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KBS 자존심 지키자던 간부들 어디 갔나”
“KBS 자존심 지키자던 간부들 어디 갔나”
보도개입 의혹 침묵에 쏟아지는 기자들 성명… 이정현 녹취록 공개 12일 만에 공방으로 묶어서 처리

“특정 보도 누락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KBS 30기 기자 18명)

“간부 선배들이 지키자고 했던 ‘KBS의 자존심’이 그야말로 처절하게 짓밟혔다.”(KBS 38기 기자 16명)

“만약 정당한 업무 수행이라면 언제라도 다시 청와대에서 전화를 걸 것이다.”(KBS 35기 기자 10명)

KBS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축소 지시 논란에 무보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 KBS 기자들이 연이은 성명으로 ‘제대로’ 된 보도 제작을 촉구하고 나섰다.

KBS 보도본부 27기(2000년 입사) 기자 18명이 지난 5일 “우리 얼굴에 튄 더러운 침을 닦아내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법적 대응은 고사하고 작성된 단신 기사도 무시됐다”며 KBS의 ‘이정현 녹취 파문’ 무보도를 비판한 이래 29‧30‧31‧33‧34‧35‧38‧42기 기자들이 연달아 성명을 내어 침묵하는 KBS를 비판했다.

특히 33기 기자 35명이 지난 7일 냈던 시조 형식의 성명의 경우 세로로 읽게 되면 “박주민은 까면서 이정현은 왜 안까. 북한보도 그만 좀 해”라는 문장이 완성돼 화제를 모았지만, 사측에 의해 ‘게시 보류’ 조치를 받고 삭제됐다.

▲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왼쪽)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이번 성명은 KBS 간부들의 침묵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38기 기자 16명은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KBS 간부들이 길환영 당시 KBS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던 때와 비교하며 간부들의 모순적 행태를 비판했다.

이들은 “까마득한 선배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건 KBS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하던 게 생생히 기억난다”며 “2년이 지난 지금, 당시 파업의 발단이 됐던 청와대의 ‘오더’가 괴로울 정도로 생생하게 드러났다. 간부 선배들이 지키자고 했던 ‘KBS의 자존심’이 그야말로 처절하게 짓밟혔다”고 지적한 뒤 “지금 우리의 모습은 2년 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녹취록이 공개된 직후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단신 하나 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35기 기자 10명은 ‘심층 보도’를 통해 청와대로부터 걸려오는 외압성 전화를 막아보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11일 “보도국 수뇌부께서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에 ‘김시곤 전 국장이 받았던 청와대 전화는 이제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며 “당시 전화로 압력을 넣었던 (청와대) 측에서는 정당한 업무 수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라도 다시 전화를 걸 것인데, 이는 심층 보도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번 ‘이정현 녹취록’ 사태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18명의 KBS 30기 기자들은 “회사의 체면이나 위신, 나아가 혹여라도 정권의 안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며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KBS의 미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하는가. 무엇이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아 KBS를 살릴 수 있는 길인지,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KBS는 지난 11일 메인뉴스 ‘뉴스9’ 18번째 리포트 “나향욱 ‘죽을죄’ 사과… ‘이정현 녹취록’ 공방”을 통해 ‘이정현 보도개입 녹취’와 관련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나온 여‧야 의원들의 발언을 정리해 보도했다. 다만, 이 리포트는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교육부 간부, 사드 배치 논란 등 이날 국회에서 나온 이슈를 종합해 다뤘다.

아래는 KBS 기자들 성명 모음.

* 29기 성명

만시지탄에 
수오지심이 드네.
권불십년에,
화무십일홍이라.
이장폐천이요,
적수천석이거늘,
대오각성으로
개과천선해봄세.

<< 함께 배우는 사자성어 >>

*만시지탄: 때늦은 한탄을 함.
*수오지심: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 함. 인간이 다른 금수와 구별되는 덕목.
*권불십년: 10년을 가는 권력이 없음.
*화무십일홍: 10일을 넘게 붉은 꽃이 없음.
*이장폐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음.
*적수천석: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뚫음.
*대오각성: 크게 깨달아 번뇌가 없어짐.
*개과천선: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됨.
** 성명을 낸 선후배들과 뜻을 함께 합니다.

29기 취재,촬영기자 (순서 의미없음)
공아영  이정민  국현호  이승준  이소정  이승철  이경진  정창화  하송연  이충헌 김희용  임세흠  변성준  송상엽  손병우  오광택  최진아  최건일  서지영  윤영란

* 30기 성명

미디어는 신뢰를 먹고 삽니다.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면 존재 의의가 훼손됩니다. 신뢰를 쌓는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잃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새삼스럽게 강조할 뿐, 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과거 미디어가 많지 않았던 시절, 특정 보도의 누락은 곧 그 사안을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진 이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입니다. 더욱이 그렇게 미디어가 많아져 정보의 양이 극대화된 지금의 환경에서, 특정 사안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저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어떤 보도가 누락됐을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미 다른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그 보도를 접한 시청자들에게는 보도를 누락하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적극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손바닥으로 가리는 데서 나아가 아예 하늘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정현 의원과 김시곤 전 보도국장 사이의 통화 내용을 KBS가 보도하지 않은 것을  우리가 우려하는 배경은 이런 데 있습니다. 보도를 않기로 한 보도본부 수뇌부의 입장을 최대한의 선의로 받아들이려 노력해 보더라도, 그런 결정과 판단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생각하면 눈 앞이 아득해집니다. 수십년 간 어렵게 구축해 온, 그리고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신뢰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사건 당시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보도본부 수뇌부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도 스탠스를 세웠다지만, 미디어 환경이 변한 상황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낡은 보도 프레임을 들이민 것은 시청자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계기가 되었고, 끝내 거대한 역풍을 맞았던 것 역시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위기를 말합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하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우리의 중심에 시청자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보도조직은 통합뉴스룸으로 탈바꿈해 디지털뉴스 역량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고 나면, 그 모든 노력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특히 디지털뉴스를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할 젊은 뉴스 이용자들에게 우리 뉴스가 냉소의 대상이 되는 마당에, 어떠한 노력을 통해 다시 신뢰를 쌓고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될지 알기 어렵습니다.

회사의 체면이나 위신, 나아가 혹여라도 정권의 안위를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기어이 KBS의 미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하십니까? 무엇이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아 KBS를 살릴 수 있는 길인지,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6년 7월 11일 

KBS 30기 기자 
강희준 김기중 김영인 박장훈 범기영 백창민 윤진 위재천 이광열 이승훈 이철호 이하경 이호을 이효용 이화연 임명규 최정민 최지영 (이상 18명) 

* 38기 성명

2년 전, 간부들과 함께 했던 세월호 파업을 잊지 못 합니다. 간부 선배들은 우리 옆에 나란히 서서 길환영 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KBS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까마득한 선배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건 KBS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생히 기억납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당시 파업의 발단이 됐던 청와대의 ‘오더’가 괴로울 정도로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간부 선배들이 지키자고 했던 ‘KBS의 자존심’이 그야말로 처절하게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2년 전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녹취록이 공개된 직후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단신 하나 볼 수 없었습니다.

함께 파업을 하며 KBS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자고 했던 분들이, 이번에는 “예전부터 줄곧 있었던 일이며, 외부 세력에 의한 KBS 흠집 내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2년 전과 지금, 무엇이 다릅니까? 지난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습니다. 녹취록이 공개된 뒤 후배 기자들은 취재현장에서 조롱을 받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KBS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보도 통제냐, 협조 요청이냐는 가치 판단은 둘째로 치겠습니다. 일어난 사실 자체를 보도하지 않는 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져버린 일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언론’의 기본 책무조차 저버리는 것입니다.  

입사 6년 차, 여전히 정신없이 일 할 때지만 그렇다고 마냥 침묵하지만은 않겠습니다. KBS는 모든 사안을 빠르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해야 하는 공영방송사입니다. 그 어떤 사안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KBS는 더 늦기 전에 청와대의 보도 개입 논란에 대해 '제대로' 보도해야 합니다.

2016년 7월 11일 

38기 기자 
강나루 고아름 고형석 김빛이라 김수연 박찬걸 서병립 신지혜 이슬기 이창준 정연우 조은경 지선호 최상철 최준혁 홍성희 

* 35기 성명

스스로 당사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곤혹스럽다는 점은 저희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KBS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위상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외면하고 그냥 덮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사안입니다. 많은 사람이 의혹을 제기하고 또 분노하는 사안을 이대로 조용히 갈 수 있을지요? 시청자가 우리의 뉴스에 대해서 거는 기대에 걸맞은 심층 보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우리가 입을 다문다고 사람들이 이 사안을 모르고 지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들이 겪는 중대한 문제를 객관적이고 도덕적인 입장에서 전하지 않고 애매하게 넘기려는 저희를 시청자는 점차 외면하게 될 수 있습니다.

보도국 수뇌부께서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시곤 전 국장이 받았던 청와대 전화는 이제 없다고. 하지만 당시 전화로 압력을 넣었던 측에서는 자신들의 정당한 업무 수행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정당한 업무 수행이라면 언제라도 다시 전화를 걸 것입니다.​ 심층 보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35기 기자 일동
김소영 김영은 김영준 김진화 민창호 박대기 윤성욱 장덕수 정연욱 하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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