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으며, 이를 방치하면 군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옛 군형법 제92조의5 ‘그 밖의 추행’ 조항에 대해 5:4로 합헌 결정을 내린 이유다. 해당 조항은 군인들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으로 ‘동성애 처벌법’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헌법 제 11조(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옛 군형법 제92조의5는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군형법에는 이미 강간과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에 대한 처벌이 명시돼있기 때문에 92조의5에서 말하는 ‘그 밖의 추행’은 강간이나 강제추행이 아닌 상황을 말한다. 현재 해당 조항은 군형법 제92조6으로 개정돼 ‘계간’이라는 용어를 ‘항문성교’로 바꾸었다. 하지만 군대 내 동성애자를 향한 처벌법임은 변하지 않았다.

해당 조항은 △법 조항 자체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근거로 만들어진 점 △조항의 모호성으로 합의된 성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점 △군의 전투성 보존이라는 입법 목적이 과연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있느냐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구 군형법 제92조5 '그밖의 추행' 조항을 합헌결정했다. 이날 결정은 '김영란법 합헌' 결정으로 인해 주목받지 못했다. 사진=포커스뉴스

동성애 차별법인 ‘소도미법’이 법의 유래, 정작 미국에선 폐지돼

옛 군형법 제92조5 ‘그밖의 추행’조항은 미국 전시법 ‘소도미’ 조항을 따온 것으로 기독교적 전통에서 입법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이 조항이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2003년 위헌 결정이 났고 2013년 조항 자체가 사라졌다. 현재 미국은 군인 간의 성행위에 ‘폭력이나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만 처벌하고 있다. 페루 헌법재판소에서도 해당 조항에 ‘완전히 차별적’이라며 위헌을 선고했다.

한국에서도 이 조항이 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 군사법원은 해당 조항이 동성애자의 평등권과 사생활의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헌법재판소에 위헌 의견을 제출했고 제 19대 국회에서도 폐지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2015년 유엔자유권위원회도 한국정부에게 해당 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세 번째로 ‘합헌’을 결정했다. 헌재는 군형법 제92조5에 대해 2002년 6:2으로 합헌을 결정했고 2011년에는 5:4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지난 7월 28일에도 9명 중 5명이 합헌을 결정했다.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법”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도 드러나듯 해당 조항은 이성 간의 성행위와 달리 동성 간의 성행위를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전제돼있다.

위헌소송 대리인 한가람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2일 미디어오늘에 “조항 자체에 ‘남성 간 성폭력은 남성 동성애자만 저지른다’는 편견이 들어가 있다”라며 “이 조항은 군대 내 동성애자를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보는 시선에 법률적 근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 밖의 추행’ 조항이 적용돼 처벌을 받은 사례 중에 남성 이성애자(상급자)와 남성 동성애자의 합의된 성행위로 남성 동성애자만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다. 한가람 변호사는 “이미 군형법에 강간, 강제추행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있는데도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동성애자를 처벌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법 조항의 문제를 넘어 법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입법권을 침해했다는 지적도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미디어오늘에 “해당 법 조항에는 군형법의 적용 대상을 남성으로 한정하지 않고 군인 전체로 했음에도 ‘그 밖의 추행’이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며 “법조항에 대한 과도한 자의적 해석이자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반대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김이수, 이진성, 강일원, 조용호)들도 “1962년 당시에는 군대가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돼있었으므로 ‘남성간의 추행’을 규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여군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는 현실”이라며 “해당 조항은 ‘여성간의 추행이나 이성간의 추행’도 금지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제공

합의된 성행위도 처벌할 수 있는 모호한 법 조항

해당 조항은 강간이나 강제추행이 아니고 합의된 성관계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이 조항이 위법하다고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은 “이 조항은 강제성 필요여부, 범죄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한정짓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며 “강제력이 없는 ‘성적 만족 행위’를 처벌할 수 있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다”고 청구 이유를 밝혔다.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미디어오늘에 “실제로 해당 조항에 의해 합의된 성행위를 한 군인들이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합의여부뿐 아니라 심지어 장소와 시간의 제한도 없어 군인이 휴가를 나왔을 때도 합의된 성행위에 처벌을 할 수 있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해당 조항은 행위 객체‧시간‧장소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아 군인과 비군인과의 군 외 행위도 해당될 수 있다”며 “해당 조항을 군내에서 하는 음란한 행위로 한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합의된 성행위를 처벌한다 하더라도 ‘강제력에 의한 추행’과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는 강도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추행행위에 있어 강제성이 있었는지에 상관 없이 동일한 법률조항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군기’를 위해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나?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제92조의5의 입법목적이 ‘군기’라고 한다. 합헌 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박한철, 이정미, 김창종, 안창호, 서기석)은 “기타추행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의 확립을 목적으로 한다”며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를 금지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합의에 의한 음란행위의 경우에는 군의 전투력 보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며 “원칙적으로 형사 처벌의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가람 변호사도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과 군대의 전투력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한가람 변호사는 “최근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군인의 복무를 적극 지원하고 미 육군사관학교에서도 동성커플 결혼식을 열었으며 한미 소파 개정을 해 한국에서도 미국 동성커플은 이성커플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며 “그렇다고 해서 미군의 전투력이 저해됐다거나 단결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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