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실수해 잘못 말하고, '한강의 기적'을 되풀이해 강조하는 내용의 8. 15 경축사와 대비돼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축사가 회자되고 있다.

광복절의 의미, 남북관계 개선, 그리고 대한민국 위기론을 담은 안 지사의 경축사가 여러모로 박근혜 대통령의 경축사와 비교해 정반대로 해석, 우연치 않게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안 충남지사가 경축사에서 밝힌 대한민국 위기론을 설파하며 연말에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예상까지도 내놓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축사는 "71년 전 오늘, 우리 애국선열들은 세계 평화세력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와 싸워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승전일로 기록하고, 승전일로 기념해야 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프랑스 망명 정부가 나치에 저항해 승전국이 된 것처럼 안중근 의사 등 독립투사들이 독립전쟁을 벌이고 승리한 것이기 때문에 1945년 8월 15일을 승전일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해 8. 15 경축사에 이어 두번째다.

그러면서 안 지사는 "21세기 세계의 보편 가치는 인간 개인에 대한 존중, 공동 번영, 그리고 평화입니다. 국제사회가 공동 번영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강대국들은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반성하고, 약소민족들이 벌인 독립전쟁과 그들의 승리를 올바르게 평가해야 합니다"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안 지사는 미국, 중국, 일본을 향해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미국에 대해 "나는 미국에게 대한민국과 손잡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이 한반도를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공간이 아닌 평화의 완충지대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합니다. 이 길이 아시아의 평화 질서를 정착시키는 것이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아시아 역내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안 지사는 중국에 대해서도 "나는 중국이 성장한 국력에 걸맞게 포용력과 평화적 리더십을 발휘해주길 기대합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은 길을 이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인들의 마음을 얻을 때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지사는 일본에 대해 "일본 아베 정권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불안감에 미·일 동맹을 통해 안보를 보장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립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며 미·일 군사 일체화와 일본의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며 "일본이 가야할 길은 시대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고, 공동 번영을 선도하는 국가로서, 평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그런 길입니다. 그래야 주변국들의 인정과 협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 시도는 아시아 역내의 긴장과 군비경쟁, 갈등의 고조를 불러올 뿐입니다"라고 비판했다.

안 지사는 특히 지난 "70여 년 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선배들이 쌓아 올린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들이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라며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외교는 강대국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채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차원의 경제 위기는 다가오면서, 내부적으로는 저출산의 문제, 고령화 시대의 도래, 양극화 추세의 강화,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암울한 경제현실,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고 밝혔다.

안 지사의 경축사는 박근혜 대통령 경축사와 묘하게 엇갈린다.

박 대통령의 경축사는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광복을 되찾아 대한민국을 건국한 선각자들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바탕으로, 모든 국민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경쟁과 창의를 촉진하는 나라의 기초를 세웠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광복과 해방보다는 '건국'을 앞세워 현재 대한민국이 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한강의 기적'을 '한반도의 기적'으로 확대하자는 경축사와 비슷한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까지 3년 연속 혁신지수 세계 1위 국가로 평가받고 있고, 국가 신용등급은 프랑스, 영국과 같은 최고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일궈내기까지 우리의 선조들은 가난 속에서도 모든 것을 바쳐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부모님들은 머나먼 이국땅 캄캄한 지하갱도에서, 밀림의 전쟁터에서, 그리고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피땀을 흘렸습니다"라며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자 자랑스러운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반면, 안희정 지사는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암울한 경제현실, 민주주의의 위기까지"라고 표현하면서 현실 인식에 있어 정반대의 입장을 나타냈다. 박 대통령이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라고 했던 것을 안 지사는 "헬조선"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면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습니다"면서 대한민국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내부의 부정적인 상황 인식 탓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은 특히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서 필요하고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입니다"라며 대북정책 강경기조를 재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드 배치 역시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자위권적 조치였습니다. 저는 국민의 생명이 달려있는 이런 문제는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철회 요구를 일축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무장 국가를 추구하고 있는 일본을 향해 비판성 메시지 전달에 주력했다면 박 대통령은 "한·일 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라는 원론적인 말로 끝을 맺은 것도 비교된다.

미중일 외교 전략과 남북관계 문제, 대한민국 현실 상황 등 박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경축사는 180도 전혀 다른 입장을 보여주면서 회자되고 있는 셈이다.

▲ 안희정 충남지사 페이스북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축사는 지난 2015년에도 박 대통령의 경축사와 비교돼 화제를 모았다. 안 지사가 지난해 경축사에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서로 잠재적 적국으로 여기지 않고 대결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대목도 현재 사드 배치 문제로 외교 전략이 시험대에 오른 박근혜 정부의 모습을 예고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안희정 충남지사 측은 17일 통화에서 승전일을 지정하자는 의미에 대해 "국제 사회도 과거의 식민지 시대를 반성하고 우리가 노력을 해서 해방이 됐다는 평가를 정당하게 해달라는 것이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취지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충남도청 측은 "안중근 의사께서는 전쟁 포로였다. 그 대목을 승전일로 연결시키면 우린 36년 동안 전쟁을 한 것"이라며 "임시 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는다고 했으면 나치에 대항해 프랑스 망명 정부도 승전국으로 대우를 받았던 것처럼 임시정부가 투쟁을 하고 노력한 것을 후손들이 기려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것이 안희정 지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충남도청 측은 미중일 외교 전략에 대해서도 "안 지사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공감을 많이 하고 있다. 경제공동체 EU와 비슷한 정도 수준의 주장을 한 세기 전에 한 것을 의미 있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경축사와 비교되는 것뿐 아니라 안 지사의 경축사가 대권 선언을 위한 입장 정리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면서 안 지사 측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안 지사 측은 "책임있는 정치인으로 8. 15와 같은 중요한 시기에 비전과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을 밝힌 것이다. 누구랑 비교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안 지사의 발언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안 지사는 11일 트위터를 통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다 이루지 못한 그 미완의 역사를 완수하겠습니다"라고 썼다. 16일엔 라디오에 출연해 "국가공동체 국민모두의 평화와 안정, 번영, 생존권과 생명을 보존하는 일은 모든 지도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며 "국민들은 지도자가 민주주의 리더십을 확고히 하고, 합리성과 균형을 높여서 국민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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