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출신 티베트인 라마다와파상(41)씨는 한국에서 19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이다. 아내와 세명의 아이들 모두 한국인이지만 그는 결혼이민(F-6)비자를 연장해서 살고 있다.

라마다와파상씨의 귀화가 불허된 이유는 ‘품행 미단정’이라는 법원의 결정 때문이다. 그는 5년 전 자신의 가게가 있는 명동 제 3구역 일대 상가에 강제집행이 들어왔을 때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이 때문에 귀화가 불허되자 ‘품행 미단정’이라는 말이 명확하지 않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도 이 법률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 라마다와파상씨는 서울 종로 등에서 티베트 음식 전문점 '포탈라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5일 미디어오늘이 '포탈라 레스토랑'에서 라마다와파상씨를 만났다. 사진=정민경 기자
라마다와파상씨가 막았던 강제집행은 그의 가게에 직접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라마다와파상씨의 가게 인근에 있는 4~5군데가 강제집행을 당했고 그는 ‘저 일이 곧 나에게도 일어나겠다’는 생각에 집행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라마다와파상씨는 그때 일을 말하면서도 기억하기 싫다고 했다.

“안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철거민이 돈 때문에 싸운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한번 현장에 가보라고 하고 싶다. 누가 돈 조금 더 받으려고 그 꼴을 겪겠나. 그날 용역들이 이삼백명정도 왔다. 너무 무서웠다. 솔직히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일을 겪은 사람들은 완전히 바닥을 치게 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강제집행 사건 이후 스트레스로 뇌수막염을 앓기도 했다.

강제집행 날 그는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봤다. 라마다와파상과 함께 시위현장에 온 임신 중인 아내를 용역이 발로 찼다. 그는 용역을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로 갔다. 하지만 신고를 하러간 그는 오히려 공무집행방해‧업무방해‧집시법(집회시위에 관한 법률)‧폭처법(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혐의로 기소됐다.

“용역을 신고하려고 경찰서에 갔는데 용역들이 따라 들어왔다. 손가락에 붕대를 한 사람과 허리에 손을 올리고 아픈 소리를 내는 용역이 내가 차로 자신들을 치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다 허위로 판명 났지만 그때는 그렇게 기소됐다. 물론 허위사실에 대한 배상 같은 건 없었다.”

폭처법은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공무집행방해와 업무방해, 집시법은 유죄로 결정됐다. 그는 2014년 2월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날 같은 일로 함께 경찰서에 간 10명 중 라마다와파상씨를 포함해 2명만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1명은 벌금100만원 형이었다. 라마다와파상씨는 “내가 외국인이라 더 엄격하게 법을 지켰어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라마다와파상씨의 가게에는 가게에 대한 칭찬과 함께 곳곳에 "민수씨 힘내세요" 등의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민수'는 한국에서 라마다와파상씨를 부르는 이름이다. 사진=정민경 기자
마약사범보다 죄질 나쁜 ‘강제집행 시위전력’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마약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귀화신청을 불허당한 사건에 “품행 단정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라마다와파상씨의 경우 서울행정법원은 “불법집회와 공무집행 등 대한민국의 법적 안정성과 질서유지를 심각하게 저해했다”며 기각했다. 

라마다와파상씨는 “내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한 일이 마약보다 품행이 불량하다고하는 한국 법원이 의아하다.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보고 ‘찍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라마다와파상씨는 ‘품행 단정’조건이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라며 2014년 10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7월28일 헌법재판소는 국적법 제5조 제3호(‘외국인이 귀화허가를 받기위해서는 품행이 단정할 것’)가 합헌이라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이 귀화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품행이 단정해야한다'는 국적법 제 5조 제 3호를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했다. 이날 결정은 '김영란법 합헌' 결정과 같은 날 이뤄졌다. 사진=포커스뉴스
헌법재판소는 합헌이유로 “국가공동체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 국가에게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품행이 단정할 것’과 같이 어느 정도 보편적이고 가치 평가적인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도 인격이나 품성과 관련된 불확성 개념을 귀화허가 요건 중 하나로 사용하고 있다”며 “‘품행 단정’은 귀화 신청자의 성별, 연령, 직업, 가족, 전과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되며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라마다와파상씨는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다. 워낙 많은 일들을 봐와서. 그래도 실망스럽긴하다”며 “적어도 ‘품행단정’이라는 말에 조금 더 구체적인 기준이 있어야한다는 의견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판결문은 그냥 대법 판결문과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품행 단정’ 규정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문제는 이미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적한 사항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품행단정’의 구체적인 기준을 법령 등에 마련해야한다”고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하기도 했다.

▲ 민수 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정통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의 모습. 사진=민중의소리
“외국인 딱지에 ‘빨갱이’ 딱지 까지 붙였다”

“이제는 법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물어보고 싶다. 법원 판결도 3심까지 다 했고 헌법소원도 냈으니 할 건 다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이런 주장을 하면 ‘좌파’다, ‘빨갱이’라고 하더라. ‘외국인’ 딱지에 더해져 ‘빨갱이’ 딱지 까지 붙여진 거다.”

또 다시 귀화신청을 할 거냐고 질문했더니 라마다와파상씨는 망설였다. 그는 귀화신청을 하려면 다시 네팔로 가서 범죄사실증명서 등 증명서류를 떼서 제출해야한다. 네팔을 떠난 지 19년이 됐지만 네팔에서 서류를 떼야하는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 민수 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정통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의 모습. 사진=민중의소리
그는 귀화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자를 연장할 때도 아내와 함께 가야한다.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세명의 아이들이 차별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한국 국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도 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한국국적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 같은 외국인, 또 다른 사람이 불합리한 기준으로 인해 억울함을 겪을까봐 목소리를 내는 거다.”

라마다와파상은 언론인터뷰 등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다. 계속해서 소송 등을 겪으며 언론에 비춰졌고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솔직히 내가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 이유들 다 한국에서 가르쳐 준거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일하다가 사장님이 때려도 그냥 맞고 웃었다. ‘나는 외국인이니까’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오래 있다 보니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가르쳐주더라. 귀화하려면 시험 봐야하니까 법 공부 할 때도 많이 배웠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배운 것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