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베이징올림픽 수영 400m금메달·200m은메달, 2012런던올림픽 수영 400m은메달·200m은메달. 동계에 김연아가 있다면 하계에는 박태환이 있었다. 세계적 스타였던 그는 이제 일그러진 영웅이다. 2014년 9월 국제수영연맹(FINA)이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양성반응을 보여 18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으며 약물 복용 선수라는 오명을 평생 벗을 수 없게 됐다.

검찰 조사에선 근육증가량을 높여주는 네비도를 도핑 적발 이전에도 수차례 투약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서민 단국대 의대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그는 약물검사에서 걸린 게 의사의 실수라고 주장하나, 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은 원래 중년 남성들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사하는 게 주 업무였다. 이런 병원을 찾아가 주사를 맞은 건 고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2016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박태환 선수. ⓒ노컷뉴스
그런 박태환이 2016리우올림픽에 출전했다.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징계 만료일로부터 3년 간 국가대표 발탁이 제한돼야했다. 하지만 박태환은 대한체육회와 스포츠중재재판소(CAS)까지 가는 법적 다툼 끝에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 과정에서 비난 여론은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 정치권은 ‘이중처벌’을 언급하며 국민들이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7월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조훈현 새누리당 의원은 강영중 대한체육회장에게 “우리 국민들은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 빨리 정해줘야 한다. 빨리 훈련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실패와 좌절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박태환의 출전을 응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박태환을 제2의 안현수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검찰 수사 결과 금지약물 복용은 병원장의 과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에 있어 여야는 한 마음으로 보였다. ‘메달=국위선양’이란 공식에만 눈이 멀어 스포츠맨십의 중요성 따위는 놓쳐버린 결과였다. 박태환의 출전은 그 자체로 국제적 망신거리였다.

혹자는 그가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정정당당한 기록으로 리우 올림픽 출전자격을 획득했고 법적 다툼이 끝났으며 자격정지 기간도 끝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스포츠맨십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스포츠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순간, 선수 생명은 끝나고 그의 기록도 부정된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3115안타를 기록하고 은퇴한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가 일례다. 그의 기록은 공식인정을 받지 못하며, 명예의 전당 입성도 불가능하다. 반면 최근 역사상 네 번째 최소타석으로 3000안타를 기록한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는 세계적인 존경을 받았다. 두 사람을 가르는 건 스포츠맨십이다. 스포츠맨십을 잃어버리는 순간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

▲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존경받는 건 수십개의 금메달 때문이 아니다. 그가 지켜낸 스포츠맨십 때문이다. ⓒ노컷뉴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어인족’ 마이클 펠프스는 리우 올림픽에서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들이 복귀하는 것이 허용되는 건 슬픈 일”이라며 “스포츠는 깨끗해야 하고, 공정한 경기장에서 펼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박태환이 리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더라면 그는 금지약물 복용 이후 200m 금메달을 딴 중국의 쑨양과 마찬가지로 세계인들로부터 조롱당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 언론은 메달을 위해서라면 약물 복용자까지 올림픽에 출전시키는 비신사적 국가라는 외부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역경을 딛고 실력으로 증명한 박태환’이란 서사로 그의 도덕적 흠결을 지웠을 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게 한국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태환은 리우에서 400m 10위, 200m 29위, 100m 32위로 전부 예선 탈락했으며, 1500m는 출전을 포기했다.

생각보다 성적이 저조하자 언론은 박태환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중앙일보는 ‘누가 박태환에게 돌을 던지랴’란 제목의 칼럼에서 “박태환은 수영 불모지에서 탄생한 국민적 영웅이다. 도핑 파문을 일으켰지만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다”며 “4년 동안 체계적으로 준비했던 이전 대회와 리우 대회는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박태환 귀국 후에도 여전히 성적만 나오면 그만이라는 사고는 바뀌지 않았다. 펠프스의 리우 도전기와 박태환의 도쿄 도전기를 비교하는 기사도 나왔다. 언론은 박태환에게 기대와 동정을 보내기 전에 그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스포츠맨십을 잃어버린 일그러진 영웅을 올림픽으로 보낸 우리 사회 또한 반성할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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