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청와대의 보도통제에는 침묵하면서 이를 비판한 기자를 제주방송총국으로 발령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KBS 보도본부 기자들의 기수별 성명이 쏟아졌고 ‘인사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와 KBS 직능단체 협회원들의 항의 피켓팅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보도본부 간부들은 해당 기자를 되레 비난하며 강공 드라이브 일변도다.

현재 KBS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인사자는 3명이다. 모두 보도‧논평과 관련 있어 이번 인사의 방점이 ‘재갈 물리기’에 찍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KBS는 지난 15일 정연욱 KBS 기자와 김진수 해설위원을 각각 KBS 제주방송총국과 방송문화연구소로 발령했다.

▲ 기자협회보 13일자 정연욱 KBS 기자 기고글.
정 기자의 경우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이 발단이었다. 그는 13일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하는 KBS와 간부들을 비판했다.

정 기자는 이 글을 통해 “저널리즘의 상식에 입각한 문제제기조차 정치적인 진영 논리에 희생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지금 KBS 보도국을 이끌고 있는 간부들”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정지환 KBS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이 기고문 작성 경위에 대해 정 기자에게 ‘사유서’를 요구했고, 15일 KBS는 일방적으로 제주방송총국으로 인사 발령을 내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김진수 해설위원의 지난 11일자 KBS 뉴스논평은 고대영 KBS 사장의 ‘사드 보도지침’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의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러시아의 반발이 우려된다는 그의 논평에 대해 고 사장이 “중국 관영 매체의 주장과 다름없다”, “안보에 있어선 다른 목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KBS 뉴스의 방향과 맞지 않다”는 등의 평을 했고, 이에 간부들이 인사 조치 가능성을 통보했다고 언론노조 KBS본부가 폭로한 것이다.

이밖에도 지난달 페이스북에 자사 보도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남겼던 데이터저널리즘팀의 김양순 기자는 라디오 제작국으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KBS는 17일 “고대영 사장은 특정 뉴스 해설을 언급한 적이 없다. 아울러 특정 해설위원에 대한 인사 조치도 지시한 적이 없다”며 “인사 발령은 인사원칙에 따른 인사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KBS 기자들은 기수별 성명을 내어 인사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김진수 KBS 해설위원의 11일자 KBS뉴스해설. (사진=KBS)
KBS 보도본부 34기 기자 26명은 18일 오후 “보복 인사 발령을 당장 철회하라”며 “우리는 김진수, 김양순, 정연욱 기자의 이번 인사 발령을 명백한 부당인사이자 보복인사로 규정한다”고 비판했다.

37기 기자 9명도 “너무도 지독한 처사”라며 “‘비정상적인’ 우리 KBS의 현실을 명민하고 침착하게 표현한 정연욱 선배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송곳처럼 다가왔나. 그 한편의 글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28기‧31기‧35기‧33기 기자들도 연이어 성명을 내걸고 사측의 조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KBS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고 사장의 ‘보도통제’로 규정하고 비판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정 기자의 현 부서인 경인방송센터 발령도 지난 3월에 난 것으로 6개월도 되지 않아 지역으로 인사발령을 낸 것은 보복 인사”며 “KBS에서는 최근 일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의 가치와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번 인사 조치는 고 사장이 저항의 목소리를 힘으로 짓밟으려는 치졸한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년차 이상의 KBS 기자 52명도 성명을 통해 “터무니없는 인사는 조직 수뇌부의 생각과 질서에 ‘너희 기자들은 그저 순응하라’는 압력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라며 “조직의 안정을 위해 부당인사를 조속히 철회해 원상복귀시켜야 한다. 사장은 공영방송 KBS의 공정보도를 약속하고, 보도 통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라”고 말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16일 논평을 통해 “고대영 사장은 ‘보도개입 의혹’과 ‘찍어내기식 인사시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며 “고 사장도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장한 ‘청와대의 통상적인 업무’에 협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지환 국장을 포함한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 31명은 18일 성명을 내어 “외부 매체에 황당한 논리로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됐다”며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 게 당연한 자세”라고 정 기자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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