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또다시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부정함으로써 ‘친일파의 역사’를 지우려는 뉴라이트 사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8월15일에도 “65년 전 오늘은 외세의 도전과 안팎의 혼란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국산 자동차, 철강, 선박, 스마트폰, K-POP 등을 거론하며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자 자랑스러운 현주소”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청와대)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 발언은 극심한 소득 불균형, 막혀버린 계층 이동, 치솟는 자살률·빈곤율 등 한국 현실을 지옥에 빗댄 ‘헬(Hell)조선’이라는 용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기저에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긍정의 역사’로만 포장하는 뉴라이트 사관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데서 주목할 만하다. 

‘종북·좌익’세력이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해 국민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끝내 대한민국을 허물어 북한에 내주려 한다는 망상, 그 작업의 일환으로 ‘이승만·박정희 죽이기’에 좌파들이 혈안이 됐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정책으로 발현된 대표적 사례다.

박 대통령의 경축사와 관련해 떠오른 것은 지난 5월 한 토론회였다. 대표 뉴라이트 학자 이인호 KBS 이사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은 지난 5월26일 선진사회만들기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하려는 세력”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 발언에서 기시감을 느낀 이유다. 

▲ 이인호 KBS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11일 제9회 우남 이승만애국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 이사장과 박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이미 공감대를 이뤄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행적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 등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 ‘백년전쟁’과 관련해 지난 2013년 3월 이 이사장이 박 대통령에게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라고 했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잘 살펴보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다큐를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상대로 검찰 조사가 이뤄지면서 공안탄압 논란이 일었다.  

이 이사장은 선사연 토론회에서 “1945년에서 1953년 사이 국제정치에서 일어난 가장 큰 대결은 이승만과 스탈린의 대결이었다”며 “당시 스탈린의 소련은 전승대국으로 동유럽까지 차지하고 있었고 이승만은 힘없는 독립 운동가일 뿐 돈도 조직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결이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이승만 승리로 끝이 났다”며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독재와 양민학살이라는 이승만의 그늘은 외면한 채 일부 업적만 부각하고 냉전에 선악 논리를 덧씌운 뒤 이승만을 비판하면 악이라는 인식이다.  

이 이사장은 “(이승만을) 반대하는 쪽에서 보면, 이승만만 없었다면 쉽게 먹어치웠을 한반도의 남반부가 이승만으로 인해 미제의 앞잡이가 됐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승만은 용서할 수 없는 인물로 찍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역사 의식을 교란시켜 대한민국을 허물고자 하는 세력의 포화가 이승만에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 다르지 않은 인식이다.  

▲ 광복군 출신 김영관 선생이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건국절 제정 움직임 등을 비판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그러나 친일파의 자손인 박 대통령과 이 이사장의 역사왜곡은 독립운동가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앞서 광복군 출신 김영관 선생은 지난 12일 박 대통령 면전에서 건국절 논란에 대해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으며 역사 왜곡이다.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김 선생은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5일 박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의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뉴라이트 역사관에 동조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의 토론회 발언 중 특기할 만한 것들이다.  

“대한민국을 허물고자 하는 세력은 역사의식과 국민의식을 약화시키려 한다. 목표가 이승만이다. 이승만을 죽여야 대한민국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어지러운 상황을 보다 못한 군인들이 애국정신에서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불법으로 권력을 장악하되, 혁명 목표라는 걸 내세워서 나라를 크게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려 했다. 박정희는 인정할 줄 아는 분이었다. 다시는 자기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있는 실질적 토양을 만들었다.”

▲ 대표 뉴라이트 학자 이인호 KBS 이사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은 지난 5월26일 선진사회만들기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하려는 세력”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사진=선사연 토론회 유튜브 영상 갈무리)
“북한이 옛날부터 꿈꾸던 상황이 (5·18) 광주에서 발생하면서 많은 피가 흘렀다. 대한민국에 직접 도전하는 세력이 싹틀 기회였다. 그때부터 역사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했다.”

“광주는 물론이고 제주 4·3 사건 등과 관련해 국가폭력이 민중의 저항을 잔인하게 진압했다는 식의 해석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정부 문건으로 채택됐다. 역사의 대못질이 이뤄졌다.”

“이승만 대통령을 도와서 큰 공을 세웠던 사람들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며 ‘역사의 심판을 받을 사람’으로 낙인 찍었다. 지금 자라나는 애들은 (이승만 등을) 천하의 독재자로서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이자 친일파로만 기억한다. 역사 탐구의 대상으로 거론할 가치도 없는 인물로 만들고 있다.”

“계급투쟁 의식을 고취시키며 국가를 못 믿게 하는 역사교육, 이 때문에 기성세대를 아주 우습게 볼 정도로 어린 애들의 인생관이 비뚤어졌다. 자기가 모르는 유명한 지도자면 뭔가 잘한 게 있는 건데, 이승만 박정희를 독재자의 전형으로 안다.”

“1987년 체제가 만들어질 때까지 대학가에서 데모가 없던 날은 없었다. 대학생들이 두꺼운 연구서 한 권도 읽지 않고 졸업하는 일이 계속됐다. 이 무식의 공백은 엄청난 거다. 4년동안 (연구서 등을) 읽고 소화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된 거다. 정의는 정권타도만 외치면 된다는 식의 의식 구조를 갖고 있는 세대가 정치를 이끌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시국 사범으로 고문을 당했던 모양인 백기완이라는 사람의 시 묏비나리 중간을 차용한 건데, 해당 시는 이 땅에 대한 저주로 가득차 있다. 그 험악한 시 가사를 국가 공식 행사에 부르자고 주장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