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9시 반 현대중공업 정문, 조립공장 너머 멈춰선 크레인이 한 눈에 들어왔다. 평상시 같으면 중형물을 옮기느라 분주히 움직여야 할 1, 2도크의 타워크레인과 지프크레인이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기사들은 도크와 정문 사이 조립공장 앞에 앉았다. ‘분사 대상’에 오른 이들 700여 명은 “똘똘 뭉쳐서 (크레인을) 마비시키자”며 이마에 ‘단결 투쟁’ 머리띠를 두르고 ‘7시간 파업’에 참여했다.

“노동자들 안 건드려도 너네 재정 빵빵하잖아!” “정기선(정몽준 전 회장 장남)이 태어나기 전부터 일해 온 사람들이다!” “이 공장이 누구 공장인데 권오갑(현대중공업 사장)이 판을 치나!” “거짓말 좀 하지 마라!”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 4000여 명(노조 추산)은 22일 7시간 파업을 단행했다. 사측에 구조조정 에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질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2일 오전 10시30분 이들은 공장 안 대조립공장 앞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정문에서 300m 떨어진 조립공장 앞은 9시부터 조합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두 손에 ‘구조조정 박살, 16 투쟁 승리’가 적힌 막대 풍선을 들었다. 입사 5년차부터 35년차까지, 용접·도장 등 생산부터 설계 등 사무직까지 일손을 놓고 집회에 모였다.

집회장엔 분노 어린 배신감이 깔려있었다. 함께 회사를 키워왔음에도 사람을 “기계 옮기듯, 물건 버리듯” 대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35년차 크레인 기사 유아무개씨는 “81년 한 해 스무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던 상황에서 일을 시작해 회사를 같이 키워왔는데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5년차 직원 권아무개씨도 “나는 현대중공업으로 입사했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면서 “우리와 대화 하나 없었다”고 말했다.

▲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 4000여 명은 지난 22일 오전 현대중공업 대조립공장 앞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경영진이 경영상의 책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거짓말로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았다. “회사가 흑자일 동안엔 미래를 위해 임금동결에 협조해 달라”고 하더니 “힘들어지니 당장 사람 잘라버린다”는 반발이었다. 33년차 크레인 기사 윤아무개씨(57)는 “2008년 금융위기 때 현중은 흑자였으나 ‘다 같이 힘들다’는 이유로 임금 동결했다. 계속 흑자로 돈을 모아오면서도 ‘미래를 위해 모아놔야 한다’며 동결시켜왔다”면서 “그렇게 돈을 모아 30여 개 계열사 만들어왔지, 자기들 지분 늘리는 데 다 썼다. 조금만 힘들어지니 당장 사람 자르겠다고 야단”이라고 말했다.

무대 발언에 나선 김정구씨도 “회사는 천문학적 손실이라고 하는데 배관, 용접, 도장하는 우리가 도대체 뭘 했습니까. 책임은 경영자(에게 있는 것) 아니냐”라면서 “많은 노동자의 피땀 어린 노력이 이룩한 기업이다. 현중 물량은 현재 충분하고 경영도 정상이다. 노동자들 안 건드려도 너네 재정 빵빵하지 않냐”고 소리쳤다.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명분은 거짓이다”

파업 참가자들은 ‘회사의 거짓말’을 빠짐없이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은 구조조정을 강행할 정도로 어려운 상태가 아닌데 “회사가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크레인 기사 윤씨는 “지난 4월 대우조선해양 문제로 조선업 위기론이 과하게 부풀려졌고 현중은 여기에 편승했다”면서 “힘들다 하더라도 회사는 경영 상 무슨 노력을 했나. 경영 상 잘못이면 경영자들이 노력해라”고 일갈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중의 수주 물량은 2017년 상반기까지 안정적으로 확보돼있다. 노조의 분석 결과 ‘빅3 조선소’ 현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중에서도 경영실적이 가장 좋은 편이다. 2006년부터 2015년 매출액은 약 215조8800억 원, 영업이익은 약 11조 7300억 원으로 삼성중공업 116조원, 6조5900억원, 대우조선해양 116조7천억원, -1670억원에 비해 나은 실적을 보인다. 부채비율은 134%로 삼성중 246%, 대우조선해양 6639%에 비해 월등히 낮다. 사내유보금은 현중 12조8342억원, 삼성중공업 3조9161억원, 대우조선해양은 –1조5530억원이다.

▲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는 건물 뒤편으로 고 정주영 회장이 말했던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길"이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현중은 2013년 4분기부터 적자로 전환됐으나 노조는 이 또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중은 2014년 3분기 실적을 1조9346억원 적자라 발표하며 2014년 전체 적자 규모를 3조원 대로 발표했다. 이는 Big Bath('목욕을 철저히 해서 몸에서 더러운 것을 없앤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경영진 교체시기에 잠재부실이나 이익규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향후 예상되는 손실을 최대한 반영한’ 회계기법) 회계처리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특정 연도에 이익을 크게 줄이면 다음 연도에는 이익이 늘어나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이용한 회계처리로 경영자가 교체되는 시점에 자주 발견되는 방식이다. 실제로 현중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권오갑 사장은 2014년 10월에 취임했다.

노조 대의원 김정구씨는 “정몽준이 사재 출연해라”고 못박았다. 지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현중 10.16% 주주를 갖고 있는 대주주 정몽준에게 돌아간 배당금은 약 2795억 원이다.

이에 더해 문대성 사무국장은 “일부 자회사를 매각하고 현대오일뱅크 지분만 처분해도 충분히 자구안을 커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중 경영진은 2016년 3조5천억 수준의 비용절감을 골자로 한 자구안을 낸 바 있다. 현중은 가치가 5~6조원으로 추정되는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91.13% 보유하고 있다. 이 중 40%만 처분하면 자회사 하이투자증권 매각과 함께 자구안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중 노동자들 사이에서 대주주와 경영진의 비용은 최소화한 채 “노동자의 생계만 후려친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년에 임박한 사람들은 2~3년 사이에 자연히 회사를 나갈 텐데 왜 무리하게 구조조정을 하냐는 비판도 있다. 크레인 기사 윤씨는 “크레인 기사는  2~3년 만 있으면 3분의 1 이상이 나가버릴텐데 구조조정은 무슨 이유 때문이냐”고 말했다. 내년이면 회사를 떠나는 유아무개씨도 “분사 대상엔 나처럼 정년을 얼마 앞두지 않은 사람이 다수다. 2~3년이면 다 떠날 사람들인데 사측의 태도는 말이 안 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 집회 후 파업 참가자들은 대조립공장 주변을 한 바퀴 돌며 행진했다. 노조는 대주주인 정몽준 전 회장이 지난 10년 간 2800여억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조합원 쪼개고 없애는 노조 말살, 정기선 3대 세습 준비 작업”

현대중공업은 2014년 말 권오갑 사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1월 1500여 명이 ‘희망퇴직’으로 현중을 나갔고 올해 5월에도 2000여 명이 희망퇴직서를 냈다. 회사는 지난 주 노조에 희망퇴직 실시를 또다시 통보했고 특정 업무를 ‘비핵심업무’로 분류해 외주화를 추진 중이다.

사측은 지난 6월 설비지원 부문 994명을 분사하는 1차 분사계획을 통보했다. 지난 15일엔 크레인 운전, 신호, 시설 정비 등 생산직에 포함되는 설비보전·중기운전 부문 722명을 분사하는 2차 계획을 통보했다. 3, 4차 등으로 분사계획이 계속 나올 거라는 게 노조의 예상이다.

파업 현장 곳곳에선 “결국 회사가 노리는 것은 노조 조직력 파괴와 정기선 전무 3대 세습 안착”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기회는 이때다.” 윤아무개씨는 이 한 마디로 설명했다. 노조 무력화에 드라이브를 거는 정부가 ‘빽’이 돼줄 때 거대 노조를 잘게 쪼개야 한다는 의도가 읽힌다는 것이다.

그는 “하청노동, 비정규직 만들겠다는 걸 넘어서 조직 노조를 말살시키겠다는 거다. 조선이 첫 목표물이고 조선에서 성공하면 철강, 자동차로 넘어갈 것”이라며 “30년이 넘은 우리는 87, 88, 89년의 노동운동을 다 겪어봤지만 후배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곧 정년퇴직이지만 후배들은 비정규직이 된다. 그것을 막으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정기선 전무는 2013년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현대중공업에 복귀해 2014년 곧바로 상무로 승진했고 1년 후 곧장 전무로 승진했다. 2014년의 갑작스런 권오갑 체제가 정 전무의 승계 때문이라는 설은 현장 노동자들 사이엔 주지의 사실이다. 김정구씨는 집회에서 “정주영, 정몽준, 정기선의 3대 세습이 우리 공장에서 버젓이 일어난다. 대체 어떻게 물려주려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냐”면서 “정기선이 태어나기 전부터 일한 사람 많다. 우리는 분사에 분노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정부·기업은 약한 고리부터 친다… 정규직은 하청화 직면, 비정규직은 일상적 해고 직면

불안감도 퍼져 있었다. 조선소 파업이 얼마나 효과적이겠냐는 우려였다. 울산 지역 양대 노조 현대자동차 노조와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9일 23년 만에 공동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구조조정 저지와 재벌개혁을 요구하며 19~20일 두 차례 부분파업을 벌이고 22일 7시간 주간 파업에 나섰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중공업이 가장 약한 고리니까 제일 처음 친다”고 말했다. 철강, 자동차, 조선소 등 거대 사업장 중 파업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장이 조선소라는 것이다. 자동차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고 철강도 각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있지만 조선소는 공정이 독립적인 편인데다 하청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지적이다.

▲ 7월21일부터 현대중공업 원청에 고용 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노숙농숭을 시작한 사내하청노동자 최도섭씨(왼쪽)와 최성광씨. 사진=손가영 기자

“'되고 안되고'가 아니라 '하고 안하고' 입니다.” 14년차 변압기 사업부 직원 손아무개씨는 ‘분사를 막을 수 있겠냐’는 물음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지금 될 건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가 파업을 하도록 만든다. ‘분사는 안 된다’고 (파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하고 난 뒤에 막았니, 못 막았니 물어봐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생산직이 아니라 ‘설비지원부문’에서 분사 추진이 시작된 것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조합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생산 공정을 담당하는 업무보다 외주화가 더 용이하다는 점에서다.

공장 내 약한 고리들은 이미 공격받았다. 현중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사내하청노동자다. 이들은 노조 가입조차 힘겹다. 공공연한 사실 ‘블랙리스트’는 생존권을 인질삼아 하청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차단하는 가장 큰 장벽이고 조합원이 있는 하청기업이 원청으로부터 부당 대우받는 것은 현장에선 이미 기정사실이다. 하청업체가 폐업해버리면 즉시 실업자 신세가 된다. 고용안정을 강제할 방법이 없는 가장 약한 고리로, 원청에서 비롯된 구조조정 시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하청노동자들은 2014년부터 일상적인 구조조정을 겪어왔다. 2014년 12월 4만1059명에 달하던 현중 하청노동자 수는 1년 후 3만6338명으로 줄었고 2016년 4월 기준 3만2569명으로 감소했다. 2년 새 1년 반 동안 1만여 명이 소리소문 없이 구조조정 당했다.

이날 오후 현대중공업 정문 맞은편에서 피켓시위를 하던 하청노동자 이상금(52)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 겪는 문제다. 업체가 폐업하면 그만이고, 업체들이 조합원이라고 고용 안 해버리면 또 그만”이라면서 “지난해 현중 원청이 기성금(도급금)을 반토막내면서 폐업하는 업체가 늘어났고 많은 하청노동자들도 임금이 삭감되면서 못 견디고 나갔다”고 말했다. 2014년엔 15개, 2015년 57개 하청업체가 폐업했다.

최도섭씨와 최성광씨는 지난 21일부터 아예 현대중공업 공장 내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2년 동안 3번이나 업체가 바뀌는 등 하청업체가 폐업을 반복해오다가 지난 12일 사장이 ‘폐업 당일 폐업을 통보’하며 기습폐업됐다. 조합원인 이들은 각각 11년, 17년 동안 현중에서 일했다. 블랙리스트를 감안하면 고용 승계가 힘들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원청을 상대로 고용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최초로 공장 내에서 싸움을 시작했다.

최도섭씨는 “많이 싸워봤지만 지금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면서 “다음 달 당장 내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데 생각이 많아져 지난 밤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최씨 이마엔 선명한 선이 그어져있었다. 천막, 우산도 없이 섭씨 27~29도의 강한 햇볕 아래 이틀 넘게 농성을 해 ‘단결 투쟁’ 머리띠를 멘 부분만 하얗게 타지 않았다.

▲ 현대중공업 정문 맞은 편에 구조조정 저지와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활동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하는 현수막 11여 개가 걸려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더 세게 싸워라는 불만도… 분사, 비정규직 늘려 다시 젊은 힘들게 할 것

일부는 “이대로는 막을 수 없다. 더 세게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지난 20일 현대차 노조 및 민주노총 울산본부 산하 노조와 공동 총파업 집회를 연 후 한 식사자리에서 일부 현대중공업 조합원들은 “권오갑 사장이 대놓고 취임한 것을 보면 회사는 구조조정을 작심하고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는데 부분 파업이나 단체 교섭으로 막을 수 있겠냐”면서 “제대로 된 계획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전면 파업으로 돌입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대중공업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014년, 2015년 희망퇴직이나 분사를 보면 회사가 훅 치고 들어왔을 때 그냥 당하는 형국이었다”면서 “더 앞서서 대응해야 한다. 현대차만 해도 사측은 파업 때문에 생산량에 타격입는다고 말만 하지 실상 눈도 껌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청노동자가 전체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하청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노조가입운동은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파업 등의 단체 행동이 더 큰 힘을 내려면 직영 노동자 중에서도 일부인 현대중공업 노동조합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정말 답답하다. 답답해서 여기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집회 후 행진 중 조합원 손아무개씨가 토로했다. 손씨는 자신의 사업부도 향후 분사될 거라는 말이 나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는 대주주 눈치만 보고 노동자는 도구 취급하느냐”면서 “비정규직 만드는 것, 하청 만드는 것, 하면 안 된다. 잘 나갈 땐 ‘나중에 잘해줄게’ 하면서 쳐다보지도 않더니…”라고 말을 흐렸다.

보수언론은 지난 19일부터 어김없이 ‘귀족노조의 파업’이라 규정하고 나섰다. 이 규정은 노사 갈등을 노노갈등으로 치환해 경영진의 책임을 덮는 동시에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33년차 직원 윤씨는 “우리는 시장에 갈 때 ‘장바구니 두개 들고 간다’고 말한다. 하나는 자녀 것이고 하나는 우리 것이다. 자녀들이 힘들게 사니 부모가 직접 장을 봐줘서 도와준다는 걸 표현한 것”이라면서 “(구조조정은) 우리 자녀들 문제면서 후배들의 일이다. 곧 퇴직이지만 파업에 참여해서 싸우려는 이유”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