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잘 다니다가 말년이 비참하면 교회 탓해야 된다는 얘기랑 다를 바가 없는데요.”

‘동성애자로 살면 결혼도 못 하고 말로가 비참하다’는 지난 10일자 국민일보 기사를 본 한 누리꾼의 댓글이다. 국민일보는 이날 국내 초기 트랜스젠더로 알려진 김유복씨(76)가 패혈증 등 건강이 악화돼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고난과 가난이 마치 동성애 때문에 비롯된 것처럼 보도했다. (관련기사 : 국민일보 “동성애자 말로는 비참” 혐오 보도 논란)

그러나 국민일보가 제목에 ‘단독’을 붙여 내보낸 이 기사는 오보에 가깝다. 국민일보는 김씨가 지난해 반동성애 단체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했던 발언을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하겠지만, 사실 그의 불행은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10여 년 전에 받은 허리 디스크 수술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기사에도 언급됐지만, 본명이 김유복자로 알려진 그는 1960년부터 2004년까지 ‘김마리네’라는 이름으로 게이바에서 노래하며 일하던 트랜스젠더(Transgender)다. 생물학적 성(sex)은 남성이지만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은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김씨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고 가슴 확대 수술까지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생물학적 성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르는데, 김씨는 성별 정체성이 여성이었고 남성을 좋아했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다. 그러므로 생물학적·성별 정체성이 남성(시스젠더)이면서 남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인 것처럼 그를 설명하는 건 명백한 왜곡이다. 

결과적으로 이성애자인 한 노인이 과거 허리 수술을 받은 게 잘못돼 병환이 악화됐으며, 그는 정부 지원금으로 한 평 남짓 쪽방에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저소득층 홀몸 어르신이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김씨가 30대 후반부터 당시 동성애자였던 이요나 목사를 게이바에서 만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민일보 지난 10일자 1면 머리기사
누구나 인생 노년에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수 있다. 어찌 됐건 현재의 불행이 과거의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일보는 한 노인이 겪은 수많은 고난 중 유독 “동성애 때문”이라는 이성애자의 말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말할 수 없듯이, 성 정체성이 그를 불행하게 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박현동 편집국장의 말처럼 해당 기사가 ‘사회적 측면에서 동성애가 가지는 사회적 문제점’을 다양한 사례와 전문가 진단 등으로 심층적으로 분석한 것도 아니다. “동성애가 과연 사랑인가 사회적 화두를 던지자는 측면도 있었다”는 설명도 동성애 자체를 부정하는 차별적 인식으로 들린다. 이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사회적 편견은 박 국장이 주장하는 ‘사회적 돌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소수자 차별이 없어진다면, 성소수자의 삶은 아주 크게 달라진다. 성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동등하게 가족을 만들고 세금 혜택을 받고 직장에 취직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합법적으로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권리가-애초에 있었어야 마땅한 그 권리들이-생긴다면 성소수자들은 당연히 기뻐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성애자들의 삶에 손해가 생기는 것은 없다. 엄밀히 말해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던 한 여성 이성애자의 말이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2014년 발표한 ‘The gap report’에서 남성 동성애자 및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들이 소외되고 있는 가장 큰 4가지 이유에 대해 △폭력(Violence) △범죄화(Criminalization)·낙인(stigma)·차별(discrimination)과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열악한 HIV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불충분한 투자 등을 꼽았다.

국민일보는 또 동성애를 에이즈 확산 주범으로 몰아가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의 HIV/AIDS 신고현황을 해마다 인용한다. 

17일자 국민일보 지면에는 질병관리본부가 4년 만에 신규 에이즈 감염자 중 동성애자의 비율을 공개했다고 밝히며 “감염자의 절반 정도가 동성 간 성접촉에 의한 것으로 나왔지만 비대칭적 남녀 성비를 감안할 때 동성애자의 수치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동성애자 비율’을 공개한 게 아니라 ‘감염경로별 HIV/AIDS 내국인 신고 현황’을 설문조사를 통해 수치화했을 뿐이다. 앞서 밝혔듯 동성 간 성접촉으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보고된 이들이 모두 동성애자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성 간 성접촉으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보고된 사례는 0건이었다.

그렇다면 국민일보는 동성애 자체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 2015년 신규 에이즈 감염자는 1018명이었으며 감염 경로를 밝힌 652명 중 남성 간 성접촉으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답한 비율이 288명(44.1%)이라고 정확히 말해야 한다. 이성 간 성접촉에 의한 감염은 364명(55.8%)으로 더 많았으므로 국내 에이즈 확산 주범은 ‘남성 이성애자’라고 보는 게 맞다. 

UNAIDS 보고서에서도 에이즈 감염 취약집단을 ‘남성 동성애자(GAY MEN)’와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들(MEN WHO HAVE SEX WITH MEN)’로 명확히 분류했다. 여성 동성애자는 에이즈 감염 취약집단도 아니다.

UNAIDS에 따르면 남성 동성애자 및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들 외에도 HIV바이러스에 취약한 인구에는 △HIV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청소년 여성과 젊은 여성 △수감자 △이민자 △약을 주사 맞는 사람들 △성노동자 △성전환자 △HIV와 같이 살아가는 어린이들과 여성들 △난민 △장애인 △50세 이상의 사람 등 12개 집단이 포함됐다. 

국민일보는 에이즈 신규 감염자 중 남성 간 성 접촉 보고 건수도 2012년 220명에서 2013년 242명, 2014년 284명으로 증가추세에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남성 간 성접촉 보고자는 이미 10년 전인 2005년에도 281명이었다. 그동안 줄고 늘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2012년부터는 이성 간 성접촉 보고 건수도 284건에서 336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로 에이즈 감염자가 늘어난 것이다.

앞서 지난달 1일 국민일보는 남성 동성애자 군인들이 게이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성행위 파트너를 찾는다면서 “군형법에 따르면 군인 또는 준군인은 동성 간 성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군형법은 군인과 민간인과의 행위에 적용되지 않으므로 군인이 일반인과 성행위를 한다고 해서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8일 동성 간 성행위를 금지하는 군형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5명이 합헌 의견을 내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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