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 사태를 무보도하고 있는 것을 비판했던 KBS 기자가 제주도 발령을 받은 것과 관련해 사측의 조처를 비판했던 KBS 기자들의 성명이 또다시 삭제됐다.

KBS 경인방송센터 9명은 지난 15일 사측이 KBS 무보도 행태를 비판한 정연욱 기자를 KBS 제주총국으로 발령한 데 대해 “겉으로는 후배라고 부르는 이들을 이토록 무참히 난도질하고도 선배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며 “이 미친 칼바람을 당장 걷어치워라”고 성명을 내어 강하게 비판했다.

▲ 기자협회보 13일자 특별기고.
7년차 기자인 정 기자는 지난 13일 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이라는 제하의 기고를 게재했다. KBS가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하고 있는 것과 아울러 KBS 보도본부 국‧부장급 간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KBS기자협회정상화추진모임(이하 정상화모임)을 비판한 것이다.

KBS는 지난 16일 오전 KBS 경인방송센터 기자들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성명을 삭제했다. KBS가 성명을 삭제한 사유는 “KBS의 이익을 저해하거나 명예와 위신을 손상하는 내용”, “비어, 속어, 은어 등 저속한 언어를 사용하여 게시한 내용” 등이다.

‘단칼’, ‘난도질’ ‘칼바람’ 등 사측의 인사 조치를 강하게 비판하는 단어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KBS 경인방송센터 기자들은 18일 이 단어들을 OOO, △△, □□ 등으로 처리해 동일한 내용의 성명을 올렸다.

정 기자에 대한 인사뿐 아니라 ‘사드 배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논평을 통해 전했던 30년차 기자 김진수 KBS 해설위원은 보도국 밖인 방송문화연구소로 조치됐고, 데이터저널리즘을 담당하던 김양순 기자는 라디오 제작국으로 발령났다. 

▲ 김진수 KBS 해설위원의 11일자 KBS뉴스해설. (사진=KBS)
김 기자는 이정현 녹취록이 공개된 지난달 30일 KBS 메인뉴스에서 방송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페이스북을 통해 전한 바 있다. 

KBS는 이날 이정현 녹취록을 보도하는 대신, 박 의원이 서울경찰청에 경찰서장에 대한 정보 요구를 했던 것을 ‘갑질 논란’이라고 비판했다.

KBS가 단행한 이번 인사 조치에 KBS 내부는 들끓고 있다. 기자들의 기수별 성명은 18일까지 계속되고 있다.

KBS 보도본부 34기 기자 26명은 18일 오후 “보복 인사 발령을 당장 철회하라”며 “우리는 김진수, 김양순, 정연욱 기자의 이번 인사 발령을 명백한 부당인사이자 보복인사로 규정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몰염치도 정도껏 하라”며 “몰염치를 버리지 않겠다면 다음 보복은 이 성명서에 있는 모두에게 해달라. 아직 염치가 남아있다면 정치보복 인사발령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37기 기자 9명도 “너무도 지독한 처사”라며 “‘비정상적인’ 우리 KBS의 현실을 명민하고 침착하게 표현한 정연욱 선배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페부를 찌르는 송곳처럼 다가왔나. 그 한편의 글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 참담한 심정”이라며 인사 철회를 촉구했다. 

28기‧31기‧35기‧33기 기자들도 연이어 성명을 내걸고 사측의 조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항의 피케팅 시위를 열고 ‘고대영 사장의 사죄’와 ‘부당인사 철회’를 요구했다.

KBS 측은 17일 입장을 내어 “지난 15일 단행된 인사 발령은 인사원칙에 따른 인사였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기자협회는 18일 성명을 내어 “KBS의 이번 조치는 구성원의 비판에 대해 생산적이고 건전한 논의를 하는 대신 힘으로 비판을 억누르려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사회 곳곳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사가 구성원의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이중적이다. KBS는 정 기자에 대한 보복인사를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아래는 KBS 기자들의 기수별 성명 전문이다.

KBS경인방송센터 평기자 성명(15일)

‘또다시 칼바람이 불었다’

단칼에 당사자에게는 어떤 언질도 없이 수백 킬로미터를 떠나야 하는 보복 인사가 이뤄졌다. 정연욱 기자가 쓴 글이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기자들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은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알고도 모르는 척 이야기하지 않고 있던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이런 식의 보복 인사를 당하는 게 맞는 말인가?

우리는 부끄럽다. 보복 인사를 당하지 않은 남은 사람들은 아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그나마 비슷한 이야기가 실린 기수 성명에, 단체 성명에 숨어서 자신을 가려왔던 사람들일뿐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겉으로는 후배라고 부르는 이들을 이토록 무참히 난도질하고도 선배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나 생각하는가? 이 미친 칼바람을 당장 걷어치어라!

김용덕 서재희 송형국 안다영 엄진아 유지향 이종완 이철호 조정인

[34기 성명] 보복 인사 발령을 당장 철회하라.(18일)

보복 인사 발령을 당장 철회하라. 우리는 김진수, 김양순, 정연욱 기자의 이번 인사 발령을 명백한 부당인사이자 보복인사로 규정한다. 몰염치도 정도껏 해라. 몰염치를 버리지 않겠다면 다음 보복은 이 성명서에 있는 모두에게 해달라. ​아직 염치가 남아있다면 정치보복 인사발령을 당장 철회하라.

34기 기자 일동

강규엽 고순정 고은희 김경진 김도영 김민경 김재노 김진희 백미선 손원혁 신방실 양성모 유동엽 유승용 이정훈 장성길 정환욱 조세준 조정인 조지현 지형철 최경원 최만용 최재혁 한승연 허솔지 (이상 26명)

[37기 성명] 부당한 인사, 철회해 주십시오.(18일)

너무도 지독한 처사입니다. 이같은 인사 참사에 어떠한 ‘원칙’이 적용되었단 말입니까. ‘비정상적인’ 우리 KBS의 현실을 명민하고 침착하게 표현한 정연욱 선배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송곳처럼 다가왔나 봅니다. 징계의 절차가 귀찮았습니까. 아니면 징계 후 또 무효 판결이 나와 회사 스스로 무능함이 드러날까 두려웠습니까. 그 한편의 글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 참담한 심정입니다. 과연 누가 공사 직원으로서의 품위나 명예를 지키지 않았는지, 언론사로서의 KBS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정 선배가 언급한 공영방송 KBS를 둘러싼 ‘나쁜 침묵’. 더 이상 강요될 수도 정당화될 수도 없습니다. 부당한 인사, 반드시 철회해 주십시오.

*37기 기자 전원

김기화 김지숙 우정화 윤성구 이승철 정다원 최진영 허용석 홍혜림

[31기 성명] 부당 인사를 즉각 철회하라(16일)

KBS 보도본부에 ‘인사 테러’가 일어났다. 경인센터에 발령난 지 4개월 만에 정연욱 기자가 아무 통보 없이 제주총국으로 발령받았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담당하던 김양순 기자는 라디오 제작국으로 발령났다. 김진수 해설위원은 갑자기 방송문화연구소로 보내졌다. 사측은 인사 발령에 대해 보도본부에서 방송해 온 기자들을 화면 밖으로 밀어내면서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있다. 사측은 설명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연욱 기자는 사실보도를 저버리고 침묵하는 KBS 기자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기자협회보에 실었고, 김양순 기자는 이정현 녹취록이 공개된 날 방송된 박주민 의원 비판 보도에 대한 의견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김진수 해설위원은 중국 특파원을 지냈던 해설위원으로서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논평을 했다.

이들은 공기업 회사원에 머무르지 않고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표현했다. 다양한 시각에서 사안을 고민해야 하는 기자로서 당연한 태도다.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쟁점을 공론에 제시한 것일 뿐, 어느 하나 사규나 언론 윤리에 어긋남이 없다. 오늘의 인사는 인사권의 남용이고 부당 노동행위다.

31기 기자들은 부당 인사를 강력히 규탄하며, 인사 발령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는 기자 사회가 비겁한 침묵을 깨야 한다는 정연욱 기자의 주장에 뜻을 같이 한다. 우리는 자사 뉴스에 대한 감시와 비평을 외면하지 않은 김양순 기자의 태도와 입장을 같이 한다. 우리는 사드 배치 결정에 안보 측면뿐만 아니라 외교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김진수 해설위원의 해설이 균형감 있는 논평이라고 판단한다. 사실상의 징계 조치가 노리는 것은 기자 사회의 침묵일 것이다. 수뇌부들에게 경고한다. 보복 인사 따위로 기자 사회에 재갈을 물릴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말라.

아울러 현재 긴급운영위를 개최 중인 기자협회에도 정중하고 단호히 요청한다. 이번 사안을 두고 좌고우면하지 않길 바란다. 이번 부당인사를 막아내고 인사권을 악용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물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자협회의 소임이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31기 기자

곽근아 김시원 구경하 김성한 노윤정 류 란 박 현 양민효 이수정 은준수 이진연 임재성 이재석 정현숙 강성원 차정인 황현택 이정은 송민석 노준철 김계애 김선영 최영준 류성호 박상훈 김해정 이승준 엄기숙 강수헌 한주연 우동윤 윤나경 김민아 송현준 황재락 진정은 조승연 연봉석 김태석 임현식

[35기 성명]부당 인사 철회하고, 진실을 직시하라!(16일)

동기 정연욱 기자가 4개월 만에 또다시 짐을 싸게 생겼다. 이번에는 제주도다. 본인은 자신의 거처가 바뀌게 되는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다. 도대체 왜? 정연욱은 최근 ‘이정현 의원과 김시곤 전 국장’ 녹취록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KBS 상황과 실제로 존재하는 정상화라는 모임이나 조직 혹은 집단에 대한 글을 올렸다. 정연욱의 글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일이다. 녹취록을 보도하지 않는 상황을 규탄하는 기수별 성명서도 이미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세상이 알고 모두가 알지만 KBS 뉴스는 침묵했던 그 일이다. 정연욱은 기자들이 보는 기자협회보에 모두가 아는 얘기를 썼다. 칼럼이기에 자신의 의견을 담았다. 그 의견이라는 것도 이미 보도된 내부 목소리들과 결이 다르지 않다. 칼럼은 기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글이자 소통의 장이다. 기자라면 장려할 일이다. 기자들의 직업윤리와 언론의 자유, 게다가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썼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기자들이 보는 협회보에 썼다. KBS 기자들이 회비를 내는 그곳이다. 글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회사는 제주도로 가라는 통보로 답했다. 녹취록을 보도하지 않는 일련의 현실이 부끄럽긴 했나보다. 부끄럽지 않았다 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유는 뭔가? 회사의 현실을 젊은 평기자가 지적한 게 괘씸했나? 왜 이번 인사에 대해 노코멘트 하는 것인가? 인사권 전횡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어린 아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에 추천도서로 여전히 인기다. 옷을 입지 않은 임금님을 보고도 다들 진실을 꺼린 채 임금님을 칭찬했다. 용기를 낸 자가 나서서 임금님이 벌거숭이라고 외쳤다. 그 뒤 용기를 얻은 사람들도 진실을 바로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동기임을 떠나 한 기자로서 정연욱 덕분에 진실의 힘을 또 한 번 배웠다. 그렇다, 진실은 원래 불편한 것이다.부당 인사를 철회하라!

35기 일동

김소영 김영준 김영은 김진화 민창호 박광식 박대기 윤성욱 장덕수 하선아

[성명] 부당한 인사발령을 철회하라(16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날의 해설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압력에도 안보주권은 당당히 얘기해야 한다’는, ‘최선의 설득 노력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논조가 무엇이 잘못 됐습니까?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한다는 팩트를 해설에 담으면 안 되는 겁니까?

우리 보도국 지휘부가 늘 교범으로 제시하는 BBC는 어떻습니까?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할 때마저 냉철한 보도를 이어갔던 덕분에 BBC가 세계 공영방송의 교과서와 같은 신뢰를 얻었다는 것을 모르는 기자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BBC 스타일은 그저 중계차 연결 방식일 뿐입니까?

기자협회보 기고문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내부 비판자와 고발자 덕분에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내부 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낸 조직을 엄중히 비판하기도 합니다.그런데, 그런 우리는 내부 고발과 비판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페이스북 글은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고 영상 취재를 합니다. 그 성과물에 대한 수많은 비판을 기꺼이 감내하는 공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페이스북에 우리 리포트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 해서 부서가 바뀌어야 합니까?

정말 참담합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상식을 원할 뿐입니다. 이번 인사는 상식에서 너무나 벗어났습니다. 철회를 요구합니다.

28기 김세정 김주한 박석호

[33기 성명] 정녕 이 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가(15일)

후배 정연욱 기자가 갑자기 제주로 발령났다. 너무도 황망한 인사 발령이다. 급박한 인사 요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지원한 적은 더더욱 없다. 보도본부의 인사 관행에 비춰 봐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전보 조치다. 도대체, 갑자기, 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는 한 가지 뿐이다. 정 기자는 최근 <기자협회보>에 실명 기고를 했다.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을 둘러싼 KBS의 퇴행성을 통렬하게 비판한 글이었다. KBS 기자라면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일 법한 내용이었다.

백 번 양보해, 정 기자의 글에 기분이 나빴을 수 있다. 곤궁한 입장을 정면으로 후벼 파는 말이 반갑지 않을 수 있다. 화가 났을 수 있다. 그렇다고…꼭 이렇게 분풀이를 해야 하나. 이건 누가 봐도 보복이 아닌가. 인사권 운운하기엔 너무 치사하지 않은가.

천 번 양보해, 정 기자의 실명 기고에 대해 사규 위반 운운할 수도 있겠다. 전가의 보도 같은 ‘품위 손상’ ‘공사 명예 훼손’ 따위에 사실 안 걸릴 게 어디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면…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될 일이다. 그게 최소한의 룰 아닌가.

만 번 양보해, 정 기자가 잘못을 했다고 치자. 감히, 버릇없이, 윗분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치자. 그래도 당신들은 선배 아닌가. 한 살이라도 더 드신 어른 아닌가. 그런데도…이게 선배가, 어른이, 젊은 후배에게 할 짓인가. 구성원들에게 이렇게까지 상처를 줘야 하나.

생각이 다르면 다툴 수 있다. 언성을 높이며 싸울 수도 있다. 사실 소통과 화합을 얘기하기엔 너무나도 갈라져 있지 않은가. 그래도…이건 아니지 않은가. 주먹질도 링 위에서 해야 하지 않나. 지역국이 잘못 하면 보내는 유배지인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녕, 이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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