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당선된 후 당내 친박계가 탄력을 받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인사권 행사 등에 조심하며 속도 조절을 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정현 대표 선출 직후 청와대 오찬을 하는 등 환대했다.

이정현 대표는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 당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관심이 모아지는 당직 인사와 관련해 “국민의 사랑을 되찾아 오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정현 대표는 지난 9일 당선 직후부터 인사를 서두르지 않겠다면서도 ‘탕평 인사’를 강조했다.

이정현 대표는 지난 12일 첫 인사에서 비서실장에 친박계 윤영석 의원을 지명했다. 윤영석 의원은 지난 총선 직후 유승민 의원 복당에 반대하고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에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요구하는 ‘강성 친박’ 그룹으로 분류된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운데)가 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후 김희옥 전 혁신배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과 정진석 원내대표와 함께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하지만 비서실 부실장직을 신설해 원외의 홍범식 당협위원장을 부실장으로 임명해 친박 몫 챙겨주기라는 비판을 희석했다. 이정현 대표는 당선 후 사무처 당직자의 의견을 듣는 형태의 월례조회(12일)를 거쳐 17일 전국 원외 당협위원장협의회와 만나는 등 각계와 소통을 넓혀가고 있다.

비박계인 이상휘 전국원외위원장협의회 대변인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차 인사는 당대표와 손발을 맞출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이 같은 사람을 인선할 수밖에 없고 지금이 그런 단계”라며 “실질적으로 큰 틀의 정책을 협의할 수 있는 인사를 짜야하는 인사 2단계까지 거쳐봐야 경선 때 말한 ‘탕평 인사’를 판가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대표와 회동과 관련해서는 “원내 국회의원보다 원외 당협위원장과 먼저 만나기로 한 점에서 의미 있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당내외 수평적인 소통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외당협위원장과 당대표 간담회에 최대 80~90명 가량이 참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정현 대표의 인사는 주중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차기 인사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원외 당협위원장 교체 키를 쥔 당무감사위원장 인선에 시선이 쏠린다. 비박계 원외 당협위원장을 친박계로 교체하고 내년 대선 경선 국면에서 친박계 대선 후보 만들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재까지 이정현 대표의 행보는 넘침이 없어 보인다. 지난 1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경선을 방송사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인 ‘슈퍼스타 K’ 방식으로 치르겠다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사무처 월례조회에 참석해 사무처 직원들과 둥그렇게 앉아 대화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친박계 대선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자 이정현 대표는 보도가 나간 즉시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슈퍼스타 K’ 방식 도입을 재확인하면서도 “큰 틀과 방향을 제시한 것”, “어떤 것도 독단적으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진화했다.

조심스러운 이정현 대표와 달리 친박계는 전속력으로 직진하는 모양새다.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다음 날인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비박계를 향해 “당 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하는 건 비주류가 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대선과 관련해서도 이장우 최고위원은 “치열한 삶을 살아 성공한 사람들이 새누리당에 대거 수혈되고 그런 분이 당 중심이 되면 국민들이 새누리당이 변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반기문 총장 같은 분이 치열한 경선을 통해 승리하면 결국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당대회가 끝난 지난 10일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고도미바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6명을 “중징계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은 더민주 초선 의원들의 방중이 알려지고 출발하는 날까지도 공통된 의견을 내놓지 않다가 공교롭게도 친박계 지도부 당선 후 곧바로 목소리를 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친박계 신임 지도부에 힘을 실어줬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1일 신임 당대표 오찬에서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를 맞은 박근혜 대표를 두고 “모신 뒤로 오늘 가장 많이 웃으신 것 같다”고 한 걸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이정현 대표에게 송로버섯과 샥스핀, 바닷가재, 캐비어 샐러드, 한우 갈비, 농성어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한 오찬 메뉴로 새누리당 새 지도부를 환대했다. 이정현 대표는 이 자리에서 “탕평 인사”를 주문하면서도 논란이 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거취를 언급하지 않아 “당·청 ‘신 밀월시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맨 왼쪽)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오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부가 어렵다고 했던 전기요금 누진세 개편도 당청 회동에서 이정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면서 개편으로 가닥을 잡았다. 언론은 “이정현 제안에 ‘신속한’ 전기요금 완화…朴의 선물”(이데일리)라는 평가와 “대통령 말 한마디에…복지부동 관료들, 전기료·사드·대구공항·연말정산 등 자주 번복”(조선일보)라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됐다.

총선 참패 후 강한 개각 요구에도 아랑곳 않던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장관 3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친박계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해 ‘돌려막기’를 하면서 친박 체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정현 대표가 요구했던 ‘탕평인사’도 관철되지 못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혹만물상 우병우 수석, 국민 분열 주범 박승춘 보훈처장을 유임했다”며 “국민과 야당을 능멸한 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당 대표조차 탕평인사를 주문했는데 지역편중인사는 여전했다”고 덧붙였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힘이 들어가 있는데 친박은 말할 것도 없다”며 “우병우 수석 문제로 수세 국면에 몰렸던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이슈화하면서 논란거리를 만들면서 국정 중심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종훈 평론가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개각으로 친박 인사 심기에서 성공했고 이정현 대표가 대선 이슈를 앞당겨 제기하면서 정국은 빠른 속도로 대선 국면으로 가고 있다”며 “야당과 협치 대신 이슈 경쟁을 계속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또 한 번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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