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유일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넥슨 논평 사건’의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후 정의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8월 1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정의당의 정당지지율은 3.1%P떨어진 4.7%로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응답률 9.2%, 표본오차 95% 신뢰수준±2.5%p.)
하지만 전반적인 지지율의 하락보다 주목해야할 것은 수 백명의 탈당자들이 생겨나는 탈당사태와 여성 당원 지지도가 급락했다는 점이다. 논평사건 이후 정의당에서는 메갈리아를 반대하는 당원과 당의 젠더감수성을 비판하는 두 축 모두에서 ‘탈당 러쉬(rush)’가 일어났다.
정의당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논평 사건 이후 8월3일까지 2주 동안만 탈당자 수가 580명에 달했다. 탈당이 이어져 천 여명에 이르렀다는 말도 돈다. 또한 7월 4주차 전주 주중집계에서 여성 지지율은 8.1%에서 8월 1주차 3.6%로 급락했다. 결과적으로 정의당은 논평 사건에서 메갈리아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두 마리 토끼’모두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당 안팎의 관계자들은 ‘넥슨 논평 사건’은 분수령이었을 뿐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평가했다. 정의당 관계자들은 정의당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민주노동당의 모습이 외형적으로만 남아있는 국회의원 정당” (당직자 A)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했지만 ‘진보정당’보다 ‘대중적’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당” (당원 B)
“진보정당의 정체성이나 차별성을 잃어버린 당 지도부의 문제” (박원석 전 의원)
관계자들은 정의당의 가장 큰 문제로 정의당이 진보의제를 선점하기보다 몇몇 스타 정치인을 내세워 인터넷여론이 환영할만한 활동에 역량을 집중해 온 것을 꼽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심상정 대표의 ‘최고임금법(살찐 고양이법)’발의, 노회찬 의원의 ‘국회의원 세비 절반으로 줄이기’제안이다. 최고임금법은 재벌 등의 임금을 제한하자는 아이디어로 ‘사이다법’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최고임금을 제한한다고 해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노회찬 의원의 ‘국회의원 세비 절반으로 줄이기’제안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환영을 받기도 했으나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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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의당이 사라졌다’라는 칼럼(한국일보 8월5일자)에서 “공적복지 확대는 증세가 필수적인데 정의당의 공약대로 증세를 한다고 해도 공적복지 지출이 국내총생산 대비 13%를 넘지 않고 이는 여전히 OECD 최하위권이다”라며 “이정도 증세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물론 집권을 위해서라면 새누리당도 공약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썼다. 이어 윤홍식 교수는 “정의당은 진보를 꿈꾸지만 현실정치에서 중도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의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오른 지난 3월에는 필리버스터 정국 아래에서 야3당이 모두 지지율이 오른 상황이었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내부요인이 아닌 외부요인에 의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은 정의당이 자체적으로 이슈를 끌 정치 의제를 만들어가지 못한다는 증거다.
당 공약보다 인터넷 여론이 중요하다?
정의당이 중도프레임에 걸린 이유로는 인터넷 여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당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당의 당직자 A씨는 “정의당의 정책을 따져보면 더불어민주당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수준이며 대중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이슈만 따라가기 급급하다”며 “진보적 정당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해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인터넷 여론에 휘둘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의당의 또 다른 당직자 B씨에 따르면 논평사건 때에도 노회찬 의원이 “당에 우호적인 커뮤니티와 거리감이 생긴 것에 아쉽다”고 말했다고 한다. 논평 사건 이후 정의당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거냐’며 진보 커뮤니티로 분류되는 ‘오늘의 유머’에서 정의당 비판 여론이 일었던 것을 두고 한 말로 해석된다.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젠더이슈를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인터넷여론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만약 정의당이 논평 취지를 게임 산업의 특수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방향으로 확실시하고 관련공약을 이슈화시켰다면 정의당의 입장에서는 기회였다. 하지만 중앙당은 “논평의 취지를 전하는데 실패했고 메갈리아를 지지하냐는 논란만 지속됐다”며 논평을 철회했다. 자신들이 내놓은 공약에 맞는 사례에 대해 큰 고민 없이 인터넷여론에만 흔들려 내린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의당이 인터넷여론에 휘둘리는 이유로는 주요 지지층의 특징때문에 지역기반이 약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작년에 정의당에 입당한 당원 C씨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 정의당을 이루고 있는 많은 당원은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운동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들의 특징은 오프라인에서 지역 운동을 참여하기보다 팟캐스트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의 주요지지층의 서식지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기 때문에 정의당으로서는 인터넷 여론에 신경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정의당이 생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등 NL계열과 작별한 것도 지역기반을 약하게 만든 점으로 꼽힌다. 특히 고양시에서 계속 지역기반을 다져온 심상정 상임대표와 달리 노원-동작-창원으로 지역구를 옮긴 노회찬 원내대표 측의 지역 기반이 약해 온라인 여론에 과도하게 신경을 쓴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당 요직 몇몇 정치인에 ‘몰빵’, 중앙당이 관심 있는 이슈 외에는 ‘외면’
당의 역량이 심상정 당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모이고, 주요 결정권한도 주요 정치인들에게만 몰려있어 이견을 처리하는데 서툴다는 지적도 따라온다. 정의당은 주요당직을 모두 국회의원들이 겸직한다. 심상정 상임대표, 노회찬 원내대표에 이정미 의원이 부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고 김종대 의원이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승자독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총선 전으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정의당이 가지고 있는 인력 등을 모두 창원(노회찬 의원 지역구)과 고양시(심상정 의원 지역구)에 ‘몰빵’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20대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들은 준비도 없이 비례대표 후보의 득표를 위해서 반강제로 착출됐다”며 “당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노-심’만 당선시키면 된다는 거다. 모든 당력을 거기에 집중시켰다”고 말했다. 정의당 내에서는 적은 지원으로 10%의 지지를 얻은 부산 금정구의 노창동 정의당 후보가 이례적인 사례였다고 평가한다.
주요 정치인을 위주로 돌아가는 구조 때문에 중앙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이를 중요치 않은 일로 치부하고 흐지부지 내버려두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정의당을 탈당한 한 당원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전 ‘중식이밴드’가 당의 로고송을 만든다고 했을 때 비판이 중앙당에 쏠렸지만 중앙당은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며 “이번 논평 사건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잘라 내버리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고 이는 중앙당이 신경 쓰는 이슈 외에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는 이견을 다루는 일이고 어떤 이견들은 봉합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 최근에 이견이 생긴 사안들은 당 지도부가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책임 있게 행동했어야했다”며 “이를 계기로 정의당이 진보정당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로 만들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창민 대변인은 “현재 탈당 이유도 두 갈래로 나뉘는 만큼 어떤 이유에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탈당을 하는지 정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지지율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는 당에서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