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시작하니 나는 ‘세입자’가 됐다. 6개월 후 건물주가 나가라며 명도소송을 걸고 나는 ‘피고’가 됐다. 가게를 지키려고 하니 ‘을질’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가게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수많은 딱지를 붙였다.”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최소연 대표는 준비한 스티커를 자신의 몸에 하나씩 붙였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임차인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호소였다.
상인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상가법)의 구멍을 지적하며 제대로 된 임대인 보호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강제집행을 당한 서윤수 우장창창(가로수길 곱창집) 대표는 “지금 상가임대차보호법은 합법적으로 임대인의 권리를 빼앗게 도와주는 법”이라며 “상가법이 너무 복잡하고 허점이 많아 상인들이 법을 다 알아야하는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법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장사하는 일이다. 더 이상 상인들이 법을 몰라서 쫓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 정태환씨도 “상인들이 임대기간을 늘리자고 하니 사람들은 ‘건물주의 재산권’을 운운한다”며 “지금 법으로도 월세 3개월 안내면 바로 쫓겨난다. 건물주의 재산권을 지켜줄 수 있는 조항은 충분한데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재산권을 지켜주는데만 치우쳐있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국회에는 허점이 많은 상가법을 보완하는 개정안이 여러 개 발의된 상태다. 지난 19대 국회기간에만 발의된 상가법 관련 법률안이 20건이나 된다. 개원한지 3개월이 되지 않은 20대 국회에도 개정안이 6건이나 발의됐다.
국회에 발의된 수많은 개정안들을 종합하면 △상가법 보호 적용 범위 확대(환산보증금 4억 이상 상가, 전통시장 등) △최소임대기간 연장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상가법 소관부처 변화 필요성 △재건축 시 쫓겨나는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한 개정 사안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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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박배균 서울대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도시는 도시에 사는 수많은 이들이 집단적으로 만든 공간인데 그 도시에서 나온 이익은 매우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있다”라며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의 배분을 나라가 민주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배균 교수는 “현재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된 상가임대차 관련 분쟁에서는 재산권만 과도하게 인정이 되고 있다”며 “상인들의 ‘장사할 권리는 기본적 생존권이자 인권인데 이것보다 건물주의 재산권이 훨씬 더 우월한 권리로 취급받고 있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해결을 위해 지역에서 조례를 만든 사례도 소개됐다. 발제자로 참여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에 근거한 성동구 정책을 소개했다.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는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 △주민협의체 통해 입점 업체 제한(대기업 프랜차이즈 제한) △건물주와 임차인간의 상생협약 체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조례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업종에 따라 벌금이나 징역이 부과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동구의 경우는 조례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며 “현재 서울시에서도 성동구의 조례에 근거해 특별법을 만들려고 하는데 정부에서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움직임에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