV조선, 채널A는 ‘공정성 확보방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했지만 실질적으로 오보·막말·편파방송이 개선되기는커녕 늘었다.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사진=포커스뉴스
이 중 과징금을 물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콘텐츠 투자계획을 지키지 않았고, 지키라고 강제한 시정명령 조차도 무시했기 때문이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해 7월 종편3사에 시정명령을 부과했으나 종편3사는 12월까지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앞서 2014년 방통위는 종편 재승인 조건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 및 공정성 확보 방안 △콘텐츠 투자 △재방송 비율 △조화로운 편성 등을 점검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2015년 종편의 투자계획 대비 실적은 TV조선 82%, 채널A 73.2%, JTBC 53.9%다. 표면적으로 보면 JTBC의 실적이 가장 낮지만 실제 투자액은 TV조선 476억 원, 채널A 600억 원, JTBC 1306억 원으로 JTBC가 가장 많다. 콘텐츠 투자계획은 방송사가 임의로 정하기 때문에 실제 투자액이 많은 JTBC가 비율이 낮은 것이다. 이 같은 모순이 있어 승인조건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방통위는 3가지 제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가장 ‘덜 아픈’ 제재를 내렸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방송사업자에게는 ‘업무정지(방송금지) 3개월’ ‘승인기한 3개월 단축’ ‘과징금 처벌’ 중 하나의 제재를 내릴 수 있다. 종편에 가장 아픈 제재는 '업무정지 3개월'이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사후규제가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 진입규제에 해당하는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업무정지 3개월 제재를 내리고 다시 재정비시키는 게 의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영규 방송지원정책과장은 “법적으로 (업무정지 3개월 제재를) 내릴 수 있는 경우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서 “업무정지는 시청자 불편이 초래되기 때문에 이에 준하는 과징금부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방송이 나오지 않게 되면 시청자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징금 부과는 업무정지 처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단계의 제재로 봐야 한다. 방통위는 종편이 한차례 시정명령을 어기고도 버틴 점을 감안해 과징금을 기준금액보다 50% 가중했지만, 4500만 원에 불과했다. 종편4사의 지난해 광고매출이 2863억 원이고, 협찬매출과 프로그램매출을 합친 방송매출이 5421억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3개월 업무 정지가 내려지면 종편은 방송사당 최소 수십억의 피해를 입게 되지만 과징금은 1억 원도 되지 않는다. 

특혜를 통해 사실상 얻게 된 금액이 과징금보다 크기도 하다. 종편은 지난해 방발기금 징수가 유예돼 특혜논란이 불거졌는데, 그 비용만 방송사당 1~3억 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재승인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종편은 외려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방통위에 따르면 TV조선과 채널A는 “재승인조건에 성실히 준수하라고 돼 있을 뿐 어느 정도 준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TV조선은 또 “주어진 여건 내에서 콘텐츠 투자계획을 성실히 준수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채널A는 “재승인조건을 위반했더라도 위반의 정도 및 이행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시정명령은 비례원칙에 반한다”고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종편의 반발은 설득력이 낮다. 3년전 종편4사는 같은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받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6월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성실히 준수하라는 것’을 ‘100% 이행하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재판부는 또 “시정명령 시점을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100% 달성하는 것이 산술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이유만으로 (시정명령이)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남은 기간 동안 이행가능성이 없다고 처분을 무효로 하면 목표를 고의로 달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날 방통위는 TV조선과 채널A에 실질적인 공익성, 공정성 확보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종합편성채널 오보·막말·편파방송 심의조치건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TV조선의 관련 심의조치건수는 127건으로 나타나 67건인 채널A의 2배 가까운 수치를 보였다. MBN은 13건, JTBC는 7건으로 나타났다. MBN과 JTBC는 2014년 대비 관련 심의제재 건수가 줄어든반면 TV조선과 채널A는 되레 늘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기사에 따르면 한 방송진행자는 패널에게 ‘성매매를 했냐’고 물었고, 이 방송에 출연하기 전에 다른 종편에서 심의제재를 수차례 받았다”면서 “이 분이 방송을 맡자마자 편파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고 지적했다. 앞서 TV조선 박종진 앵커가 '박종진의 라이브쇼' 진행 중 문제적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고, 박 앵커는 채널A '쾌도난마' 진행 때도 수차례 방통심의위 제재를 받았다. 

한편 이날 MBN은 콘텐츠 투자계획과 재방비율을 준수하지 않은 이유로 시정명령이 부과됐다. 다른 종편과 달리 보도채널 승인기한이 끝난 후 종편으로 전환된 MBN은 다른 종편과 승인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시정명령이 늦게 내려진 것이다. MBN 역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