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죄송한데 패널 사례비는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예산이 안 나오고 있어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주최하는 토론회의 패널로 나와달라는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 특조위 측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특조위 조사관들은 최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정부가 특조위의 조사기간이 끝났다며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조위의 별정직 공무원, 조사관들은 무급노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만둔 4명을 제외한 54명의 별정직 공무원들이 돈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특조위의 한 관계자는 25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이 월급날인데 월급이 안 들어왔다. (정부가 예산을 안 줬으니) 안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며 “파견직 공무원들은 원래 근무지에서 나오지만 별정직들은 월급은 물론 출장비도 못 받고 있다”고 전했다.

‘0원’이 된 특조위 예산, 카트리지 살 돈도 없어

특조위는 지난달 중순 2016년 하반기 예산으로 104억 원을 요청했다. 104억 원은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한 예산 규모다. 특조위는 지난해 8월 89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159억 원을 요청했지만 44%를 삭감 당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조사활동비 관련해 조사국, 안전사회국, 피해자지원국에서 요청한 예산을 80~90% 깎았다.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깎을 것이라 생각해서 작년 전반기 예산편성을 근거로 더 깎을 게 없도록 89억 원을 잡아두고 선체조사비 23억 원을 더해 104억 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7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의 책상 곳곳이 파견 직원들의 근무 종료로 텅 비어 있다. ⓒ포커스뉴스

하지만 돌아온 예산은 ‘0원’이다. 기획재정부가 “특조위의 조사활동 기간이 끝났다”며 예산 배정을 거부한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의 활동 기간은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6개월 연장가능’이다. 정부는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을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 1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특조위 조사기간은 올해 6월에 끝난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정부는 2015년 8월이 되어서야 특조위에 89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별정직 공무원들의 첫 출근 날은 7월27일이다. 예산도 직원도 없었던 기간을 조사기간에 포함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이유로 특조위와 세월호 유가족들은 예산이 배정된 2015년 8월4일 혹은 공무원들이 출근을 시작한 7월27일 등을 조사 개시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남아 있는 예산마저도 조사를 위한 사업비로 집행해선 안 된다고 통보했다. 인건비와 기본 경비 역시 종합보고서, 백서 발간을 위해서만 쓰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종합보고서, 백서 발간을 위한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도 않았다. 남아 있는 돈 중에 알아서 목적에 맞게 쓰고 한 푼이라도 목적에 어긋나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특조위 관계자는 “정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100원이라도 잘못 쓰면 법적인 조치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6월30일자로 아예 예산을 쓰지 않는다”며 “한 5억 원 정도 예산이 남아있는데, 조사관들이 조사업무를 하기로 한 상황에서 그 돈도 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조위 위원장과 상임위원들도 월급이 끊겼다. 장관급인 위원장과 차관급인 상임위원들에게 나오는 판공비, 차량까지 모두 반납했다.

예산은 0원이지만 사실상 ‘마이너스’다. 교통비부터 식대 등 출근해서 일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료 등 사무실 운영비도 문제다. 사무실은 기재부 소속 한국자산공사, 즉 정부 소유 건물이라 당장 임대료를 지급하지 못해도 사무실을 비워야할 처지는 아니다. 각종 물품 및 소모품은 미리 사둔 것을 사용하고 있다. 한 사무관은 “물품을 다 써서 새로 사야할 상황이 되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전기료 안 냈다고 전기라도 끊어버린다면 이 여름에 그냥 죽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소모품이 떨어져서 ‘갹출’ 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사무실 내 복합기 카트리지를 교체해야하는 데 예산이 없어서 그냥 두고만 있다. 복사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라며 “150만 원 정도 하는 카트리지를 사기 위해 조사관들이 각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유가족이 끊어주는 기차표, 용역비용 깎아서 토론회

비용을 각출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54명의 별정직 공무원들은 ‘마이너스’인 상황을 감안하고 조사업무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없으면 조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조위 관계자는 “카트리지나 복사용지가 없다는 건 사실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더 중요한 것은 조사비가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장비가 없으니 조사업무의 연장인 각종 출장을 개인 돈으로 감당해야 한다. 특조위 관계자는 “정부가 선체 인양을 시작한다고 해서 특조위도 (선체)조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다. 개인 돈을 써야 되나 했는데 사정을 안 세월호 유가족들이 기차표를 끊어줬다”고 말했다. 정부가 예산을 깎아버린 상황에서 유가족들이 특조위 조사를 돕고 있는 실정이다.

▲ 1일 오전 서울 중구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이석태 위원장이 유가족의 격려를 받으며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사업무는 ‘조사보고서’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알리려면 토론회와 세미나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토론회 패널들에게 사례비조차 줄 수가 없다. 다행히 오는 27일 열릴 토론회는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에서 열릴 예정이라 토론회 패널들에게만 양해를 구하면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한 특조위 조사관은 “발제자에게 책을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우편비가 부담돼 오신 김에 가져가라고 했다.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회나 세미나를 외부에서 진행하면 장소 대관료 걱정을 해야 한다. 지난 20일 오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피해자지원 실태조사 결과발표회’가 열렸다. 이 날 토론회 비용은 원래 집행했어야 할 용역비를 깎아서 충당했다.

또 다른 특조위 조사관은 “예산과 시한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보고서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조사관들의 말에 따르면 정부는 특조위에 예산을 ‘수시배정’한다. 요청한 조사활동비 등의 예산을 분기별로 나눠 조금씩 주는 것이다. 한 가지 프로젝트나 연구를 완결성 있게 계획하지도 진행하지도 못한다. 이 조사관은 “예산을 적게 주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예산을 제대로 쓸 수 없게 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껏 조사하려고 해도 조사 대상자들은 조사에 불응하기 일쑤다. 한 특조위 사무관은 “6월 말에 한 정부기관 관계자를 조사하려고 불렀더니 7월에 가겠다면서 안 나왔다. 그러나 7월이 되자 ‘활동 끝난 거 아닌가’라며 불출석했다”며 “이런 사례가 몇 건 있다. ‘이제 조사기간도 끝나서 권한도 없는데 왜 오라고 하느냐’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조사관들 사기가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못한다는 점에서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지만 위원회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며 “하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정당성 가지고만 버티라고 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당위성, 정당성만 가지고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 장담은 못하겠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아직 조사할 것이 많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직 조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7월 말 완료 예정이라던 세월호 선체 인양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물을 보지도 못한 채 특조위의 조사기간은 종료됐다.

이런 상황을 의식했는지 해수부는 선체정리 작업에 특조위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6월21일 보도자료에서 세월호 선체가 육상에 거치되면 특조위가 선체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특조위가 선체조사도 못 하고 끝난다는 여론의 반발 뒤에 나온 발표였다.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정부 말대로라면 조사기간이 종료돼 조사 권한도 없는 특조위가 무슨 권한으로 선체 조사에 참여한다는 걸까. 특조위 관계자는 “9월 안에 목포항에 거치시킨다고 하는데 선체정리하고 청소하고 소독하는 기간 합치면 9월이 넘어간다. 지금 세월호 특조위는 보고서 작성기간이지만 9월 이후에는 아예 해산된다”며 “공무원 몇 명 남아서 집기, 임대료 정산하는 과정만 남은 상황인데 그 때 선체조사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설사 조사한다고 해도 위원장도 없고 위원회 자체가 해산됐는데 누구한테 보고하고 누가 책임을 지나”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철근 400톤 의혹’도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일 제주해군기지로 향하는 철근 400톤이 세월호에 선적되어 있었다고 단독보도했다. 그간 세월호 침몰의 주요 원인으로 과적이 지목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월호가 제주해군기지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출항한 것은 아니었는지 규명해야 한다.

▲ 1일 오전 서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성역없는 진상규명 조사 지속 지지 기자회견'에 참석한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포커스뉴스

세월호 참사 직후 트위터 상에서 인위적으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유가족들을 폄훼하는 게시 글이 늘어난 사실도 조사 대상이다.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국면마다 1~2개의 ‘조장’ 계정이 글을 올리면 수십 개의 ‘조원’ 계정이 이를 리트윗하며 퍼트리는 방식의 여론조작 정황이 세월호 특조위 용역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런 조직적인 여론조작을 하려 했는지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세월호 특조위에 충분한 활동기간을 보장하고 특조위 조사활동에 적극 지원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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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키는 국회에

정부가 조사 종료를 통보한 상황에서 유일한 해법은 국회의 손에 달려 있다. 야당 의원들은 20대 국회 들어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기간을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4건 발의했으나 정부·여당의 반대와 여러 현안에 묻혀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조위 관계자는 “제일 우려되는 상황은 한 9월 쯤 가서 여야가 ‘올해 12월까지 하자’고 절충하듯 합의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예산이 배정되지 않는 7월부터 9월까지 사실상 활동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선심 쓰듯 3개월을 보장받으면 어떤 조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버린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이도저도 아닌 상황은 특조위를 진짜 세금도둑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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