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014년 4월,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KBS의 해경 비판 보도에 개입하고 ‘빼달라’고 압박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KBS 여당 추천 이사들은 극도로 민감해하며 발언을 꺼리고 있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지난 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정현 보도통제 녹취록’에 대해 “입장을 내야 할 만한 문제라곤 보진 않는다”면서도 “내가 이야기하게 되면 문제는 복잡해질 수 있다. 이야기하지 않는 게 상황을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KBS에서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설’이 보도됐을 때 이 이사장은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면서 “외부에서 해당 보도에 대한 성토대회가 이어지면서 ‘KBS가 친일 세력이냐’, ‘이사들은 돈만 받아먹고 특전만 누리냐’ 등 별별 이야기가 다 들려서 이사회를 소집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 이인호 KBS 이사장. (사진=노컷뉴스)
당시엔 발 빠르게 움직이던 이 이사장이 이번 녹취 파문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이야기할 것은 없다”, “자꾸 문제 삼고 하니까 간단한 논평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며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다른 여당 이사들도 ‘이정현 녹취록’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차기환 여당 추천 KBS 이사도 7일 “사실관계를 조금 더 조사하고 말씀드리겠다”고만 했다.

극우 단체 ‘어버이연합’을 두둔했던 우파 논객인 조우석 여당 추천 이사도 “KBS 이사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며 “예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코멘트해서 일이 불거지는 걸 원치 않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의 대표 변호사인 이원일 KBS 여당 추천 이사는 “바빠서 전화받기 곤란하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 ‘이정현 녹취 폭로’ 주인공인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길환영 전 KBS 사장(왼쪽)과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오른쪽)이 KBS 보도와 인사에 개입해왔다고 폭로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지난해 언론을 통해 국정교과서 집필진 물망에 올랐던 여당 추천 강규형 이사도 “아직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며 “미리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안건으로 올라오면 심도있게 얘기해볼 것”이라고만 했다.

반면,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정현 녹취록’ 논란은 반드시 짚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영일 KBS 이사는 “이번 녹취록이 보여주는 건 역시 구조의 문제”라며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는 사장을 선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다수제를 통한 사장선임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KBS 관리‧감독권과 사장 임명제청권을 갖고 있는 KBS 이사회 구성비는 여‧야 7대4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통합방송법을 제정하며 국회가 타협한 결과다.

사장의 최종 선임을 위해서는 6명의 찬성만 있으면 가능해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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