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심의제재건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TV조선을 비롯해 종편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전·현직 야당 인사들의 출연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밝힌 2016년도 종편 심의의결현황에 따르면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간 종편에 대한 법정제재 의결 건수는 9건이었으나 총선이 있었던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법정제재는 4건으로 줄었다. 종편에 대한 행정지도 의결 건수도 1월부터 3월까지 52건, 4월부터 6월까지 46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주목할 곳은 TV조선이다. TV조선은 선거 직전이던 지난 3월에만 22건의 심의제재를 받았으나 4월에 11건, 5월에 9건, 6월에 6건으로 매달 제재 건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은 “심의제재 건수가 줄었고 제재 수위도 낮아졌다. 민원도 줄어드는 추세다”라며 “내용을 봐도 과거처럼 심하지 않다. 요샌 종북 이야기도 없다. 가시적인 변화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 심의위원은 변화 배경을 두고 “반복적인 심의제재 탓도 있겠으나 총선 이후 정치지형 변화가 주요 원인 같다”고 전했다. 총선을 전후로 종편 막말프로그램의 상징과 같았던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가 폐지되고, 개편을 통해 문제적 패널을 교체하고 야당 측 인사를 투입하며 편향 수위가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종편은 조금씩 변했다. 7월13일자 채널A ‘정연욱의 시사인사이드’에선 박종희 전 새누리당 의원과 박수현 전 더민주 의원이 출연해 사드배치를 두고 토론했다. 같은 날 채널A ‘이남희의 직언직설’에선 사드배치를 놓고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과 문병호 전 국민의당 의원, 김대영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이 출연해 토론했다. 7월14일자 TV조선 ‘정두언 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에선 최민희 전 더민주 의원과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사드에 대한 여야 입장을 놓고 맞짱토론을 벌였다. 과거 3대1 또는 4대0 이었던 일방적 보수편향 패널 구성이 1대1 또는 2대1로 변하고 있는 대목이다.

▲ 7월14일자 TV조선 ‘정두언 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에 출연한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미디어오늘은 7월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엄성섭 유아름의 뉴스를 쏘다’, ‘윤슬기의 시사Q’, ‘정두언 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 ‘박종진 라이브쇼’의 패널을 분석했다. 탈북자 출신 패널이 눈에 띄게 줄고 전직 국회의원들의 출연비중이 늘어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5일간 TV조선 시사프로그램 5곳에 등장한 총 패널 수는 137명(사회자 제외, 중복출연포함)으로, 직군별로는 전·현직 기자 47명, 변호사 20명, 전·현직 국회의원 16명, 교수 12명 순이었다. 이밖에도 황태순 등 평론가 9명, 황상민 등 심리상담 전문가 7명이 출연했다.

기자직군의 경우 조선일보·TV조선·월간조선 전·현직 기자가 25명으로 자사출신 언론인의 비중이 높았다. 문화일보·데일리안 출신 기자도 9번 출연했다. 소송에 민감한 언론인들의 발언은 편향성을 유지하면서도 심의제재를 피하는데 있어 유리하다. 탈북자 패널의 빈자리는 전직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더민주 의원 중에는 진성준, 우윤근, 박수현, 최민희 의원이 TV조선에 출연하고 있다.

국회의원 낙선자에게 종편은 투표율이 높은 중장년층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고 유권자에게 잊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더민주 출신 의원들의 경우 편향된 종편을 바로잡는다는 ‘명분’도 갖고 있다. 출연료는 덤이다. 20대 총선 낙선자인 배재정 전 더민주 의원과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매주 월요일 채널A ‘정연욱의 시사인사이드’에 고정 출연하며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표창원 더민주 의원의 경우 현직 국회의원임에도 TV조선 ‘강적들’에 자주 출연하기도 했다.

▲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한 표창원 더민주 의원.
“강경발언 제어 위해 탈북자 출연요청 자제”…집토끼 잃을까

탈북 출신 패널은 북한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친노종북’ 프레임을 쏟아내는 식으로 심의제재의 중심에 있었다. 2013년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도 탈북자들의 적극적인 출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종편 채널전략에서 탈북자들은 점점 기피의 대상이다. TV조선의 한 기자는 탈북 패널의 감소를 두고 “북한 이슈가 전보다 줄어들었고 과거처럼 북한 이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많이 떨어졌다”고 전한 뒤 “몇몇 탈북자 출신 패널의 경우 강경발언을 제어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있어 되도록 (출연요청을) 자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TV조선 기자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대패하고 보수가 갈 길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기존 이념구도에선 활로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해 강한 이념적 색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내부 여론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종편이 보이는 변화의 배경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은 역으로 TV조선의 극우성향을 선호했던 ‘집토끼’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 관계자는 “TV조선과 채널A의 시청점유율이 4월 이후 감소세”라고 밝혔다. TV조선은 총선 이후 최일구 전 MBC앵커가 진행하는 ‘B급 뉴스쇼 짠’을 편성하며 주목을 끌었으나 지난 23일 방송에서 0.97%(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입가구 기준)를 기록하는 등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기존 TV조선 시청층에게는 ‘최일구식 저널리즘’이 먹히지 않는 셈이다. 설령 정권이 바뀌어도 집토끼를 버릴 수 없는 한 종편은 급격한 ‘좌회전’을 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변화에도 불구, 종편 시사프로그램이 여전히 선정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비판은 유효해 보인다. TV조선 ‘최희준의 왜?’에선 류근일, 조갑제 등 극우성향 인사들이 여전히 출연하고 있으며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 등 극우단체 인사도 여전히 종편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최근 종편 시사보도프로그램에 출연하던 한 변호사는 정치이슈 코멘트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하차통보를 받았다. 변호사 역할만 잘 해서는 종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 종편은 급격한 ‘우회전’도 할 수 없다. 시청률은 2016년 초를 기준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정체되고 있고, 총선에선 여당이 패배했고, 현직 대통령은 레임덕이고,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대선은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민주 전·현직 의원들의 출연은 일종의 ‘보험’ 성격으로 종편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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