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이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을 어김없이 ‘귀족노조’의 ‘이기주의 파업’으로 몰아갔다. 경기파탄의 주범이란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기본권으로서의 단체행동권이나 노조의 요구조건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OECD, ILO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의 노동기본권 후퇴 문제가 지적돼 온 가운데 편향된 언론보도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20일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양대 노조를 비롯해 건설플랜트 노조 울산지부 등 1만5천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4시간 공동 파업을 벌인데 대해 21일 언론은 ‘명분없는 파업’이라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일보는 21일 사회 12면 '고액 연봉에도 더 달라니… 울산 경기 다 죽게 생겼다' 기사에서 주민들의 분노가 빗발친다고 지적했다. 동아는 "공장에서 한 15~20년 일하면 이것저것 합쳐 연 수입이 1억 원 넘어가는 걸로 아는데 그것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니 기가 찬다"는 주민의 말을 인용했다. 이어 이 기사는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두 거대 기업이 파업으로 몸살을 앓자 울산 전체의 경기침체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 21일 동아일보 사회 12면

노조에 경기침체 책임을 묻는 기사는 국민일보에서도 보였다. 국민일보는 사회 12면 '울산發 총파업… 夏鬪 확산 현대차·현대중 1만여 명 참석' 기사에서 "울산과 경남경제를 견인하는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산업 노동자들이 동시에 총파업에 나서면서 지역경제는 물론이고 한국경제 전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머니투데이와 파이낸셜뉴스는 현대차가 이틀 간 파업에 3500여 대, 780억 원 상당의 생산차질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파업권 행사를 '귀족노조의 횡포'라 못 박은 한국경제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연봉을 강조했다. 한경은 21일 종합 3면 기사 '연봉 2900만 원 근로자 울리는 연봉 9700만원의 이기주의 파업'에서 "평균 연봉 9700만원이라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안을 보면 연봉 300만원도 못 받는 협력사 근로자들은 한숨만 내쉰다", "(현대중) 중소협력사 부장이 연봉 5000~6000만원 받을 때 원청근로자는 8000만~9000만 원을 받았다" 등 하청업체 직원의 말을 인용했다.

▲ 21일 한국경제 종합 3면

보도를 종합하면 평균 임금을 상회하는 고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조의 임금인상·고용보장 등의 요구는 명분이 없고 결국 이 요구를 하기 위한 파업권 행사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임금 차이만 부각시킨다는 비판은 꾸준히 지적돼왔다. 위 기사들 모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균 연봉 차이, 협력업체·주민의 비판적인 반응, 정규직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를 단선적으로 나열했다. 노조 요구의 배경, 노사 단협 갈등 쟁점 등의 분석은 빠져 있다.

현대차가 파업에 나서게 된 이유는 지난 14차례 교섭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한 번도 입장안을 내지 않은데 따라서다. 장창열 현대차 노조 대외협력부장은 2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현대차는 임금동결, 임금피크제 도입, 신임금체계 도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다는 태도”라면서 “14차례 교섭하면서 어떤 입장안도 확인할 수 없어서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노동자 잘못이냐”라고 반문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가장 반발하는 쟁점은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다. 지난해부터 ‘희망퇴직’을 받아 온 현대중공업은 지금까지 3500여 명이 회사를 나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주 노조에 희망퇴직 실시를 또다시 통보했고 특정 업무를 ‘비핵심업무’로 분류해 외주화를 추진 중이다. 노조는 찬반투표 결과 90.4% 동의율을 얻어 파업을 성사시켰다.

한국경제, 매일경제, 서울신문 등은 ‘기본급 7.2% 인상’과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만 현대차 노조 요구안으로 부각시켰다. 노조는 이외에도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주식배당금 20% 출연, 하청업체 납품단가 보장, 부품사 노사관계 지배개입 근절 등 재벌개혁안도 요구하고 있다. 협력업체와의 상생 방안이 상당 부분 포함돼있다.

기본급 7.2% 인상이 귀족노조 ‘이기주의’ 근거로 제시되는 데 대해 현대차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물가지수 조사에 따른 것이라 지적했다. 장 대외협력부장은 “30~50명이 조사원으로 선정돼 정도 현대백화점, 재래시장, 주택시장 등을 한 달 동안 돌며 물가조사를 한다. 이를 토대로 책정하는 것”이라며 “물가가 인상되는데 기본급 인상은 모든 노조의 당연한 요구다. 그래도 임금인상률이 물가인상률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 민주노총 울산본부 산하 노조, 금속노조 울산지부 산하 지회, 현대중공업노동조합 등이 7월20일 오후 울산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울산지역 총파업 집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무엇보다 ‘명분없는 파업’이나 ‘귀족노조’라는 개념이 노동기본권에 대한 이해를 결여했다는 비판도 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로 파업권 발동은 노동자 스스로가 판단할 사안이다. 파업을 하면 기업에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파업을 언제 그만두느냐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협상의지에 달린 문제로, 손실을 지적하려면 경영진에도 똑같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비정규직보다 정규직의 처우가 상대적으로 나은 거지 사업장 내 경영진과 대립구도 속에서 노조는 절대 기득권, 귀족이 아니”라면서 “정규직 처우가 표준이 돼 다른 열악한 노동조건을 끌어올려야지 하향평준화식으로 끌고가면 안 된다. 기업이 그 부담을 감당하게끔 (논의를) 해야 하고 그래야 사회 전체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경제파탄, 비정규직·협력업체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서도 하 교수는 “파업에 대한 부담을 협력사에게 돌리는 경영방식을 비판하는 게 올바른 관점”이라면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영세 하청업체 노동자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들의 문제로도 힘겨워서 그렇지 고의적으로 외면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이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게 귀족이라거나 부도덕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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