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보도지침 의혹을 받는 장본인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사실상 정치적 면죄부를 받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는 가볍지 않은 당시 청와대 보도지침 논란을 특유의 읍소로 정리한 후 “모르쇠”로 일관하며 논란을 축소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6월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 뉴스를 봐버렸네”라며 정부 비판 보도를 삭제하거나 무마해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폭로했다.

이정현 대표는 이 논란을 세 단계로 대응했다. 첫 번째 즉각적인 사과다. 이정현 대표는 30일 뉴시스와 한 인터뷰에서 “평소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과) 친분이 있던 사이라 통화가 조금 지나쳤다”며 “내 불찰이고 김 국장에게 굉장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9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당선되 당직자들과 손잡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 


하지만 이 사과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수정된다. 이정현 대표는 여론이 주목되는 상황에서 7월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다. 당연히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홍보수석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고 해명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워딩을 내놨다.

폭로 당일 조용했던 새누리당은 7월1일 이정현 대표 적극 방어에 나선다. 이는 이정현 대표와 당이 말을 맞춘 마냥 똑같은 논리였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이)본연의 업무 수행을 했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두둔했다.

세 번째 변화는 침묵이다. 이정현 대표는 보도지침 논란이 보도된 후 딱 일주일 후인 7월7일 예상됐던 당대표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보도지침 논란에 대해서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이정현 후보는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 후 ‘녹취록 파문’의 영향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 문제제기 됐을 때 제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했다”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이런 전략은 전당대회를 앞 둔 최근까지도 유지됐다. 한겨레가 지난 8월3일 실시한 당대표 후보 인터뷰에서 이정현 대표는 “이미 제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더 이상의 해명을 내놓지 않음으로서 논란이 이어지지 않았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7월1일 채널A '쾌도난마'에 출연해 '보도개입'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이정현 대표가 면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언론의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보도지침을 받은 당사자인 KBS 사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를 비판하는 기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제주도 발령 등의 징계였다.

전반적으로는 ‘보도통제’라는 이슈에 언론의 관심이 떨어졌다. 미디어오늘이 집계한 이정현 대표 녹취록 관련 보도는 7월13일 현재 KBS·MBC 각각 1건을 보도했다. 기자들의 긴급 발제권까지 발동 시켰던 SBS는 리포트 3건을 내보냈다.

전국 단위 종합 일간지 중에서는 경향신문(36건)과 한겨레(31건) 보도가 압도적이었다. 10건 이상을 보도한 곳은 한국일보(16건)와 세계일보(15건)를 포함해 4곳에 그쳤다. 보수언론으로 통칭되는 조중동은 나란히 6건을 보도했으며 국민일보와 서울신문이 각각 8건과 3건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의 전당대회 기간 내내 언론의 관심은 ‘보도개입을 한 이정현’이 아니라 계파 구도 속에 놓인 ‘친박 이정현’에 집중됐다. 이런 맥락은 당대표 선출 이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0일 9개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는 대부분 이정현 대표 당선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으나 보도지침 논란을 언급한 매체는 경향신문·국민일보·한겨레·한국일보 4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국민일보는 1면 기사에서 “KBS 세월호 보도개입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지만 ‘불가능은 없다’는 선거 슬로건처럼 그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고 적어 이정현 대표가 역경을 극복한 사례처럼 표현했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당대표 출마 선언 소식을 다룬 7월8일자 한겨레 기사. 이정현 대표는 보도개입 논란과 관련해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이정현 대표의 보도개입은 명백한 방송법 위반 행위로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언론노조, 세월호참사언론장악, 이정현퇴출순천시민대책위 등에 의해 고발된 상태다. 특히 세월호특조위의 고발은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3개월 안에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이정현 대표는 당대표 지위와 상관없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방송법 위반 혐의자다.

하지만 이런 국면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처음 폭로를 이끌어 냈던 언론노조는 지난 6월30일 기자회견에서 이정현 대표 녹취록을 공개한 이후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 토론회와 청와대 국회 앞 1인 시위, 청와대의 공영언론 언론장악 진상조사 청문회 촉구 기자회견 등을 했다.

언론노조의 전략 부재가 감지되기도 한다. ‘이완구 총리 후보의 언론장악’ 관련 녹취록을 쥐었던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녹취파일 확보 발표-녹취 파일 일부 공개·제공-녹취 파일 전면 제공 등 단계별 절차를 밟아가며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정권 비판에 미온적이라는 KBS도 여론을 지렛대로 ‘단독’ 입수한 이완구 녹취록을 보도할 수 있었다.

언론노조의 ‘이정현 녹취록’ 폭로에서는 전략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녹취록은 하루에 모두 풀어버렸고 이후 새로운 소스가 제공되지 않으면서 언론의 질문은 잦아들었다. 언론노조는 이정현 녹취록을 공개할 당시에도 기자들에게 “고소당할 위험이 있어 녹취 파일 제공은 어렵다, 현장에서 각자 녹취 파일 공개시 녹음해 가는 것은 말릴 수 없다”고 소극적으로 나왔다.

보도지침 국면을 개선할 동력이 모였는지도 의문이다. 언론노조는 이정현 대표가 당선되고 이틀이 지나서인 11일 산하 조직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청와대 언론 장악 국회 청문회 촉구 서명 운동’을 독려해달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청와대 언론장악 청문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동영상 화면 갈무리.


언론노조가 이 메시지에서 밝힌 것처럼 “온라인 서명운동 공문을 시행했지만 참여율은 너무 저조한 편”이다. 언론노조는 15일 열리는 노동자대회에서는 오프라인 서명운동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언론단체들 역시 “권력자의 심기를 위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언론’이 아니라 ‘간신배’의 역할”이라며 지난달 11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 간 KBS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공정언론특위, 민주주의회복TF,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은 지난달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청문회 실시를 촉구했다. 당시 더민주는 “핵심 당사자”인 이정현 대표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정현 대표가 당선된 후 박광온 더민주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청와대 대변자 역을 자처하기 보다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정 운영의 한 축이 돼야 한다”고 비판이 담긴 축하 메시지를 내놨다. 보도지침 논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새누리당에서 애써 보도지침 논란을 무시하고 피했다”며 “또 보도지침 폭로 이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 등 많은 일들이 터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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