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세월호 참사 직후 KBS의 정부 비판 보도에 개입하고 보도국장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관련 보도가 제작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 KBS 기자들의 성명을 사측이 삭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KBS 보도본부 33기 기자 35명은 지난 7일 오전 시조 형식의 성명을 내어 “보고말았네, 하필 오늘! (박통께서) 좋아하네”, “박통각하 우국충정, 몰라주니 서운하네” 등의 표현으로 이른바 ‘이정현 보도통제 녹취록’ 파문에 침묵하는 자사 보도와 간부들을 비판했다.

▲ ‘이정현 녹취 폭로’ 주인공인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길환영 전 KBS 사장(왼쪽)과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오른쪽)이 KBS 보도와 인사에 개입해왔다고 폭로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또 “그리자! 소설보다 실감나는 처참한 북조선을!”, “만들자, 질릴 때까지 북핵위기 또 수공위기!”라면서 이정현 녹취 보도 대신 북한 보도만 쏟아내는 KBS의 상황, 대통령을 비판하지 못하는 뉴스 등을 풍자했다.

특히 각 행의 첫 음절을 세로로 조합하면 “박주민은 까면서 이정현은 왜 안까. 북한보도 그만 좀 해”라고 읽히는 등 33기 기자들의 성명은 온라인상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KBS는 같은 날 해당 성명에 대해 ‘게시 보류’ 조치를 취했다. 33기 성명이 “공사의 이익을 저해하거나 명예와 위신을 손상하는 내용”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후 KBS 전자게시 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사내 게시판에서 삭제됐다. 성명이 게시된 지 3시간여 만이다. 이에 대해 “내부 항의에 대한 입막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KBS 보도본부 33기 기자들의 비판 성명(빨간색 사각형)이 7일 오전 게시 보류된 상태의 모습.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 KBS 보도본부 33기 기자들의 비판 성명이 7일 삭제되기 전 게시 보류된 상태의 모습.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본부, 본부장 성재호)는 7일 성명을 통해 “청와대 외압을 보도하는 데는 한사코 망설이고 주저하는 사측이 기자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인다”고 비판했다.

KBS본부는 “사측이 아무리 내부 구성원들의 비판을 깔아뭉개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며 “여러 언론이 기사화하면서 모바일과 SNS를 통해 커다란 관심을 모으며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에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고 했다.

이어 “더 이상 치졸한 입막음으로 KBS 뉴스의 청와대 외압 보도 침묵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책임 추궁을 덮으려 하지 마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KBS 보도본부 33기 기자들의 성명 전문이다. 

공영찬가

박통각하 우국충정, 몰라주니 서운하네
주 7회도 모자라니 밤낮으로 틀어보세
민심처럼 시청률은 하늘 높이 치솟는데
은혜마저 몰라주니 이내 마음 섭섭하네

까치 울음 찾아온 듯 전화소리 반갑구나
면목 없단 부탁인데 어찌그리 매몰찬가
서로 사맛디아니해도 녹음버튼 웬말인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정상화를 하자는데 뒷조사가 웬일인가
현명하다! 그의 판단, 고매하네 우리 기사
은갈매기 한쌍처럼 집중원투 정답구나

왜란으로 나라뺏긴 비상시국 아닐진데
안팎으로 시끄럽네 국론분열 머리아파
까닭없이 까지말고 월급날을 기다리세

북한소식 궁금한데, 너희들은 안물안궁?
한시라도 못 전하면 혓바닥에 바늘 돋아
보고말았네, 하필 오늘! (박통께서) 좋아하네
도탄빠진 조선민족 구할 길은 통일대박!

그리자! 소설보다 실감나는 처참한 북조선을!
만들자, 질릴 때까지 북핵위기 또 수공위기!
좀비처럼 죽지않고 대대손손 보도하세!
해치지마 욕하지마 아프지마 박통 박통 잠보.

(에헤라! 세상 사람들아, 가로로만 읽자꾸나)

고진현 곽선정 김동욱 김문영 김상민 김성현 김연주 김용덕 김정은 김준범
김지선 김태현 김효신 박상현 박선우 박주미 박찬규 변진석 서영민 손은혜
신지원 안다영 오수호 유지향 윤지연 이만영 이수진 이종영 임종빈 조경모
조태흠 최송현 최형원 한규석 황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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